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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이어지는 5.18 증언, 전두환은 그날 광주에 있었나

 

“전두환 씨는 발포 명령권자가 아니라 사격 명령권자였다”
“전두환이 사살 명령을 내린 것”

‘5.18은 신군부의 계획된 시나리오’ 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전 미군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씨와 505보안부대 수사관 출신 허장환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에 방문해 ‘사살명령’을 내렸으며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군 침투설’을 퍼뜨렸다고 증언했습니다.

“전두환이 1980년 5월 21일 정오께  K57(제1전투비행단) 비행장에 와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대장 등 74명이 회의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전두환의 방문 목적은 사살명령이었다고 생각된다.”

김용장 씨는 ‘북한 침투설’에 대해서 “전두환이 허위 날조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또한 보안사령부가 보낸 군인들이 광주에 주둔하면서 시민들을 교란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시민을 폭도로 만들고 강경 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보안사가 고도의 공작을 벌인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 사격을 제가 직접 목도했다.”“‘앉아쏴 자세’에서의 사격은 절대 자위적인 것이 아니었다.”

허장환 씨는 헬기사격과 관련해 “도청을 은밀하게 진압하러 가는 과정에서 건물에 저격병이 있다는 첩보를 듣고 헬기로 그 저격병을 저격하는 작전을 구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한 희생자 시신소각에 대해 “시신을 통합병원에서 소각했다”며 “시신을 태우다 태우다 용량이 너무 오버되니까 김해공항으로 빼서 해양 투기해버린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증언도 연이어 나왔습니다.

서울 706보안부대장 운전병이었던 오원기씨는 1980년 5월 21일 오전 전두환씨를 용산 헬기장에서 직접 봤다고 증언했습니다. 당시 출발 상황을 목격한 사람은 자신과 헬기조종사, 부조종사, 기관사, 전두환 보안사령관 운전사, 전두환, 그리고 신동만 현 예비역 준장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두환 씨는 5.18 당시 광주에 간 바가 절대 없다고 부인해왔습니다. 만약 전두환씨가 광주에서 실제로 ‘사살 명령’을 내렸음이 밝혀진다면, 전두환 씨를 재처벌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전두환씨는 이미 1997년 27명에 대한 내란목적 살인죄로 재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다만 전두환 씨가 발포명령자라는 점이 확인되면 5월 27일 이전의 다른 사망자들에 대한 내란목적살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내란목적 살인죄를 저지른 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해집니다.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전두환 씨 측의 주장도 속속 반박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탄흔이 ‘헬기 사격에 의한 것’이라고 감정했으며 이듬해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가 헬기사격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로 출격하는 헬기에 탄약을 지급한 탄약관리하사 최종호씨는 광주로 출격한 헬기가 탄약 500발 정도를 발사하고 돌아왔다고 증언했습니다. 

전두환 씨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헬기 사격 목격자 5명 역시 “헬기  사격 자체가 없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1980년 5월 21일 광주 천변과 전남대병원 인근 등에서 500MD로 추정되는 헬기가 자동화기를 쏘는 것을 목격하거나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벌써 39년, 이제는 조속한 진상규명으로 ‘진실’이 밝혀져야 할 때입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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