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장·허장환 “여러 도시 중 광주 선택해 학살, 전두환 정권찬탈 시나리오”

김용장 전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오른쪽)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특별기자회견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왼쪽은 허장환 전 보안사 특명부장.[사진=연합뉴스]
▲ 김용장 전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오른쪽)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특별기자회견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왼쪽은 허장환 전 보안사 특명부장.[사진=연합뉴스]

1908년 5.18 당시 광주에서 미군 501정보여단 군사정보관을 일한 김용장씨와 당시 보안사505보안대 특명부장으로서 김대중 대통령 관련 ‘KT공작’ 업무를 수행한 허장환씨는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학살’은 ‘기획된 집권 시나리오’였다고 거듭 증언하면서 당시 진압에 나선 공수부대원이 점령군으로 점령지 들어가 만행을 저지르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용장씨와 허장환씨는 이날 tbs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함께 출연해 5·18 광주는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닌 신군부의 기획에 의해 의도적으로 진행된 시나리오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전두환 신군부의 시나리오’라는 주장을 재차 밝혔다.

허 씨는 이에 대해 “전두환 씨 입장에서 필연적으로 정권 찬탈을 해야 되는 필연성이 있었고 광주를 타깃으로 삼아야 되는 필연성이 있었다”며 “이런 필연성에 목표를 둔 명확한, 확연한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를 짜지 않으면 그렇게 완벽하게 그 각본이 써내려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허씨는 광주가 시나리오로 선택된데 대해 “여러 도시를 사전에 대상에 올렸는데 (광주를 선택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며 “가장 큰 요인은 김대중 씨의 연고지다. 그리고 묘한 지역차별주의,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서 광주를 건드리면 가장 극대적인 효과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해 광주를 타깃으로 삼은 것”이고 얘기했다.

김용장씨는 다른 여러 도시도 검토됐지만 광주가 선택된데 대해 “광주는 저항의 도시로 사람들이 알고 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 연고지”라며 “그래서 가장 쉽게 광주를 타깃으로 삼을 수 있는 유리한 점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산 같은 경우는 규모가 적고 대구, 부산 같은 데는 너무 크고, 목포는 너무 후미진 곳에 있고 인구도 적다”며 “대전은 서울에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위험하다. 그리고 기질 자체가 대전 같은 경우는 그렇게 저항을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허장환씨는 5.18 전 광주상황에 대해 “부산·마산 지역도 (광주와) 똑같은 데모 양상이었다. 광주는 그때 확대 계엄을 할 필연성이 전혀 없었다. 조선대학은 교내 문제로 학생들이 거리에 나오는 시위하는 양상이었고, 국립대인 전남대생들은 앞으로 정국을 지켜보자는 추이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데모를 진압하는 전투경찰들도 휴식 상태였다. 종교인들은 석가탄신일이 앞으로 곧 다가오니까 거기에 대한 준비에 바빴다. 그래서 제가 문제 학생 몇 명 연행하고 재야인사 몇 명만 불러서 점잖게 타일러서 내보내면 정국이 안정될 것 같다고 보고했다”며 “그랬더니 상당히 질책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어 “갑자기 16일 사령부 이학봉 차장이 전국 보안부대 대공수사과장들을 소집해서 긴급 지시를 내렸다. 그 이튿날 부대 제 상관이 ‘확대계엄이 선포된다’ 또 ‘예비 검속자들 명단이 하달됐다’고 했다”며 “저는 KT공작원으로서 김대중 씨에 대해 물었더니 ‘이미 서울에서 검거했다’고 했다. 이 말은 곧 전체적인 상황이 시나리오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허씨는 또 광주에 투입된 특수부대 편의대의 역할에 대해 “전체적인 각본, 시나리오 속에 장갑차 탈취 등 부분적인 역할들이 다 있었다”며 “(평온했던 광주에 들어가) 시민들을 자극하고, 선동했다. 2차적으로 유언비어 유포조, 무기고 탈취, APC 장갑차 탈취”라고 말했다.

이어 “APC 장갑차는 광주 방산업체에서 군에 납품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시제품이다. 기능이 달리되는 그 시제품을 조작할 수 있는 시민들은 아무도 없었다”며 “공수부대원들은 모든 적성국가의 무기나 또는 장비, 이런 것을 조작하는 만능자로 임무 중 하나가 적 후방에 투입돼서 적 후방을 교란시키고, 적 지휘부를 타격하는 임무”라고 장갑차 탈취가 편의대에서 한 일이라고 했다.

허씨는 당시 광주에서 제일 높은 빌딩에서 상주했다면서 “옥상에서 보면 참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폭렬상황이 가열되면 공수부대원들이 진압군들이 빠져나갔다”며 “(상황이 평온해지면) 강압 진압을 하고, 그러면 그 흥분된 분위기가 고조되면 또 빠져나가고 이런 식의 진압을 하고 있는 양상이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그때 참 이상한 방법으로 데모 진압을 하는구나하고 어렴풋이 느꼈는데 실무, 시나리오에 참석을 하면서 확연하게 알았다”며 “상급자들이 초기에는 저한테 감추다가 나중에는 제가 참여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전체적으로 윤곽을 취득하게 됐다”고 기획된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고 증언했다.

김용장씨도 “미군에서도, 특히 미 국무성에 보낸 보고서를 보면 이미 알았다”며 “그 진행 과정을 미국에서도 세밀하게 검토하니까 그 과정들이 다시 말하면 시나리오다. 간접적으로 표현으로 하면. 허장환 씨가 말하는 것은 시나리오고, 미국에서 볼 때는 진행 과정을 보면 ‘아, 이거 시나리오구나’ 그걸 알았다”고 광주학살이 신군부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당시 편의대 활동과 관련해 허장환씨는 “도청에서 발생된 독침 사건이 있었다. 독침이라고 하면 북한 대남 공작원들이 사용하는 살상 무기라는 걸 단번에 안다. 이에 출동 태세를 갖추려는 찰나 수사부국장이 ‘출동하지 마라. 이미 타 기관에서 체포했다’고 했다”며 “얼마 지나지 않아 수사과장이 개인적으로 불러서 독침 사건의 주범들을 저한테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그날부로 제가 ‘아, 이게 완벽한 시나리오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나아가 허씨는 “그 사건 이후 선무공작 총 지휘를 맡은 보안사령부 홍성률 대령이 저하고 시나리오 디스커싱(Discussing)을 했다. 더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 어떤 것을 가미하면 좋겠느냐,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어떻다, 이런 걸 저하고 상세하게 디스커싱했다”며 “자기들이 구상했던 시나리오대로 광주 시민들이 움직여 주지 않으니까”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시가 그냥 진흙탕이 돼야 되는데 평화롭게 민주적으로 자기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니까 이건 아니다 싶어서 더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싶은 의도에서 시나리오가 가열화되고 다른 섹션이 가미됐다”고 했다.

이어 “결론적으로 (편의대는 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활동을 했다). 극대화한 국란으로 만들어야 ‘국란을 극복하는 전두환 장군’이란 명분으로 몰아가기 위한 작전이 삐거덕거리니까, 시나리오 각본을 더 강하게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무기고 탈취, 편의대 운영 이런 것들이 진행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허씨는 진압을 맡은 공수부대원들의 폭력적인 행위에 대해 “점령군이 점령지에 들어가서 마음껏 만행을 저지르는 그런 기분에 도취돼 있었다”며 “제 관점으로는 그것이 명령으로 하달된 것은 아니고 자가 발생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음껏 해도 좋다, 마음대로 해라는 분위기를 조장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설마 자국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해도 좋다고 누가 허가를 했겠나?”라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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