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희 통상본부장 "日조치 '위험한 선례'…美상무장관도 공감"
'WTO 파견' 김승호 산업부 실장 "日, 눈 뜨고 귀 열어야“

[연합뉴스] 다음 달 2∼3일 열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만나자는 한국 정부의 제안을 일본 측이 또 거절했다.

미국에서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한일 양국을 넘어서 미국과 글로벌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29일 기자들과 만나 "일본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에게 RCEP 장관회의를 계기로 만나자는 제안을 했는데 일정상의 이유로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주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한국 측의 공개적인 양자협의 제의를 거부한 데 이어 유 본부장 명의의 제안 역시 거절한 것이다.

유 본부장은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밝혔듯 일본과는 언제 어디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RCEP 현장에서도) 이런 기회 있기를 바란다"고 재차 촉구했다.

지난 23일부터 사흘간 미국 출장을 다녀온 유 본부장은 "미국 주요 인사들을 두루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양국 간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를 문제 해결의 도구로 이용한 매우 위험한 선례임을 알렸다"고 밝혔다.

유 본부장은 "일본의 조치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어서 현 상황이 엄중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한일 양국을 넘어서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미국 기업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통제를 강화한 이후 반도체 가격이 20% 이상 급등했다. D램 가격(8기가·현물 기준)의 경우 조치 다음 날인 지난 5일 3.03달러에서 32일 3.69달러로 상승했다.

유 본부장은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형성된 국제 무역질서를 흔들고 동아시아 역내 안보를 위한 한미일 공조를 약화할 수 있음을 부각해 설명했다"며 "아울러 한국의 수출통제제도와 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서는 근거도 없으며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런 설명을 토대로 유 본부장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조속히 철회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 측 인사들에게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유 본부장에 따르면 로스 장관은 이번 조치가 미국 산업과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공감했다.

그러면서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유 본부장은 전했다.

유 본부장은 "미 의회 인사와 싱크탱크 및 각계 전문가들도 일본의 조치가 미국 경제는 물론 한미일 3각 협력 등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공감하고 목소리를 보태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와 보다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미국 업계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놓았다.

유 본부장은 "그간 미국 업계는 일본 조치의 영향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만나보니 '일본 측의 조치로 인한 영향을 체감하기 시작했다'면서 직접 서한을 주고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서한에는 전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 반도체산업협회, 정비기술산업협의회, 컴퓨터기술산업협회, 소비자기술협회 등 반도체·정보기술(IT) 관련 업계는 물론 전미제조업협회와 같은 일반 제조업계까지 참여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일방적인 수출통제정책의 변화는 글로벌 공급망에 혼란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업계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유 본부장은 "미 정부와 의회, 업계, 싱크탱크 등 전문가 집단에서 일본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 글로벌 공급망과 국제무역질서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퍼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국내적으로는 한국 기업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상무부 등 미 정부와도 논의를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WTO 개발도상국 우대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선 "이번 상무부와의 만남에선 논의하지 않았지만,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난 2월부터 WTO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온 사안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며 "미국의 동향,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관계 부처와 협의해서 대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한 후 귀국한 김승호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일본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했다.

김 실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본에 '눈을 뜨고 귀를 열라'고 충고했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성 대신(장관)이 트위터를 통해 한국이 WTO에서 막무가내식으로 행동했다는 뉘앙스로 글을 쓴 데 대해 일침을 놓은 것이다.

김 실장은 "(일본) 대사관에 언론을 모니터하는 직원은 세코 대신에게 가감 없이 전달해달라"며 "대신쯤 되면 귀국(일본)이 취한 조치가 어떤 혼란을 일으켰는지 눈으로 보고 거기에 대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지금 대신은 일본이 저지른 조치가 어떤 평지풍파와 파장을 일으켰는지 못 보고 있다.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꼬집었다.

또 "일본 내에서도 큰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며 "세코 대신은 그것을 못 듣고 있다. 귀를 여세요"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번 조치가 경제적 보복이 아닌 안보 예외조치라는 일본 측 주장에 대해서는 "안보 사항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예외가 있으면 원칙이 있는 것이고 원칙이 몸통이고 예외는 꼬리가 돼야 한다"며 현재 일본의 태도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임을 강조했다.

김 실장은 한국 정부의 필사적 노력에도 오는 8월 2일 일본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 명단)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WTO 제소 등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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