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공무원 사살 첩보 10시간 후에나 보고받아
정부, 미국측 정보에도 사살 가능성 저평가
野, ‘박근혜 세월호 7시간’에 비유하며 총공세... "문대통령 일정, 분ㆍ초 단위로 공개하라"
김정은 이례적으로 직접 사과…북미관계 고려

<사진=연합뉴스>
▲ <사진=연합뉴스>

연평도 NLL(서해북방한계선) 인근 북한 층 해상에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 북측에 의해 사살 후 시신이 훼손된 사건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통해 사과의 의사를 표명했지만, 사안 자체의 잔인성 때문에 많은 누리꾼들이 여전히 크게 분노하고 있다. 야당은 여론에 보조를 맞춰 대여 총공세에 들어갔다.

우리 군 당국은 24일 해양수산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공무원 이모씨가 22일 오후 9시 40분쯤 NLL 이북 지점에서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고, 시신은 해상에서 불태워졌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23일 오전 8시 30분경 해당 공무원의 사살 첩보를 대면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에 24일 문 대통령이 북한의 만행을 인지한 시점이 종전선언을 제안한지 약 7시간 뒤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민 희생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을 추진하려 했다는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문제는 청와대가 22일 10시 30분경 보고된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무원 이모씨가 사살됐다는 첩보를 재깍 보고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실제로 23일 새벽 1시경,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등이 청와대에 모여 상황을 공유했지만 문 대통령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고 대응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그새 문 대통령의 종전 선언 연설 영상이 새벽 1시26분부터 16분간 공개됐고, 아침이 된 8시 30분에서야 문 대통령은 사살 및 시신훼손과 관련된 대면보고를 받았다. 첩보 입수 후 문 대통령에게 보고되기까지 무려 10시간이 걸린 셈이다.

군과 정보당국, 청와대 NSC 등 여러 채널을 통해 미국측으로부터 사살 위험성 관련 정보를 공유 받았는데도 정부가 공무원 이모씨의 사살 가능성을 낮게 본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서해상에 표류 중이던 국민 이모씨를 최초 확인한 시점이 22일 오후 3시30분이지만, 6시간 동안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모씨의 표류 확인 시점부터 문 대통령이 총살 첩보를 보고 받은 시점은 17시간이나 차이가 난다.

북한군이 이모씨를 발견한 뒤 해상에서 줄에 묶어 이동하다 놓치는 바람에 몇 시간 동안 수색작업까지 벌였지만, 우리 군이 이 상황을 그저 방치한 것도 큰 문제의 소지가 있다. 25일 오전 문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국민 생명 위협하는 어떤 행위에도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발언한 것과 크게 배치되는 것이다.

이에 누리꾼들은 크게 분노했다. 사안을 다룬 기사들마다 포탈에서 만 개가 넘는 ‘싫어요’가 눌리는 한편, 댓글로 정부여당의 늑장 대처와 미온적 사과 행태를 비난했다. “북한 용서하면 안 된다”, “고사포로 김정은부터”, “기름뿌려 태워 죽여놓고 미안 한마디면 다냐”, “문재인 탄핵 사유” “사과 절대 안 하는 문재인”, “국민이 화형을 당했는데 지는 잠을 잤다고 한다” 등의 비난이 들끓었다.

野, 일제히 文 조준해 총공세…“朴 세월호 7시간과 뭐가 다르냐”

누리꾼들의 분노에 발맞춰 야권의 총공세도 쏟아졌다. 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빗댄 비판이 많았다. 문 대통령과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난한 것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피해자를 살릴 충분한 시간적 이유가 있었고, 사건 발생 후 3일이 지난 24일에야 뒤늦게 사건을 공개하고 입장을 발표하며 뭔가 국민께 숨기는 것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오늘 스스로 이 사태 진실에 대해 티끌만큼의 숨김 없이 소상히 국민께 밝혀야할 것이고, 20일부터 사흘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초 단위로 설명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무능 무책임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고 더 이상 말로만 비판 말고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 만큼 외교적 행동을 취해 북한이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해야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못밝히면 국가안보와 국민안전 이 또다시 위태로워진다. 당력을 총동원해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못박았다.

주호영 원내대표 또한 이날 자신의 SNS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 “국민이 눈앞에서 총살당하는데도 그대로 방치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상 대통령의 책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이 과연 분노는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라며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취해야 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여전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이날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해당한 엄청난 일이 발생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새벽 1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며 “7시간 후인 23일 오전 8시30분에야 보고를 받았다니, 대통령이 그토록 비판하던 세월호 7시간과 무엇이 다르냐”고 꼬집었다.

이어 안 대표는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수호자여야 하는데 보고를 받은 후 군 진급 신고식에서도 ‘평화의 시기는 일직선이 아니다’라는 알쏭달쏭한 말만 했다”며 “정작 북한의 대한민국 국민 사살과 해상화형이란 희대의 도발을 저질렀음에도 이를 언급하거나 규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문 대통령을 격정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SNS에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군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관련된 지휘관은 전원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며 “우리 군이 이렇게 된 것은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 전 의원은 “북한이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짓밟아도 문 대통령의 머릿속엔 종전 선언과 평화라는 말뿐”이라며 “대통령은 이번 참사에 대해 북한을 응징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북한 눈치를 살피고 아부하느라 자기 국민을 보호하지도 못한다면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대통령은 왜 존재하는가”라고 덧붙였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 또한 24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내 나라 국민이 총상을 당하고 시신이 불태워 죽임을 당하는 참혹한 사건에 대해 9월 23일 01시 청와대 안보실장 주관 긴급회의가 있었다”며 “대통령은 불참하고 관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맞느냐”면서 “세월호 7시간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까지 몰고간 사람들이 이번 직무유기를 무슨 말로 궤변을 늘어놓을까”라고 문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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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일제히 북한 규탄 메시지 냈으나 설훈 발언으로 논란

여론이 악화되고 야권의 공세가 쏟아지자 여권도 반응을 보였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차원의 대북 규탄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며 “민주당은 북에 책임 있는 조처를 요구한다. 북한은 대한민국 국민과 희생자에게 사과하고 사건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김 원내대표는 “야당과 협의해 본회의에서 대북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켜 북한의 만행에 대한 대한민국 국회의 엄중하고 단호한 입장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부연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이와 관련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우리 국민에 대한 북한군의 살인행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송 의원은 “눈과 귀를 의심할 일이다. 백주대낮에 있을 수 없는 행위”라며 “국가기밀을 탐지하기 위한 스파이 행위를 했다고 의심되더라도, 심지어 전쟁 중에 잡힌 포로라고 하더라도 재판절차도 없이 현장에서 사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체포한지 6시간10분 후에 사살한 것이라면 상부의 지시를 기다렸다는 것인데, 과연 북한 최고지도부가 이를 몰랐을 리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설훈 민주당 의원의 25일 발언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북한이) 과감하게 사과하고 ‘우리도 잘못했다. 그러니까 이거는 우리 판단착오다’ 이렇게 된다고 하면 상황이 완전히 역전될 수 있는 소지도 있다. 남북 관계를 좋은 쪽으로 만들 수 있는 소지도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날 정식 논평을 내 “북한에 누구보다 더욱 단호해야 할 대한민국의 여당 의원이 북한 편들기에 나서는 모습 역시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라고 설 의원을 규탄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우리 국민이 입에 담기조차 힘든 형태의 죽음을 당한 이 마당에 남북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며 “그리고 지금 이 사건이 허울 좋은 사과 한마디로 끝날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일반적인 국민상식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발언이다. 대체 얼마나 더 많은 피해를 입고 얼마나 많은 우리 국민의 목숨을 잃어야 꿈에서 깨어나 냉엄한 현실을 인식할 텐가”라고 지적했다.

北 김정은 사과 표명…“귀측의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오전 청와대로 통지문을 보내 사과의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통지문에서 “남북관계에 있어 악영향을 미칠 일이 우리 측 수역에서 발생한 데 대해 귀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며 “최근 적게나마 쌓아온 남북간의 신뢰와 존주으이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게 더욱 긴장하고 각성해 필요한 안전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신음하는 남한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발생하게 해 문 대통령을 비롯해 실망감을 안겨 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번 김 위원장의 사과는 이례적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남북관계보다는 북미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 김 위원장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한 기간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은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 7일에 예정돼 있다. 인도적 대북지원 확대 등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공조 방안도 주요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즉 대미 협상을 통한 대북제재 완화를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꾀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의중에 따른 사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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