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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진 칼럼] 김정은위원장이 내놓은 백지 시험지

2020년 1월 1일 북측은 통상 해오던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대신 제7기 5차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회의결과로 신년사를 갈음하였다. 

내용은 크게 정세인식, 대내과제, 대미 방향 등으로 구성되어있지만 대남 내용은 전혀 없는 백지였다. 이에 대해 정부는 통상적으로 당중앙 전원회의에서 대남 문제는 다뤄지지 않는다는 궁색한 발표를 하였지만, 상당히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북미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시작됐던 한반도 평화의 훈풍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측에 대해 비난을 하든 아니면 새로운 제안을 하든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단 한마디도 없었다.

우리 정부로서는 백지로 된 시험지를 받은 꼴이 되었다. 북측이 내놓은 백지시험지에는 미루어 짐작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북측이 남측을 향해 쏟아놓은 비난 속에 수없이 나와 있다. 정부 또한 남북협력을 위해서 무슨 답을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다. 답안지 작성에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백지로 된 시험지는 결국 남측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즉, 북측은 남측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답안지를 냈다.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해 북미관계가 교착국면에 빠져있다고 진단하고 남북협력을 증진시킬 현실적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절실하다면서 다양한 제안을 내놓았다.

적지 않은 내용으로 채워진 문재인 대통령의 답안지에 대해 북측이 기대했던 내용이 얼마나 있을까. 그동안 북측은 남측이 촉진자, 중재자 운운하지 말고 한미동맹의 예속에서 벗어나 당사자로서 자주적으로 행동하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북측의 이러한 기준으로 미뤄볼 때 문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해 아마도 북측은 D학점 정도로 평가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남측의 기조로는 남북관계 진전의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출제자의 의도를 잘 알면서도 출제자의 의도와는 다른 답안지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곤혹스런 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한반도의 긴장국면을 끌고 갈 것인가? 지금의 국면은 이러저러한 남북협력의 아이디어를 늘어놓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한 해법은 2018년도에나 해당되는 철지난 방안이다. 현정세는 쾌도난마까지는 아니어도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9.19평양공동선언에 영변 핵시설과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 시설의 영구폐기라는 놀라운 합의를 담았지만 북미는 더 이상의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이는 우리 정부의 능력 밖이었다. 왜냐면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두 추동력인 북미축과 남북축에서 전자에 대해 촉진자, 중재자로서 한국이 갖는 한계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이 남북축이라는 당사자로서 갖는 남북협력이라는 독자적인 정책공간을 북미축인 북미 협상에 예속시켜버린 것이었다. 즉,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독자적인 정책공간이 북미 협상 교착 속에서 질식되어버린 것이다. 

이 교착국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 남북관계의 특수성에서 나오는 남북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더 이상의 추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말하면 북미간 비핵화 협상을 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남북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투 트랙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지만 완전한 합체는 아니기 때문에 북미협상이 비틀거리더라도 남북 협력을 통한 새로운 길을 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추동력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후자를 북미협상에 종속시켜버린 것이다. 물론 남북협력을 통해 한반도평화프로세스로 나아가는 길에는 불가피하게 약간의 한미동맹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정부가 이를 감수할 수 있느냐다. 백지로 된 시험지는 정확히 이를 묻고 있다. 그래서 결단이 없으면 문제에 대한 답안지에 아무리 많은 아이디어를 채워 넣더라도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결단의 순간은 3월에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다. 2월 중순이면 트럼프 탄핵절차도 끝난다. 한미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할 것인지에 대한 기로에 설 것이다. 또한 만약 중단한다면 중단의 이니셔티브를 한국이 할 것인지가 향후 남북협력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결단해야 한다. 시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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