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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년대 중후반 대학 다닐 때 지방에서 상경한 유학생으로서 같은 신세인 친구나 선후배의 자취방을 순회해본 경험을 나도 갖고 있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옥수동, 금호동, 상계동은 물론 대학가 주변을 비롯해 서울의 왠만한 곳에는 '달동네'가 있었다. 다녀본 자취방들의 주거환경은 충격과 함께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한국적 건축의 개념을 보여주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낭보는 조금 엉뚱하게도 내겐 30여년 전의 그 기억을 다시 살려놓는 계기가 됐다. 

영화의 홍보 스틸컷에는 그때 본 적이 있는, 비좁고 볼품 없는 욕실에 계단을 세개나 올라야 하는 위치에 양변기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그 좁은 틈에는 남매가 세상 근심을 잊은 듯 열심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봉감독을 비롯해 영화사가 오는 30일 개봉 전까지 줄거리를 꽁꽁 감추는 바람에 인터넷을 뒤져 찾은 기사로 추측해보면 두 남매의 위치는 아마 와이파이 때문일 것이다. 부모의 형편 상 인터넷 가입을 못하니 식구들은 이웃의 무선통신을 거저 얻어쓰느라 웃고픈 블랙 코미디의 한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봉테일'의 디테일을 실감할 연출력은 변기의 위치에도 있다. 영화 속의 장소가 화장실 겸용 욕실이 아니라 구중궁궐이라고 상상하면 저 위치는 만조백관을 내려다보는 왕좌, 즉 용상이 자리하는 궁궐 내 유일한 곳일 것이다. 마치 마크 트웨인의 소설 속 거지왕자가 뒷골목의 무뢰배들에 의해 완력으로 엉터리 왕관이 씌어지고 왕좌라며 술통 위에 앉혀지는 수모를 당하는 장면이 이 영화 속에 오버랩돼 있다. '천지간 만물지중'에 가장 귀하다는 인간이, 빈부귀천 구별 없이 어느 부모에게나 모두가 왕자요 공주인 아이들이 길거리의 거지에게 내줘도 모욕이 될 변기 왕좌의 신세에 던져진 빈부 격차의 현실을 봉준호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요즘 한국경제와 경기 전망이 이슈의 꼭대기에 자주 오르면서 인류의 영원한 과제인 '배고픔과 배아픔'에 대한 얘기들이 잦아졌다. 종편을 가끔 들여다보면 출연진으로 나온 경제전문가들은 어느 누구든배아픔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다. 의견의 무게도 배아픔 보다는 배고픔 쪽에 더 실린 것으로 보여 기업 투자를 통한 경기 부양에 해법을 두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사회의 기득권층이 차지하고 있는 언론방송의 생태환경에서 빈곤과 양극화의 이슈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늘 이르게 된다.

깐느의 심사위원들이 기생충을 최고 수상작으로 선정한 이유를 재구성하면 빈부격차의 현실을 전 세계인이 공감할 영화적 언어로 담아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세계가 빈부격차의 현실을 다시금 절감하고 인류적 성찰을 통해 그 해결을 위한 길에 동참하자는 메시지로도 볼 수 있다. 양극화를 다룬 한국의 영화 한편이 세계에서 큰상을 받았다고 한국에서 빈부격차의 현실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부산을 떨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한국은 대통령이 선두에 나서서 사회 양극화 해소를 국정의 한 중심에 두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이른바 소주성 정책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이 같은 여론의 평가를 보수언론이 장악한 한국 언론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사회경제 현장의 목소리가 너무나 절박하다. 최근 고용부의 '최저임금 현장실태' 보고서만 보더라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영세업체일 수록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고용이 악화된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3년차로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확장 재정을 카드로 제시했지만 여야 갈등 속에서 정부 추경안조차 세월만 보내는 현실에서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더 큰 문제는 다음 세대에 대한 국가 채무 증가가 가장 큰 부담인 확장 재정 문제를 위해 청와대든, 정부든 정치권에 앞서 국민부터 설득할 묘안이 별로 나오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오히려 정부는 3기 신도시 계획 발표라는 악수를 던져 국가 정책의 신뢰성을 실추시키는 바람에 오랜만에 꺼낸 확장 재정 카드마저 도매금 처리되는 상황마저 자초하는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수언론 등의 온갖 흠집내기와 정쟁을 뚫고 소주성과 확장 재정을 국민에게 다시 한번 설득하고 싶다면 정확한 자료와 정책 계획을 제시하는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통해 빈부격차의 적나라한 현실을 내보였더라도 계급 간 화해는 당장 이뤄질 수는 없다. 영화는 그 상상력으로 설득할 수는 있지만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그 책임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정책은 온갖 논쟁과 반대를 돌파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현실에서 결과를 실현해야 한다. 영화제에서는 1등 수상작이 나올 수는 있지만 정책에서 1등은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선량한 영화에 환호하는 인류의 마음은 1등이 아니어도 늘 좋은 정치와 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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