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국방 등 분야별 정책공조로 동반자 관계 회복...9월 조기전대 현실화 가능성 적어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7월 10일 귀국 후 처음으로 당 공식행사에 참석해 "당이 물러 터졌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이 딴 짓을 할 여력이 없다. 할 일이 태산"이라며 "한나라당이 들어서고 처음 세운 정부가 이명박 정부인만큼 ‘한나라당 정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없고, ‘정부’만 있다면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 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질타했다. 당 지도부의 안이한 인식과 청와대 주도의 국정운영이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최고위원이 지난 8일 <폴리뉴스>와 단독인터뷰에서 정치 재개를 시사한 후 이틀 만에 나온 발언이다.

이 전 최고위원의 정치복귀가 예정보다 빨라진 것을 두고 정가에서는 '10월 재보선을 통한 원내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9월 조기전대를 통한 당권장악으로 궤도를 수정했는데, 이것마저도 성사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참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4.29재보선 참패에 대한 '지도부 책임론'으로 불거진 9월 조기전대 주장은 지난 6월 4일 열린 한나라당 의원연찬회를 기점으로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9월 조기전대를 통해 당에 진입할 경우 한나라당이 친이와 친박으로 두 쪽 날 것이란 전망과 잘못된 공천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가 지도부가 아닌 이상득 의원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지도부책임론과 국정기조 변화를 주장하는 의원들에게 상당히 불쾌해 했으며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나선 것이 결정타였다. 미디어관련법, 비정규직보호법, 각종 민생 관련법 등 처리해야 할 사안이 산더미인데 계파 간 갈등이 심화될 경우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 후 당 쇄신특위에서 다시 논란이 있었지만 지도부책임론이 동력을 잃은 상황이고 강성 친이계 의원들의 '주류책임론'도 화합이 우선이란 명분에 밀리면서 9월조기전대론은 사실상 소수 주장으로 전락했다.

때문에 이 전 최고위원이 직접 나서지 않고는 반전이 어렵게 된 것이다. 따라서 6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25일경부터 9월 전대를 둔 힘겨루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9월 조기전대 성사 가능성 여전히 적어...박희태, 안상수 권한대행체제도 검토

현재 9월 조기전당대회를 주장하는 최고위원으로는 공성진, 박순자 의원이 꼽히고 있다. 이들은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10월 경남 양산지역 재보선에 출마할 경우 8월 경 대표직을 사임할 것으로 예상, 동반 사퇴하면서 9월 조기전대로 몰고 가는 전략을 세웠지만 정몽준 최고위원이 당헌·당규에 따라 대표직을 승계 받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 최고위원측 관계자는 동반 사퇴 가능성을 묻는 <폴리뉴스> 질문에 "모처럼 양대 계파가 화합해 가는 분위기인데 우리가 그걸 깰 수 있겠느냐"고 말해 대표직 승계에 무게를 싣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정 최고위원이 동반 사퇴할 경우 9명의 최고위원 중 4명(박희태,정몽준,공성진,박순자)이 사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돼 친박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조기전대로 연결되기 때문에 정 최고위원 입장에서 보면 대표직을 승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신임을 받고 있는 김선동 의원은 "박희태 대표가 출마를 위해 대표직을 사퇴할 경우 정몽준 최고위원의 대표직 승계는 당연한 일"이라며 "만약 정 최고위원이 동반사퇴 의사가 있다면 박희태 대표가 대표직을 안상수 원내대표에게 맡기는 권한대행체제로 가면 당내 분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박희태 대표 측도 김 의원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취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박 대표 측 관계자는 "전당대회를 열려면 하부 조직 정비와 함께 대의원 선출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아 6월 임시국회가 끝난 후 준비한다고 해도 9월에 전대를 치르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어렵다"며 "안상수 대표권한대행체제도 9월 전대를 막는 한 가지 방안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심대평 총리설은 실체가 없는 ‘설’일 뿐...어떤 정치세력이 목적가지고 흘리는 것

청와대 내에도 아직까지는 '주류책임론'에 공감하는 부류들이 있다. '심대평 총리설(충청연대론)'이 흘러나오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선진당과 정책연대나 선거연대를 통해 힘을 모으면 친박계를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친이계가 결속하고 선진당이 동조하면 국회의원 과반수를 넘어서기 때문에 조기전대를 통해 주류가 당을 책임지고 이끌면서 국정에 추동력을 실어주고 선진당과 연대를 통해 친박계 고립을 고착화시키면 된다는 셈법으로 해석된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쓰자는 구상이다.

심대평 총리설에 불쾌감을 보였던 이회창 총재가 7월 9일 라디오에 출연해 "특정 정책 목표나 정치상황에서 연대·공조한다고 하면 그런 틀 위에서 총리고 장관이고 하는 것은 좋다"며 "그런 것 없이 그냥 한 두 사람 빼가는 식으로 하면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고 밝히자 '심대평총리설'이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박선영 선진당 대변인은 12일 "우리 당 사람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국가 주요정책을 현 정부가 펼치겠다면 대승적 차원에서 입각 등에 대해서 동의할 수 있지만, 화합 차원에서 우리 당 사람을 총리나 내각에 기용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며 “이는 이 총재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류근찬 원내대표는 "실체가 전혀 없는데 언론에 흘리고 일부 여권에서 그런 모양새 갖는 것은 치졸한 정치 술수"라고 일축했다.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는 당내 친박계와 화합도 못하면서 선진당과 연대하는 것을 두고 국민들이 어떻게 평가하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선진당과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도 청와대가 이런 의사를 이회창 총재에게 전달한 사실이 없다는 점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때문에 정가에서는 심대평총리설이나 충청연대론은 어떤 정치세력이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청, 이재오 달랠 묘수 고심 중...수평적 사고로 접근 중, 회동 성사 가능성 커

정치권의 중요 관심사 중 하나는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만남이 성사될 것인가'이다. 살아있는 권력자와 현재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권력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양측이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를 털어내고 이 대통령이 집권 당시 밝혔던 국정 동반자 관계를 이뤄낸다면 경제 회생, 대북문제 등에 있어 상당한 정책 추동력을 가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의 투자촉진을 예로 들어보자. 민간기업의 투자는 강제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권력과 유력한 차기 권력이 손을 잡는다면 경제정책의 지속성이 담보되기 때문에 투자를 끌어내기가 수월해 질 수 있다. 대북정책이나 국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폴리뉴스>는 양측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추론해보기 위해 친이직계 소장파 의원들과 박근혜 전 대표측 핵심인사들과 만남을 가졌다.

박근혜 전 대표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선동 의원은 "이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면 (박 전 대표가)조건 없이 응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박 전 대표는 자신이 나서면 이 대통령 국정운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염려한다"고 강조했다.

홍사덕 의원은 "40대 젊은 사람들이 수평적 사고로 접근하면 관계 개선의 해법이 찾아 질 것"이라고 밝혀 최근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물밑교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관계 개선 방안에 대한 친박계 의원들 의견을 정리하면 '경제 살리기나 국방 등 양자 간 이견이 없는 분야에서 이 대통령이 책임을 나누자고 진정성 있는 제의를 하면 박 전 대표도 흔쾌히 받을 것이다'로 요약된다.

친이직계 소장파들의 움직임도 계파 화합이란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이 대통령은 강승규, 김영우, 조해진 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정정길 대통령 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당내 분위기를 전해 들었으며, 원희룡 쇄신특위 위원장과도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

이런 자리를 통해 이 대통령에게 친박계 의견이 전달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조만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만남도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은 맞지만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달랠 뾰족한 방안이 없어 고민"이라고 전했다. 친박과의 관계 개선이 자칫하면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앞길을 막는 것으로 비춰질 것에 대한 우려로 풀이된다. 바꿔 말하면 이 대통령이 아직 이 전 최고위원을 달랠 방도를 찾지 못한 것이란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과 이 전 최고위원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고민을 할까란 의문이 들 수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유세총괄 부단장을 맡으며 외곽조직인 ‘국민성공실천연합’을 이끌었던 3선의 국회의원 출신인 박창달 자유총연맹 총재는 "이 전 최고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기까지 일등공신이며, 대통령께서도 이 전 최고에 대해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하신다"고 밝혔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 8일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뭐 그런 것 없는데..."라면서 "대통령이 잘 돼야 나라도 잘되는 것 아니냐, 당이 제대로 뒷받침을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이 전 최고위원 간 애정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자신이 당으로 복귀하면 친이·친박간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가장 답답해했다. 정치인이 정치를 해야 하는데 이런 오해 때문에 1년 넘게 미국행을 택했으며 국내에 들어와서도 100일 동안 조용히 지냈다는 것이다. 그는 대선과 18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친박계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친박계 김선동 의원은 이에 대해 "지난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이 전 최고위원에게 감정이 많았지만 최근 친이계 의원들과의 소통을 하면서 오해가 있었던 부분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박계가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경계심을 푼 것은 아니다. 차기 대권을 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의 당무 복귀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복귀 시기는 최소한 내년 2월은 지나야 서로가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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