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복귀한 통합당, 정책 연구로 ‘일하는 국회’
반공·자유방임주의 노선 수정 들어가는 통합당
기본소득, 교육 이슈 꺼내며 탈이념적 접근
수권야당 길 닦는 김무성 및 연대설 나오는 安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 장이 26일 오전 국회 본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 장이 26일 오전 국회 본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취임 이후, 통합당은 기본소득제, 리쇼어링, 교육 문제 등 여러 실용적인 정책적 아젠다를 제시하면서 ’정책 국회’를 표방하고 있다. “호남을 포기하지 말라”며 선거전략에서의 큰 변화마저 꾀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사찰에 칩거하는 등, 민주당과의 원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정책 정당’만이 유일하게 당이 살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만장일치로 재신임 돼 업무에 복귀한 주 원내대표는 “국회에 상임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겠다”며 원 구성 협상에서 강경 노선을 폈다. 다만 “잠정적으로는 상임위원 구성을 할 것”이라며 당 자체 조직을 통해선 일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3차 추경의 문제점을 국민께 자세히 보고하는 과정을 거치겠다”며 꼼꼼한 예산 심사에 대한 의지도 내비쳤다. 민주당이 내놓은 비전인 ‘일하는 국회’ 프레임의 강력함을 눈치채고, 통합당만의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실제로 통합당은 초선 의원을 중심으로 많은 공부 모임을 만들어 정책적 과제들을 연구 중이다. 정당 개혁을 포함한 정치 개혁을 논하는 ‘초심만리’부터, 초당적으로 진행되는 경제연구모임인 ‘우후죽순’, 지속가능한 선진국 모델을 연구해 보자는 ‘전환기 한국경제 포럼’ 등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여야를 합치면 총 20개 가량의 공부 모임이 운영중이다. 비록 원 구성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지만 여야 모두 공부해야 국회의원으로서 제대로 일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는 셈이다.

반공, 시장방임주의 일변도인 당의 노선 수정 필요성 대두한 통합당

중요한 것은 ‘일’의 방향성이다. 정치의 수요자는 국민이다. 21대 총선에서 수요자인 국민들에게 선택받는 데 처절하게 실패한 미래통합당은 올바른 방향, 그리고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만 2년 후에 있을 대선과 지방선거, 향후의 총선에서 생존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당의 근본에 해당하는 이념과 노선의 전면적인 수정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먼저 나섰다. 그는 “보수라는 용어는 허명”이라며 기존의 ‘합리적 보수’담론에서 벗어나 아예 ‘탈보수’ 할 것을 주문했다. 장제원 의원으로 대표되는 일부 중진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김 위원장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보수는 생존할 수 없다”며 반발을 잠재웠다.

보수정당으로서의 통합당의 기본 이념이 ‘반공’과 ‘자유방임적 시장주의’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해당 이념들의 ‘시효’와 ‘대중성’이다. 과거 냉전 시대의 산물인 반공과 사회적 양극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자유방임적 시장주의 그 자체에 전적으로 동의할 유권자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해당 이념들이 ‘철 지난 것’이라는 인식도 지배적이다. 김병민 통합당 비대위원은 이에 대해 “보수의 가치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외쳐 온 ‘자유우파’ 용어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뺄 때가 아닌가”라고 진단했다.

즉 김종인 비대위는 통합당의 향후 노선을 놓고 탈이념적 아젠다를 제시하면서 반공 이념과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에 들어갈 전망이다. 실용주의를 당의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큰 정부’에 기대는 진보와, ‘작은 정부’를 추구하며 민간의 자율성에 의지하는 기존 보수의 이념을 적당히 잘 절충해 ‘노예의 길’로 국가 확대를 경계한 하이에크식의 신자유주의는 다소 멀리하면서 포용적 사회를 강조한 애스모글루와 로빈슨의 논지에 가까운 노선을 펴는 것이다.

기본소득, 교육 이슈 꺼내며 탈이념화 시도하는 김종인 비대위

한때 여야 정치권을 ‘기본소득 논쟁’으로 몰아넣었던 기본소득 논의가 탈이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반(反) 김종인의 선봉에 섰던 조경태 통합당 의원마저 “기본소득 자체는 진보적 혹은 보수적 개념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기본소득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 탈이념적 이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미래통합당의 전신) 대표마저 “기본소득은 재정적으로 불가능한 정책”이라며 “이런 것을 주장하는 것은 포퓰리스트”라는 비판에 가세했지만, 김 위원장은 “일자리 만큼 소비능력이 반감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며 “한국식 기본소득제도를 얼른 만들어야 한다”고 기본소득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이 평소 ‘나는 뼛속까지 자본주의자’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 논의도 결국 다른 복지체제를 기본소득제 내로 편입시켜 복지체제의 효율화와 합리화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보수주의 담론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 위원장은 평소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선제 대응하는 형태의 복지를 해야 한다”는 노선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여론은 팽팽히 갈리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5일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응답자의 48.6%가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찬성한다’고 답했다.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고 세금이 늘어 반대한다’는 응답은 42.8%로 집계돼 찬반 의견이 오차 범위 내에서 맞섰다. 이 조사는 YTN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했다.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또한 김 위원장은 교육 개혁에 있어선 자유시장원리를 중시하는 통합당 답지 않게 “사교육비와 사교육 시장을 억제해 공교육이 밀리는 것을 막아야 하기에, 정부가 공적 규제를 해서라도 사교육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는 “공교육 저질화와 사교육 번성으로 교육비가 엄청나게 들어가니 젊은 부부들이 애를 낳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수정당이 잘 언급하지 않는 ‘평등’ 개념도 교육 분야에 있어서는 적극 주장했다. 그는 “직접 규제를 통해서라도 교육의 평등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학교육의 전면적 혁신도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4차 산업 관련 인공지능, 머신러닝, 데이터 사이언스 같은 것을 대학에서 교육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반도체 전문가 얼마나 되는가”라며 “대학 교육을 보면 4년 학사, 2년 박사 등 한 10년 정도 과정이 있는데, 이러한 10년 과정 거치고 나서 그 학문이 과연 쓸모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교육개혁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구체적인 정책 뿐만 아니라, 통합당은 아예 당의 정강정책 또한 개정한다. 5·18 민주화 운동 등 과거 소홀했던 민주화의 노고에 대해 적극 수록하고, 임시정부 독립운동 등을 넣는 등 ‘친일 논란’ 등을 차단하는 시도에도 나선다. 과거 다소 소홀했던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노동권도 넣는 것을 검토 중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가치들을 대거 정강정책에 담겠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여론조사상으로도 통합당의 변화에 대한 여론 변화가 감지된다. 한국갤럽의 6월 4주차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도는 전주 대비 2%p 하락한 41%, 통합당 지지도는 전주 대비 1%p 상승한 20%를 기록했다.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은 24%였다. 한편, 이번 조사는 지난 23~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응답률 12%)을 대상으로 전화조사원 인터뷰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한국갤럽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수권야당 되려는 통합당…김무성 행보 및 안철수와의 연대 가능성 주목

이는 문재인 정권 심판만 외쳤던 총선의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판야당’이 아니라 제대로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수권야당’이 돼야만 한다는 통합당의 절박한 몸부림이다. 하태경 통합당 의원은 이를 두고 “과거에는 반사이익만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었지만, 4차 산업 혁명이 대두되고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나오는 등 세상이 급격히 변화하니 국민들이 새로운 시대를 맡을 수 있는 시대정신과 자격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수권야당의 노선이 맞다”고 지적했다.

한편,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을 적극적으로 닦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 “특정인 대권 염두에 두지 않는다”며 최근 서울 마포에 사무실을 개설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미래통합당의 전신) 대표다. 그는 ‘킹 메이커’를 자처하며, 그가 차린 마포 사무실의 목표가 대권주자를 발굴해내는 ‘시스템 구축’에 있다고 강조한다. “나는 마음을 비웠고, 한 발짝 물러섰다”는 김 전 대표는 “조직의 진용이 짜여지면 대권 잠룡 한분 한분을 초대하려고 한다”는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김 대표의 태도 변화는 어느정도는 예상됐던 것이다.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진작에 한 그이지만, 한때 광주 혹은 여수로의 ‘호남 출마’ 카드를 만지작했다. 황교안 지도부의 만류로 김 전 대표의 호남 출마는 무산됐지만, 일종의 ‘희생과 타협의 정신’을 보여주려는 김 전 대표의 진일보한 태도는 여러 행보에서 묻어난다.

국회 앞에서 수백일 간 농성을 이어가던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최승우 씨가 농성을 풀은 데에 바로 김 전 대표의 적극적 중재가 있었다. 김 전 대표는 의원회관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던 최 씨에게 즉석 면담을 요청했고, “각서를 쓸 테니 내려와달라”고 설득했다. 이후 통합당 행안위 간사인 이채익 의원등과 접촉하며 중재에 성공하고 민주당마저 설득해냈다.

다만 이러한 포용 행보를 보이는 김 대표가 무관용으로 나서겠다는 부분이 있다. 바로 ‘극우 유튜버’다. 김 전 대표는 “극우 유튜버들은 다 돈 버는데만 혈안이 된 사람들”이라며,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표는 “이제부터는 그들과 싸우려고 한다”며 적극적인 강경 대응을 시사한 바 있다. 김 전 대표의 무관용 행보는 극우 유튜버들의 행보가 막상 보수진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통합당 일각의 분석에 의거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통합당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자, 최근 국민의당 및 안철수 대표와의 연대설이 급격히 대두되고 있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국민의당은 보수 야당”이라 정의하며 “통합당이 김종인 체제가 되면서 전환적이고 실용성 있는 관점의 정책들을 제안해 국민당과 스탠스를 같이 하는 입장에 있다”고 발언한 것이 그 예이다. 권 의원은 김 위원장과 안 대표와의 회동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통합당과 국민의당 의원들이 같이 참여하는 ‘국민미래포럼’의 발족도 심상치 않다. 이미 김삼화·이동섭·김수민 등의 안철수계 전직 의원들이 통합당에 입당해 있는 상태이기에, 두 당 간의 연대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물론 안 대표는 김 위원장과의 회동 가능성에 대해 “만날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고, 김 위원장 또한 안 대표를 두고 “사람은 착한데, 착하다고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다”라며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일축했다. 그럼에도 박수영 통합당 의원이 부산시장 예비후보군을 거론하면서 그 예시로 안 대표를 들었을 정도로, 통합당과 안 대표 그리고 국민의당 간의 연대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평가다. 이유는, 통합당 관계자의 지적대로 차기 대선 도전을 꿈꾸는 안 대표에게 남은 정치적 선택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안 대표도 스스로 자신에 대해 “인기가 있을 때에는 실력이 없었고, 실력이 생기니 인기가 사라졌다”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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