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4년차 역대선거 ‘정권심판’ 주도, 2016년 총선 ‘野분열 선거구도’까지 뛰어넘어

2017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선거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2020년 총선은 문재인 정부 집권 4년차 즈음의 선거이기에 야권은 정권심판정서의 프리미엄으로 반문재인 전선 결집에 용이한 선거지형이다.
▲ 2017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선거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2020년 총선은 문재인 정부 집권 4년차 즈음의 선거이기에 야권은 정권심판정서의 프리미엄으로 반문재인 전선 결집에 용이한 선거지형이다.

여야 정치권은 2020년 총선을 향한 행보에 돌입했다. ‘선거구도’와 ‘이슈 프레임’ 두개 영역에서의 ‘선거판 짜기’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내년 총선의 ‘이슈 프레임’을 가르는 전선의 중심이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선거구도’를 가르는 핵은 야권의 ‘보수통합’이다. 야권이 문 대통령을 향한 공격의 높이는 데는 ‘이슈 프레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고 연일 ‘보수통합’을 외치는 것은 ‘선거구도’를 ‘여야 1대1구도’로 만들어나가기 위함이다.

한국 정치에서 선거구도는 ‘1여 다야 구도’ 또는 ‘여야 1대1 구도’가 일반적인 형태였지만  선거 때마다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해왔다. ‘이슈 프레임’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지배한다. 여기에 집권 4~5년차 선거에서는 ‘미래 권력’의 존재도 선거 핵심변수가 된다.

선거구도와 이슈 프레임은 매 선거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틀로 서로 영향을 미치며 연계돼 있지만 선거 때마다 각기 다르게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쳐왔다. 여야 중 어느 한 진영이 선거구도를 유리하게 짤 경우 선거 승리에 한 걸음 다가가지만 승리를 보장받지는 못 한다.

1988년 총선에서 당시 민정당은 4개월 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승리의 여세를 몰아 ‘1여(민정당) 3야(평화민주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구도’ 속에서 총선 승리까지 도모했지만 6.10항쟁의 결과물인 ‘민주 대 독재’ 이슈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한 전례가 있다. 2016년 20대 총선도 마찬가지다. ‘1여(새누리당) 3야(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구도’는 당시 새누리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지만 ‘정권심판 프레임’의 힘은 이를 넘어섰다.

21대 선거에서도 ‘선거구도’와 ‘이슈 프레임’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변수임을 알 수 있다. ‘선거구도’는 이제 본격적인 시동을 건 상태라 섣불리 예단할 수 없지만 ‘이슈 프레임’만 보면 집권 4년차 선거인 21대 총선에서는 야권에 더 유리하다. 현직 대통령인 문 대통령의 역할은 여권에게 부담이며 야권에게는 ‘프리미엄’이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는 문재인 정부 3년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인 요소다. 지금처럼 문 대통령이 여야 대치전선을 가르는 중심축이 될 경우 민주당에게는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며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물 만난 물고기’가 된다. 문재인 정부 3년에 대한 평가에서 획득한 성과에 대한 평가는 박할 것이고 제대로 못한 부분은 ‘실정’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권 4년차 선거 ‘정권심판 정서’ 주도, ‘野분열 선거구도’까지 뛰어넘은 2016년 총선    

따라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임기 4~5년차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 선거의 전면에 나선 경우는 없었다. 이 경우 국민들의 ‘정권심판 정서’를 자극하면서 여당 필패(必敗)의 선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권세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래권력’의 상을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방법으로 선거를 관리했다. 

노태우 정부 집권 5년차에 치러진 1992년 총선은 ‘김영삼’이란 미래권력을 전면에 내세워 심각한 레임덕에 시달리고 있던 ‘노태우 정권 심판정서’를 타고 넘었고 이어진 대선까지 승리했다. 1992년 총선에서 현직 대통령인 ‘노태우’는 오히려 국민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김영삼 정부 집권 4년차 1996년 총선은 현직 대통령이 한 발 뒤로 물러선 선거였다. 집권 3년차였던 1995년 6.27지방선거 참패로 절치부심했던 당시 여권은 신한국당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이회창, 이인제, 박찬종, 이수성, 이홍구 등 이른바 ‘7룡’, ‘9룡’이라는 쟁쟁한 여권 내 대선주자들을 전면에 내세워 승리했다.

여기에 1996년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국민회의 창당으로 분열하면서 1여 다야 구도가 형성된 것도 신한국당 총선 승리의 요인이었다. 그러나 1년 8개월 후 1997년 대선에서는 이들 7룡, 9룡이 분열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권통합과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선거연대로 승리했다.

김대중 정부 집권 5년차 2002년 6.13 지방선거는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김대중 정권 심판정서’가 지배한 가운데 당시 여권의 미래권력이었던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는 당내 입지가 약해 선거 전면에 서지 못하면서 수도권에서조차도 참패했다. 그러나 지방선거의 압승에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불과 6개월 후 치른 대선에서 패배했다.

노무현 정부 집권 4년차인 2006년 5.31지방선거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에게는 2002년 6.13지방선거보다 더한 참패였다. 2004년 총선 승리 이후 친노와 호남의 분열에 따라 ‘선거구도’로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었다. ‘선거구도’의 불리함에다 ‘미래권력’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면서 이 선거를 마지막으로 열린우리당은 무너져갔다.

이명박 정부 집권 5년차인 2012년 총선은 미래권력 ‘박근혜’의 선거였다. 한나라당에서 재창당된 박근혜당인 새누리당의 선거였다. ‘반이명박 전선’, ‘이명박 정권 심판’에 대한 목소리는 컸지만 선거 핵심변수는 아니었다. 총선 6개월 전에 치르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정권심판 선거’의 총화였다. 이후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면에 내세워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획득했다.

2016년 4.13총선은 기존의 선거공학을 뒤집은 예외적인 선거였다. 선거구도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기존 속설을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이다. 친문세력과 호남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갈라서자 당시 새누리당은 필승(必勝)의 ‘선거구도’가 형성된 것으로 봤지만 결과는 달랐다.

국민들의 정권심판 정서와 야권 진영의 결집력은 이를 뛰어넘었다. 호남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수도권 등 호남을 제외한 지역구 선거에서는 전략적인 밀어주기 투표행위로 ‘정권심판 정서’를 표현했다. 특히 2040세대의 투표참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민주당 제1당 등극’의 핵심요인이었다.

집권 4년차 선거의 특성상 ‘정권심판 정서’를 비껴갈 수 없음에도 박 전 대통령은 여권의 중심에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미래권력의 비전을 제시해야할 여권 내부를 더욱 단속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갈등을 빚었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규정했고 공천 국면에서 ‘진박감별사’까지 등장했다.

20대 총선 당시 여권이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은 ‘선거구도’가 여권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커버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옥쇄’ 파문과 막판 무공천 지역 파란은 이러한 배경이 낳은 산물이다.

새누리당은 유리한 ‘선거구도’에 힘입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180석을 장담했지만 수도권과 부산/경남에서 속속 무너지면서 제2당으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여소야대의 국회가 탄생했고 불과 8개월 후에 있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까지 가능케 한 의회 지형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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