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 50주기에 부쳐

새벽에는 구두닦이, 낮에는 시다, 밤에는 껌팔이를 하던 시절의 전태일 <사진=전태일재단>
▲ 새벽에는 구두닦이, 낮에는 시다, 밤에는 껌팔이를 하던 시절의 전태일 <사진=전태일재단>

 

[김유경 폴리뉴스 수습기자]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직무대행은 전태일이 친구에게 보낸 유서 성격의 편지를 인용하며 분신의 정수가 여기에 있다고 짚었다. 이어 “나와 내 주변, 나를 모르는 노동자, 그 모두가 나, 즉 모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 11월13일 청계천 평화시장의 전태일, 스물 두 살의 청년은 스스로 온 몸을 불태웠다. 당시 자본권력의 억압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쉴 틈 없이 기계처럼 일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물어볼 데도, 호소할 데도 마땅치 않았다. 그 같은 벼랑 끝에서 무력감을 느낀 개인은 고통의 삶을 종결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청년 전태일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부조리를 고발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함께 연대하자고 목소리를 냈다. 즉 사회적으로 ‘타살당한’ 것이 아니라, 소통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획한 것이다.

이후 사회 각계에 노동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나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쳐 줄 대학생 친구 한 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전태일의 말은 많은 대학생들로 하여금 노동운동에 본격 뛰어들게 했고 곳곳에서 농성과 시위가 일었다. 종교계에서 추모예배가 있었고 노동자들의 분신을 비롯한 저항운동은 계속 이어졌다.

물론 죽음을 미화, 찬양하거나 망자의 배경, 심리 등을 섣불리 추측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분신 중에 우발적으로 행해진 경우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회적 행위로 감행한 결연한 외침으로의 분신을 조명하고자 한다.

대표적인 분신의 형태로 불교의 ‘소신공양’이 있다. 부처님께 공양한다는 의미로 분신을 하는 경우다. 1963년 6월11일, 베트남 틱광둑 스님이 독재정권의 불교 탄압에 저항하고 미국 등 서양열강의 강탈에 맞서고자 소신공양을 단행했다. 당시 미국의 지원하에 총리와 대통령을 역임하던 고딘 디엠이 사찰을 파괴하고 스님들을 살해하거나 연행했던 것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스님 머리 위에 휘발유가 부어졌고 순식간에 불길이 번져나갔다. 스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허리를 곧추세워 가부좌를 풀지 않았고 10분 뒤 그대로 넘어졌다. 이 광경은 사진으로 남겨져 훗날 퓰리처상을 받았다.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미국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돼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결국 정권이 무너졌다. 

분신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자살 중에서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자살이다. 분신은 현장에서 바로 죽는 경우는 드물고, 병원으로 옮겨져 며칠 이상 큰 고통을 받다가 죽는다. 

분신을 하면 몸이 불에 타서 죽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람 몸에는 수분이 많아 잘 타지 않고 휘발유 같은 인화제를 이용해도 다 타기 전에 불이 꺼진다. 뜨거운 열과 연기가 폐와 기관지 등을 익혀 제 기능을 못하게 만들어 사망에 이른다. 

이처럼 분신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단순한 자살에는 거의 쓰이지 않고, 무언가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의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분신은 대개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가운데 감행된다. 온몸에 불길이 휩싸이는 모습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영향을 준다. 이는 권력에 대한 항거의 목적뿐 아니라 문제를 방관하고 있는 다수 사람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성격 역시 갖는다. 나아가 분신은 그가 속한 집단의 단합을 더 끈끈하게 하며 향후 의식이나 행사를 통한 전승, 주기적인 되새김을 가능하게 한다. 기억은 폭력에 맞서는 가장 마지막 무기다.

50년이 지난 지금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과로사와 산업재해로 목숨을 읽고 있다. 간접고용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은 노동자로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가 준비한 ‘전태일 3법’ 가운데 하나인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은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전태일의 영정을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 이소선 여사 <사진=전태일재단>
▲ 전태일의 영정을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 이소선 여사 <사진=전태일재단>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남긴 말이 있다. “이제 그만 죽어라, 분신도 하지 마라, 떨어져 죽지도 말고 제발, 악착같이 살아라, 살아서 싸워라” 노동조합을 만들어 계속 목소리를 내라는 의미였다. 

“전태일 열사는 아직 멀었다고 하시겠지요”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1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무궁화장이 노동계 인사에게 수여된 것은 최초다. 추서식에 참석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내 죽음을 헛되이하지 말라’고 한 전태일이 뭐라고 얘기할지 궁금하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오늘 훈장은 노동 존중 사회로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분신 후 수없이 많은 전태일이 살아났고, 저는 전태일 열사의 부활을 현실과 역사 속에서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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