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1967년 대우실업으로 출발해 재계 2위 그룹으로 성장
1999년 IMF 견디지 못하고 그룹해체...김우중 17조 추징금
박지원 “김우중,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 였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 <사진=연합뉴스>
▲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 <사진=연합뉴스>

대우 그룹 창업주인 김우중 대우 그룹 전 회장이 83세를 일기로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9일 “오후 11시50분 김 전 회장이 입원한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83세를 일기로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히며 “김 전 회장이 지난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반복하다 최근 입원 치료를 받아 왔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을 설립하며 “세계는 넒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경영을 슬로건으로 1980년부터 1990년대 IMF 외환위기를 겪기 전까지 재계2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으나 1999년 결국 부도를 내며 해체되었다.

대우그룹의 시작은 김 전 회장이 1967년 3월22일 설립한 섬유 회사 대우실업을 모체로 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독특한 자금동원력과 특유의 경영 추진력을 바탕으로 대우실업을 국내 최대 규모급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시켰다.

이후 김 전 회장은 내쇼날의류, 동양증권등을 인수해 몸집을 불리더니 대우건설, 대우중공업을 연달아 설립하여 금융, 전자, 중공업 분야 등으로 진출했고 1981년 대우개발과 대우실업을 합병하며 (주)대우를 출범시켰다. 1983년엔 대우자동차를 출범시켜 자동차 사업에도 발을 넓였다. 

대우는 정부의 지원과 더불어 개발도상국, 구 동구권 국가들에 발을 넓히며 급성장 했고 1998년 41개 개열사, 396개 해외법인을 거느린 재계 순위 2위 대기업으로 성장하며 한때 국내 젊은이들 사이에서 현대와 더불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대우는 1999년 외환위기 사태가 일어나며 89조 규모의 사상최대 부도액수를 내고 해체되었다. 그룹은 해체되고 김우중 회장은 해외도피를 하다가 2005년 자진 입국했고 2006년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의 형을 구형받았지만 2007년 말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사면되었다. 

김 전 회장의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에 마련되었고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에 아주대병원 대강당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박지원 “김우중 브리핑 하던 모습 인상적...명복을 빈다” 추모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전 회장을 추모했다. 

박 의원은 “김 전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였다”며 “야당 때부터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외환위기 극복이 중요하니 귀국하지 말라고 했더니 혹시나 밉보일까 봐 안절부절, 자정 넘어서까지 집으로 전화하시던 정중한 모습이 떠오른다. 이후 김 전 회장은 귀 국 뒤 김 전 대통령을 독대해 만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브리핑 하던 모습에서 ‘저런 실력과 열정이 대우를 창업, 성장 시켰구나 느꼈다’”라며 “이후 김 전 대통령이 대우그룹 소생방안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정부 부처 장차관들과 김 전 회장이 대립하여 결국 대우 자동차를 비롯한 6개사만 회생 하기로 결정났고 이후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떠났다”고 언급했다.

박 의원은 마지막으로 “또 한분의 큰 별이 떠나셨다. 누가 그분을 평가할 수 있을까”라며 “하늘나라에서 김 전 대통령 내외를 만나셔서 드리고 싶었던 말씀도 많이 나누시길 바란다. 명복을 빈다”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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