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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현편집국장칼럼]의사와 사회적 존경의 가치

의사라는 직업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문직으로서 고도의 지식과 수련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그만큼 그 종사자들의 직업적 자부심이 높고 사회적 명성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법률가도 마찬가지다. 의사와 판검사가 소위 잘 나가는 정도로 따지자면 전 세계 어느 사회도 한국을 따라 올 곳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농공상 위계의 조선에서 의원은 양반 아래 중인(中人) 신분에 머물렀다. 인술(仁術)을 행하고 있지만 돈을 댓가로 받는다는 이유였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의사들의 파업에 온 국민이 공분하는 현실을 보면서 봉건사회의 의사관(觀)을 다시 떠올릴 정도이다.

국민들이 지금 의료계에 요구하는 직업관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군자연하며 의원을 훈계라도 하듯이 고상한 차원이 아니다. 죽음의 공포가 벌써 반년째 일상이 된 현실에서 휴대전화를 끄고 잠적한 의사들에 대한 분노는 국민, 아니 생명체의 당연한 기본권이다. 의사 집단 파업은 이제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눠져 업권 수호에서 업권 실추로 전락하고 있다. 이 세상의 어느 장삼이사에게도 밥그릇 지키기란 중요하다. 하물며 이 사회의 정점에 있는 의사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고 감히 함부로 업권을 침해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직업군도 아니다. 대한의사협회의 돈과 힘은 국내 이익단체 가운데 최강으로서 이미 차고도 넘친다.

특히 이번 의사 파업에서 우려를 넘어 통탄스러운 점은 의대생들의 파업 동조에 있다. 직업 의사들이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미 세속화된 생활인들이지만 이들은 엄연히 의생(醫生)의 신분이다. 험난하고 숭고한 의업의 길에 막 나선 이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생명과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배움의 자세이다. 선배 의사들이 역병의 환란 속에서 환자를 버리고 병원문을 나서는 일탈적 현실에 직면했다면 학생으로서 먼저 무엇을 해야 했는가. 정부가 의대 증원 확대 정책의 근거로서 ‘OECD 국가 중 국민당 의사 수 최하위’ 통계를 제시한 데 대해 그 명석한 두뇌로 검증해야 했었다. 선배들이 ‘유리한 통계를 동원한 과장과 왜곡에 불과하다’며 정부와 싸우고 나설 지라도 서구 자연과학의 학문적 전통의 수혜자로서 가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최소의 의무이자 최강의 무기이다.

오히려 의사 파업을 계기로 지금 SNS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의대생들의 여론전에서는 미래의 청년의사에 대한 기대와는 어긋나는 우려스런 치기마저 보인다. ‘당신은 갑자기 생사를 다루는 긴급수술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중 수술을 맡기고 싶은 의사양반을 고르세요. ○정의로운 시민단체 추천 공공의대 출신 의사 ○풀컨디션 조민 ○대낮에 소주 세병 까고 급히 불려온 이** 교수 ○진맥 잘 한다고 소문난 한의사’. 선택지를 들여다보면 이번 사태의 이해관계자 아니면 취하기 어려운 배타적인 태도가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직업적 우월감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차라리 의대생 흉내를 낸 시간 많은 누리꾼의 요설로 믿고 싶을 지경이다.

현실이 이처럼 의사들의 권위와 사회의 기대를 시시각각 위협하고 있지만 여전히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직업이다. 어려서 읽은 위인전에서 우리는 슈바이처 박사를 통해 의사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왔다. 청소년기에는 의사 출신 스코틀랜드 작가 크로닌이 지은 ‘성채’(Citadel)의 주인공 앤드류 맨슨을 통해 불의에 맞서는 정의롭고 열의에 찬 청년의사를 존경하게 된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 격동기를 거치며 사회의식에 눈뜬 대학생들에게 ‘닥터 노먼 베쑨’은 필독서였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안락한 삶을 뒤로 한 채 스페인내전을 거치며 전장에서 혈액은행을 최초로 운영한 의사이다. 베쑨은 중국혁명 당시 홍군의 대장정에 종군하며 부상 병사에 대한 응급수술 도중 메스에 상처를 입어 패혈증으로 숨졌다.

우리나라에도 의로운 의사는 많다. 고 장기려 박사가 세운 ‘사회적 의무를 실천하는 의사 상(像)’은 지난해 2월 과로로 세상을 떠난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과 이국종 교수 등 신념 있는 공공의료인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로 이어지는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서 국민적 영웅이 된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감을 힘들게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존경할만한 의사들은 지금도 이 폭염 속에서 코로나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방호복 아래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존경할 만한 일을 한 사람이나 직업이 많은 사회에는 희망이 있다. 우리에게 의사는 세속적으로 부러운 직업이지만 더 이상 사회적 존경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국경없는의사회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소식은 우리가 결코 지우고 싶지 않은 참 의사의 가치를 각성케 한다. 자신들이 속한 직업에 존경을 불러오는 계기가 된 코로나 사태가 의사들에게 부메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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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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