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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위기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①]日과 한반도이해 공유한 美의 ‘北악마화’가 원인

文대통령도 트럼프 참모에 불만 드러내, 북미축에서 남북축 중심으로 새판 짜기 모색

[폴리뉴스 정찬 기자] 문재인 정부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북미 비핵화협상 결렬과 북한의 4.27판문점 선언 파기 행보로 위기에 봉착했다. 다시 한반도 남북대결구도가 복원돼 평화프로세스가 실패로 귀결될 지 아니면 새로운 판짜기를 통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 2막이 전개될 지 갈림길이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 6.12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 9월 평양 남북공동선언으로 한반도평화의 물꼬를 텄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고비로 힘을 잃었다. 이어진 장기간의 북미협상 교착에 결국 북한은 6월 들어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부터 약 2년 간 진행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서 북미 비핵화협상은 모든 것을 건 승부처였다. 비핵화 협상 진전으로 남북협력이 확대되는 선순환을 기대했다. 그러나 중심축인 북미 협상이 멈추면서 남북 축도 움직일 수 없는 수렁에 빠지면서 한반도평화의 시계도 멈춘 것이다.

이를 막고자 하노이 노딜 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과 북미 정상 간의 만남을 만들어내 반전을 도모하기도 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스톡홀름에서 북미 실무협상이 열렸지만 결렬됐다. 이 순간 1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의 북미협상도 종료됐다. 미국 대선일정 돌입으로 더 이상의 협상 진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당사자, 남북한은 올해 중 미국 대선 국면 전개와 맞물려 ‘하노이 노딜’ 이후 새로운 판짜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남북한 모두 코로나19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지연됐다. 새판 짜기가 비로소 표면화된 것은 5월 이후부터다.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벌어진 남북한 긴장고조가 바로 그것이다.

남북한에게 새판 짜기는 지난 2년 동안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한계, 북미 비핵화협상에만 모든 것을 걸었던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전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이 ‘한반도 현상유지 전략’에 갇혀 있는 한 평화프로세스 추진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현실의 반영이다. 

문 대통령은 1월 2일 ‘신년 합동인사회’에서 “남북관계에 있어 더 운신의 폭을 넓혀 노력해나가겠다”고 했다. 북미협상과는 별개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미국 대선 일정으로 생길 빈 기간에 남북관계 주도권을 잡기 위한 행보를 미리 선보였다. 지난해 10월 금강산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물 철거 지시는 올해 벌어질 상황의 예고편이었다.

그러나 남북한의 새판 짜기 발걸음은 서로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바라보는 남북한의 궁극 목표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남한은 평화를 통일로 가는 관건으로 바라보지만 북한은 김정은 체제 안정이 근본목표다. 남한의 대북 개혁·개방 노력을 한편으로는 위협으로 간주한다.  

남북한뿐만이 아니다. 볼턴 전 보좌관이 회고록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한국의 창조물(Moon’s creation)’, 한반도 종전선언을 ‘한국의 통일 어젠다’로 바라봤다. 한국 주도의 한반도평화 구도를 달가워하지 않는 미국 속내가 담겼다. 이는 ‘한반도 적대구도 지속’을 원하는 일본의 이해관계와도 일치한다. 반면 중국은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북중 ‘순치(脣齒)관계’의 입술이 사라지는 것으로 봤다.

따라서 미국 대선 일정과 겹친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새판 짜기는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국가들 간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해 다시 설계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위기를 맞은 데는 일본의 집요한 방해도 한 몫 했음을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을 통해 확인됐고 중국 또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그럼에도 새판 짜기는 한반도 당사국인 남북한이 한반도평화의 동력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미중 신냉전 구도와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뚫는 주체는 남북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선제 축을 북미에서 남북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볼턴 회고록이 드러낸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위기 봉착 원인, ‘미국의 북한 악마화’

존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은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위기를 맞은 근본 이유를 한국 국민에게 알려줬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고록에서 일본 입김에 좌우되는 미국의 한반도전략, 북한을 악마화하는 미국 보수, 한반도 현상유지 우선, 그리고 한국의 남북관계 개선행보에 대한 불신 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미국 정치의 이단아인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미국의 보편적 기류를 뚫고 세 번에 걸친 북미정상회담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란 점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역으로 한국이 이러한 미국 주류사회를 움직여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진행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재차 각인케 했다. 

볼턴은 1차 북미정상회담을 한국에 의해 만들어진 ‘외교적 춤판(fandango)’이라며 한국의 통일 의제라고 했다. 또 자신의 한국 측 카운트파트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문 대통령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폄훼하면서도 일본 측 카운트파트인 아베 신조 총리와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과는 한반도 문제에서 항상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행동 대 행동’ 원칙을 “믿지 않는다”며 북한의 항복을 이끌어내기 위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일본 주장에 함께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를 ‘쇼’라고 했고 4.27판문점정상회담을 실질 내용이 없는 ‘DMZ 축제’로 폄하했다.

6.12 싱가포르 회담을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문 대통령의 판문점 2차 남북정상회담 등 노력으로 싱가포르 회담이 열리자 북미공동성명 속에 한반도 종전선언을 막는데 성공한다. 여기에는 아베 총리의 요구도 담겼다.

하노이 회담에서는 북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평가 절하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추가 양보를 요구하도록 했고 정상회담장에서 자신이 끼어들어 “북한 핵·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 전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고부터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일본의 요구사항을 제시함으로써 판을 깨는데 기여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하노이 결렬 이후 문 대통령이 추진한 6.30판문점 남북미 회동에 반대하며 성사되길 않길 바라는 속내도 담았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나선 문 대통령을 조롱하고 비난했다. 

그가 없애려 한 것은 ‘북한 핵’이 아니라 ‘남북화해’였다는 속내는 회고록 곳곳에서 확인된다. 북미회담을 문 대통령의 창조물(Moon’s creation)로 “한국에서는 김정은이 나서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자고 제안한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알고 보면 한국이 김정은을 끌어들이고 트럼프도 끌어들인 것”이라고 했다. 볼턴의 실제 타깃은 문 대통령과 한반도평화였다. 

선(先)핵폐기의 일괄타결 방식으로는 북한을 끌어낼 수 없는 현실임에도 여기에 대해선 눈과 귀를 닫았다. 영변 핵시설 폐기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단계의 돌입이라는 한국의 주장을 일축하고 “문 대통령의 정신분열병적 아이디어”라고 했다.

그리고 하노이 결렬 이후 남북관계가 냉담하게 변한데 대한 ‘고소함’을 “문재인 정부는 희생양을 찾고 있었다”는 말로 표현했고 문 대통령의 6.30판문점 회동 제안에 불편함을 드러내며 일본 오사카 G20(주요20개국 정상회담)에서의 문 대통령에 대해 험담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기를 바랐으나, 문 대통령은 필사적으로 삼자회동으로 만들려 했다”며 “나는 오히려 이렇게 되면, 회동 자체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슬쩍 기대했다”고 했다. 또 판문점 회동 때 문 대통령을 따돌리고 북미 정상 간의 만남이 되길 기대했다.

美 강경보수세력 日과 한반도 이해 공유, 文대통령도 이에 대한 불만 나타내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은 미국 내 강경 보수세력과 일본 아베 총리가 동일한 인식 속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선제 타격론, 대북 압박과 북한 붕괴론에 기반 한 이들의 행보가 지난 2년 동안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최대 걸림돌이었음을 확인시켰다. 

북한의 악마화로 이익을 보는 집단은 미국 군산복합체다. 볼턴은 이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한반도 분단체제’를 원하는 일본과 이해를 함께한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북한 비핵화’라기보다는 ‘남한의 우경화’이며 ‘한반도 냉전질서’다. 북한 핵은 남한의 우경화를 독촉하는 채찍이자 수단이다. 한국 내 보수정당들이 이들을 추종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볼턴의 회고록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6월 22일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 기본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이러한 위험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전달했다.

정 실장은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또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며 “이러한 부적절한 행위는 앞으로 한미동맹 관계에서 공동의 전략을 유지 발전시키고 양국의 안보 이익을 강화하는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는 외교기밀 누설에 대한 문제제기와 불쾌감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로서는 문 대통령을 조롱하고 폄훼한 볼턴의 회고록으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대내외에 알리는 소득을 얻었다. 청와대는 이러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서 볼턴 전 보좌관이 그 행위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창작과 비평> 2020년 여름호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두 차례의 북미회담을 통해 한반도문제를 풀려 했지만 국무부, 백악관 참모, 정보부처 등 “참모들 중 아무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문제를 풀도록 도와주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임 전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추진에 볼턴 전임자인 허버트 맥매스터 전 보좌관 등 참모들이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생생한 모습도 전했다. 2018년 3월 정의용 실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북미정상회담 추진을 발표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도 참모들 중 아무도 기자회견장에 나오지 않은 장면을 제시하면서 “국무부를 포함해 미국 정보부처와 백악관 핵심관계자들이 한반도문제에 얼마나 부정적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6월 17일 남북 및 외교안보 관련 원로들과의 오찬대화에서 남·북·미 정상 간에 비핵화 합의에도 트럼프 참모 반대로 무산됐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남북관계 악화 사정과 관련해 이를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 없지만 답답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볼턴 전 보좌관이 이를 터뜨려준 셈이다.

정찬 기자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여론조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외교-안보-통일 등의 현안을 정확하게 보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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