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체제 출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작용
전문가 “태영호 당선, 조롱에 대상 아냐”
태영호 “목숨 걸고 찾아온 이 나라의 자유 지킬 것”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의심, 통일시대 우리 사회의 과제
[폴리뉴스 송희 기자]
‘인민이 편한세상’ ‘동부센트레빌’ ‘내래미안’
‘부동산 공화국 강남구 력삼동 은마 아파트 재건축 도감도’ ‘장군님따라 천만리’
“이제 력삼동 가려면 려권 준비 해야갔네?”
“평양시 청담동에 일하러 갔다 올게. (오전) 9시에 월북하고 (오후) 6시에 탈북한다.”
지난 4·15 총선에서 서울 강남갑 지역구에 당선된 ‘탈북민’ 태구민(태영호) 미래통합당 후보가 당선된 것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 SNS(사회연결망서비스)에서 일부 누리꾼들이 쏟아낸 조롱이다.
강남에 새로 지어질 아파트 이름이라며 기존 아파트 이름을 바꿔 부르는가 하면 태 당선인의 지역구인 강남구를 평양직할시 강람구라고 비꼬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현 정권과 민주당을 ‘종북세력’이라며 비판하던 강남이 진짜 북한에서 온 사람을 지역구 의원으로 뽑았다. 자본주의의 심장 급인 강남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글을 올렸다.
북한·중국 등 공산·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공포
이에 대해 탈북민 출신인 태 당선인에 대한 조롱이 쏟아지는 이유는 태 당선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의 사회주의를 완전히 씻어냈는가에 대한 ‘이념적 동화’에 대한 의심이라는 시선이다.
일부 전문가는 조롱성 반응들이 혐오와 정치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진단했고, 실제로 이런 반응은 친문(親文)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
태 당선인(58.4%)은 이번 총선에서 강남갑 지역에 출마해 더불어민주당 김성곤 후보(39.6%)를 압도적으로 꺾고 ‘탈북민 출신 첫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당당히 거머쥐었다.
그럼에도 북한 공산주의 체제의 고위공직자 출신으로 4년 전 탈북한 태 당선인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양상은 지난 2010년 이라 몽골 출신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의원과 2012년 필리핀 출신 이자스민 후보가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자, 인종차별 공격을 퍼부었던 것과는 다른 반감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몽골이나 필리핀처럼 문화나 인종이 다른 나라가 아닌 같은 민족임에도 이념적으로 대치되기 때문에 국민들이 더욱 민감하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조선족 출신 한국인의 의원이나 비례대표 선출 자체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조선족 출신을 단순히 중국인으로 보기보다 공산주의 체제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경계심이 먼저 발동된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아직 우리 사회에 레드 콤플렉스가 남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레드 콤플렉스(Red Scare)는 공산주의에 대한 과민한 반응 일컫는다. 이념 갈등은 우리 역사 속에서 계속 존재했고, 정치적으로 이용됐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남국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태 당선인에 대한 조롱과 공격은 “북한이 군사적 대치 속, 적대 국가로 설정된 상황에서, 북한 고위공직자 출신이 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의 중요한 고위공직에 진출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가 작용한 것”으로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남북의 안보 문제가 깊은 상황에서 태영호 당선인이 등장해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면서 인지 부조화가 생긴 것”이라며 “공포에 대한 근거가 터무니없진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태영호 당선인에 대한) 의심의 차원이 다르다. 이주민에 대한 다문화주의 정책으로 ‘동화 정책’을 도입한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적 동화를 의심하는 것보다, 이념적 동화를 의심하는 경우가 더 강하다”며 “우리나라 정치 지형이 문화 투쟁보다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로 나뉘는 이념 투쟁이 더 첨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 “조롱이나 비난의 대상 아닌 긍정적인 사회 현상”
이와 관련 국내 전문가들은 태 당선인의 국회 입성을 조롱이나 비난의 대상이 아닌 긍정적인 사회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는 “태구민 당선자의 이런저런 점들 중 마뜩잖은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하여 의문이나 불만을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되, 오로지 그의 출신이나 출신 지역의 말투 등을 가지고 희화할 일은 아닐 것”이라며 “더구나 그와 탈북자 일반을 싸잡아 비아냥거리는 행위는 말할 것도 없다”고 일침을 날렸다.
국내에 거주하는 3만 3천 명의 탈북민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가장 높은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출신 국회의원을 대표로 뽑으셨다”라며 “탈북민이라는 것을 가리지 않고 뽑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연방 하원의원, 시의원, 시장 등에 당선되면 자랑스러워하고 대서특필 되면서, 반대로 한국에서 다른 나라 출신이 고위공직에 오르는 것은 탐탁지 않아 한다고 지적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역, 이념, 당리당략에 따라 자신이 속하지 않은 것에 대해 혐오적 발언을 하는 배타적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며 “탈북민뿐만 아니라 다문화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형성된 것. 비단 이번에만 해당하는 현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탈북자 출신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지만 이번 사례는 좀 성급했다는 비판적 의견을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무차별적 조롱과 인신공격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강남 스마일(Gangnam Smile)’ 긍정적으로 평가한 외신 보도
로이터 통신은 지난 16일(현지 시간) ‘강남 스마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직 북한 외교관인 태 후보가 영국 런던 주재 대사관을 탈출해 망명한 지 4년 만에 한국에서 가장 호화스러운(swankiest) 동네의 국회의원이 됐다”고 보도했다.
BBC는 “태 당선인의 승리가 정치적으로 어찌 됐든, 목숨을 걸고 남한에 온 다른 탈북자들에게는 너무나 긍정적인 신호”라며 “한 때 (김정은) 정권의 일부였던 사람이 한국 국회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보고 지금 평양에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라고 평했다.
한편 태 당선인은 이 같은 조롱에 개의치 않고 꿋꿋하게 의정활동을 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16일 강남구 선거사무소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목숨을 걸고 찾아온 이 나라의 자유와 시장경제 질서를 지키기 위해 제 모든 것을 다할 생각”이라며 “강남 주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찾아서 (한국에) 온 저의 용기를 보고 저를 선택하신 것 같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태 당선인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한 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바치리’라는 방명록을 남겼다.
앞서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한국인 백인이 집중되고 있는 부자동네에서 연방 하원에 출마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때였다. 내세울 것도 없었던 나는 공화당 내 경선에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온 ‘애국자’임을 강조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김 의원은 1991년 미국 LA 다이아몬드바 시장을 거쳐, 1993년 아시아계 최초로 미국 연방 하원의원 3선을 한 재미교포다.
탈북민들에 대한 편견과 의심은 통일시대로 가는 우리 사회의 과제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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