문 대통령 "현장에서 충분히 실효성 있게 법을 집행해 달라"
안전사고로 노동자 사망 시 사업주 10억 이하, 법인 50억 이하 벌금 부과
"모호한 규정으로 부작용 우려…보완입법 서둘러야"

정부가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을 의결하며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pixabay>
▲ 정부가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을 의결하며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pixabay>

[폴리뉴스 홍수현 기자] 정부가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을 의결하며 모호한 기준으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을 처리하는 자리에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자는 취지가 살도록 현장에서 충분히 실효성 있게 법을 집행해 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여전히 후진적인 산업재해가 그치지 않고 있으므로 이런 일들을 예방하는 최소한의 안전 틀을 갖추자는 취지로 입법이 이뤄졌다"며  "법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법 취지가 최대한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올해 1월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고 불리고 있는 법으로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 사망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져 '김용균법'이라고도 한다.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다만 이 법에는 '5인미만 사업장'이 제외된다. 

'중대재해법'은 이날 국무회의 통과로 내년 1월 27일 시행되며, 처벌 수위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 법인의 경우 50억 원 이하 벌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을 처리했다./사진제공=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을 처리했다./사진제공=청와대

 

◆ 경영계-노동계 일제히 반발

경영계와 노동계는 이날 일제히 유감을 나타내며 보완입법을 서둘러 달라고 주문했다. 시행령에 규정된 안전보건 의무와 관계법령, 범위 및 준수의무 내용 등이 구체적이지 않아 해석의 논란이 따를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우태희 상근부회장 명의의 논평을 내고 "기업들의 우려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확정됐다"며 "기업들은 법을 어떻게 준수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날 "그동안 중대재해처벌법상 불분명한 경영책임자 개념 및 의무내용 등이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수차례 건의한 바 있다"며 "산업계의 우려사항이 충분히 검토·반영되지 않은 채 국무회의를 통과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경제계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시행령 제정안이 불명확성을 해소시키지 못한 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며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모호한 규정으로 산업현장의 혼란이 가중됨은 물론, 경영 위축과 불필요한 소송 등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성토했다.

반면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해당 시행령이 과도한 예외 조항 등으로 노동 현장의 안전사고를 막지 못할 것이라 주장했다.

운동본부는 시행령에 대해 "직업성 질병의 범위가 급성 중독으로만 한정돼 과로나 직업성 암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야 경영 책임자가 처벌 대상이 되고, 식물인간으로 살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계속 되는 것"이라며 "법령에 대한 점검을 민간 기관에 위탁하도록 하는 안전의 외주화를 금지하라는 요구도 거부됐다"고 말했다.

시행령은 '직업성 질병자'의 범위를 ‘화학적 인자에 의한 급성중독, 반응성 기도과민증후군, 열사병 등 24개의 직업성 질병’으로 한정했다. 

이에 따라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한 사업장에서 1년 이내에 뇌·심혈관 질환(과로)이나 직업성암 질환자가 3명 이상 발생해도 ‘중대재해’에는 해당하지 않고, 사업주의 책임도 묻지 못하게 됐다.

한국노총도▲뇌심혈관계 질환을 중대재해처벌법 직업성질병에 포함할 것을 요구했지만 반영이 안된 점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이 대폭 축소된 점 ▲중대산업재해가 2회 이상 발생한 경우 가중교육 도입 요구가 반영안 된 점 등을 꼬집으며 "껍데기뿐인 중대재해처벌법과 그 시행령으로는 매년 2000여명이 죽고 10만여명이 다치거나 병드는 노동현장의 안전보건을 개선할 수 없다"면서 "모법과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 비상걸린 현장... '현실성 떨어져' 

유통업계는 당장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개인사업자 성격이던 배달기사들까지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도급, 계약, 위탁 등의 형태로 노무를 제공하는 종사자 모두를 보호 대상에 포함한다. 이 때문에 전국 40만 명의 배달기사들의 재해에 쿠팡과 배달의민족 등 플랫폼사업자와 음식점주 등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쿠팡과 배달의민족 등 배달앱 서비스는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배달 기사들에게 안전교육 등을 진행 중이지만, 법이 통과되면 재해 발생 시 이 같은 교육 등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번 사업주 조사 등이 필요해진다. 프리랜서형 일자리 성격으로 중대재해법 적용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안전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건설업계의 걱정도 크다. 화력발전소 사고로 사망한 '김용균법'이라는 점에서 더욱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상당수 건설사들은 이미 법 시행에 앞서 안전관리 관련 조직을 확대하고 안전 기술을 도입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100% 막기란 불가능하고, 경영책임자가 준수해야 할 의무 내용 등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다는 측면에서 건설사들의 우려가 크다.

안전역량을 강화해온 전자업계도 우려하는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삼성전자는 모든 사업장을 안전보건 경영시스템에 기반해 운영하고 있고, LG전자는 사고 발생 시 신속한 대처와 재발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사후대책 수립을 위해 사고보고에 대한 기준과 지침을 강화한 상태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3월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EO)'를 신설하고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책임감 있는 산업연합(Responsible Business Alliance, RBA)'에 가입해 국제규범을 준수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전자업계는 이같은 철저한 대응에도 예견치 못한 사고 발생 대비 최고 관리자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지적하며 "경영책임자에 대한 면책 조항 반영도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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