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와의 동행‘ 등 슬로건으로 사회적 약자 배려 노선 간다
보수 색채 탈색하는 ’파괴적 혁신‘ 추구
’영 유니온‘ 등 독일 기민당 모델 벤치마킹

<사진=연합뉴스>
▲ <사진=연합뉴스>

"진보, 보수, 중도라는 말 쓰지 마라. 자유우파라는 말도 쓰지 마라“.

미래통합당의 고강도 쇄신작업을 맡게 될 김종인 신임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소신을 잘 담고 있는 지시사항이다. 이념에 천착해 전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현 상황을 타개하고, 보수진영을 ‘파괴적으로’ 혁신해 보수정당의 시스템의 근본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공개 당 지도부 회의부터 변화 꾀하는 김종인

김 비대위원장은 당장 보여지는 당 지도부의 회의 방식부터 바꾼다. 최고위원 서열 순으로 4~5분간 공개발언을 쭉 하던 과거 방식과는 달리, 일부의 발언만 공개하되 ‘회의다운 회의’를 하겠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가 초반 일부만 공개되는 만큼, 대변인이 회의 내용을 요약해 전달하게 된다.

32세 청년으로 선정 당시 화제를 모았던 정원석 비대위원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공개회의의 모두발언들이 형식적이었다면, 실제로 일하는 모습을 보이고 성과중심으로 평가받자는 것“이라며 ”거대여당을 상대로 내부 메시지 통일도 안 되면 그만큼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 탈색’ 하고 사회경제적 약자 배려에 중점 두는 쪽으로 노선 전환

김 비대위원장은 과거 보수진영이 다소 취약하다고 평가됐던 부분인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려하는 쪽으로 큰 노선의 줄기를 설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 전면에 ‘약자와의 동행’, ‘포용하는 정당’ 등의 슬로건을 내걸겠다는 전언이다. 과거 대기업 재벌, 정규직, 부유층 등의 입장을 많이 대변하는 입장에서 노동자, 서민, 사회적 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더 챙기는 방향으로 통합당의 노선 변화를 김 위원장이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 측면에서는 ’보수 탈색‘을 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수정당의 핵심 가치인 자유경쟁에 의거한 시장주의에 집중하는 정책만 집착할 경우 유권자 지형이 점점 진보 쪽으로 쏠리는 대한민국 현실 상 진보 진영에 백전 백패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보수의 색깔을 빼는데 중점을 둘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진보정당의 정책이더라도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건 이념이나 정책의 ’색깔‘을 떠나 통합당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소신이다. 진보정당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기본소득제, 전 국민 고용보험제 등 정책이 통합당 내부에서 논의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보수 탈색‘은 9년 전에도 시도된 적이 있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통합당의 전신) 비상대책위원 시절 김 위원장은 한나라당 정강정책에 명시된 ’보수‘ 용어를 상당수 삭제한 바 있다.

구 한나라당 비대위에 참여한 데 이어 9년 만에 다시 위원장으로서 같은 당 비대위를 이끌게 된 지금은 단순히 정강에서 '보수' 용어를 삭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보수 색채를 탈색하고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정당 모델을 제시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독일 기독민주당 벤치마킹…’영 유니온‘ 참고해 청년 정치인 요람 만든다

독일 기독민주당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독일 유학파‘인 김 위원장의 쇄신 방향을 예상할 수 있는 일종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최근 첫 공식 행보였던 통합당 원외조직위원장을 상대로 한 비공개 강연에서 ”독일 기독민주당이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깨닫고 정책 수정을 했듯 통합당도 보수, 시장만 고집하지 말고 현실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독일의 기민당 내 독립적인 일종의 자(子)정당인 ’영 유니온‘의 사례를 참고해 통합당 내 청년 정치인의 요람을 키우겠다는 구상이 대표적이다. 정 비대위원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2년 뒤 지방선거와 대선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통합당의 어젠다와 전략을 개발할 수 있는 청년 인재를 모으라는 게 김 위원장의 뜻“이라고 말했다. 다만 비대위 사정을 잘 아는 통합당 관계자는 ’폴리뉴스‘와의 31일 통화에서 ”실제로 계획을 집행할 때에는 미국, 영국 모델 다 참고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 위원장의 ’보수‘ 색채 탈색에 대해, 김병민 비대위원은 31일 ’폴리뉴스‘와의 통화에서 ”(김 비대위원장이) 탈색이라는 표현을 쓴 적은 없다. 다만 이념 논리에서 벗어나서 미래지향적으로 가자는 것“이라며 ”전국위원회를 통해서 의결된 비대위인데, 큰 찬성으로 변화 노선에 대해 별다른 이견 없이 새 비대위에 힘을 실어줬다“고 표현했다.

다만 당 내외의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수통합 과정에서 해외의 보수정당의 사례를 검토하는 등 보수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개혁이 가능하다는 일부의 논리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기에, 아예 ’보수 탈색‘을 시도하는 김 위원장과의 상당히 충돌이 예측된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이날 ’폴리뉴스‘와의 통화에서 ”보수라는 개념을 버린다기보다, 시대사적인 흐름이 기존 보수의 가치인 안보와 성장에서 복지‧평화‧통일 쪽으로 옮겨갔음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며 ”87년 체제부터 갖고 왔던 보수의 여러 아젠다가 이번 총선을 통해 여러모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취하는 노선“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홍준표 전 대표는 김 위원장의 이러한 노선에 일부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29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내공 없고 뿌리 없는 정치 기술로 일부 사람들을 현혹 할수는 있으나 종국적으로 국민들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며 ”눈앞에 보이는 권력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국민들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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