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광양제철소 변전소 사고가 고로 ‘올 스톱’으로 번져
사고 발생 하루만에 이례적 사과문 발표 조기 수습 나서
1974년 포항제철소 쇳물 누출 사고 때는 박태준 사장 대통령에 사표 제출
시민단체, "최정우 포스코 회장 창업정신 되새겨 국민 신뢰회복 계기 삼아야"

1일 광양제철소에서 정전 사태가 발생해 화염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사진=광양만녹색연합>
▲ 1일 광양제철소에서 정전 사태가 발생해 화염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사진=광양만녹색연합>

[폴리뉴스 김기율 기자]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고로가 1일 정전으로 인해 모두 멈췄다. 이번 사고는 포스코가 1982년 포항제철소 설비 1기를 준공하고 가동한 이후 처음 발생한 일일뿐만 아니라 국내 일관제철소 사상 최초의 블랙아웃 사례로 기록되게 됐다. 

여론은 무노조 경영을 오랫동안 고수해온 포스코가 직원의 어이 없는 실수로 고로 가동 중단을 자초하고 최근 블리더(안전밸브) 임의개방에 따른 10일간의 고로 조업정지 철회가 당면과제인 현실에서 이번 사고의 심각성에 깊은 실망과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포스코에 따르면 이번 정전은 변전소 차단기 수리 작업 중 발생한 누전 때문에 발생했다.

국내 최정상급의 철강산업 현장 전문가로 인정 받는 한 인사는 3일 오전 폴리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영상 등 여러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전기 패널 작업 후 접지선을 해제하지 않고 차단기를 투입한 것이 정전사태의 원인으로 보인다”며 “이는 작업자의 실수”라고 진단했다. 작업 공정의 수순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접지선을 해제하지 않고 차단기를 투입할 경우 상상할 수 없는 초고압의 전기가 땅으로 흐르게 된다”며 “차단기 안전장치로도 감당할 수 없는 전류가 흘러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했다. 알밤 크기 보다 작은 고열의 코크스가 로 바깥으로 터져 나왔을 경우의 대참사를 피하고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광양제철소는 사고 발생 30여분 만에 변전소를 복구했지만, 이미 석탄을 고열로 구워내는 코크스로(cokes oven)의 블리더는 고압력으로 인한 폭발을 막기 위해 자동으로 개방된 뒤였다. 광양 하늘로 검은 연기와 화염이 치솟았다.

쇳물을 녹이는 고로 역시 정전에 따른 비상조치로 가동이 일시 중단됐다. 정밀 안전 점검을 거쳐 5개 고로 가운데 4번 고로는 사고 발생 당일 오후 1시에, 3번 고로는 2일 자정쯤 복구돼 가동에 들어갔다. 나머지 고로 3개도 2일 오후에 재가동을 시작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번 정전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에 따른 손실은 40억 원 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며 “다만 올해 광양제철소가 약 45만 톤 규모의 조강 증산을 계획하고 있어 정전에 따른 감산량은 연말까지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의 쌀’을 생산하는 제철소는 국가중요시설로 분류돼 정전을 대비하기 위한 자체적인 발전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했을 때도 포항제철소 일부 공장에 정전 사태가 일어났지만, 곧바로 전력을 회복하고 특이사항 없이 정상 가동에 들어간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광양제철소에서 발생한 정전 사태는 자체 발전시설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변전소가 멈추면서 제철소 각 공장으로 전기를 보내지 못했으며, 비상 발전기는 고로 가동에 필요한 충분한 전기를 확보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각 시설마다 비상 발전기가 마련돼 있지만, 이번 사고와 같이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할 경우 비상 발전기 가동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포스코가 다행히 대규모 정전 사태 후 발빠른 대처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지역 주민들은 1시간 가량 발생한 검은 연기와 불꽃으로 인해 불안에 떨어야 했다. 지역 시민환경단체들은 이번 사고 원인은 제철소 측이 시설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수완 광양만녹색연합 사무국장은 “포스코는 코크스로와 고로 공정만 얘기하고 있지만, 현장 확인 결과 제강과 연주공장까지 이상공정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날 가동을 멈춘 각 공장들은 독립된 비상 발전시설이 있어 정전이 나도 바로 복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항상 대형 사고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제철소의 작업 특성 상 포스코는 창업자인 고 박태준 회장이 유독 안전조업에서는 직원들에게 군대식 기율을 더 엄격히 적용했을 만큼 고로 사고 방지에 주의를 기울여왔다. 

포스코가 4월 24일을 '안전의 날'로 지정한 배경에는 박 전 회장의 사장 재임 시절 발생한 사고 관련 일화가 남아 있다.

지난 1977년 4월 24일 포항제철소 제강공장에서 크레인 기사가 졸음에 의한 부주의로 쇳물을 공장 바닥에 잘못 쏟아 붓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로 고압 전선이 모두 불에 타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초래됐다.  당시 박태준 사장은 일본의 기술자들이 최소 3~4개월로 잡은 복구 기간을 34일 간의 철야작업 끝에 단축시켜 완전 복구한 뒤 스스로 책임을 지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으나 곧 반려됐다.

박 전 사장은 사고 원인 규명 과정에서 사고 책임 직원이 퇴근 뒤 대가족 부양을 위해 부업을 하느라 수면 부족에 시달렸음을 파악한 뒤 중징계를 면해줬을 뿐만 아니라 사원복지 확대를 결정해 시행하기도 했다. 포스코는 사고 발생 일을 안전의식을 다지는 계기로 삼고자 '안전의 날’로 지정해 운영해오고 있다.

한편 광양제철소는 2일과 3일 사과문을 통해 “정전 발생 직후 코크스 공장 안전밸브에서 많은 연기와 함께 화염이 발생해 지역민들께 불안감과 생활에 불편을 드린 데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전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관계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포항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포스코가 오랜 기간 동안 무노조 경영의 원칙을 고수한 주된이유 중 하나는 '용광로의 불은 꺼지면 안 된다'는 신념이었다"면서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창업정신을다시 일깨워서 이번 블랙아웃 사태의 수모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국민기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