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성 자산은 극히 일부분…대부분 생산설비 등 실물자산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중공동행동 주최로 2019년 재벌 사내유보금 현황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중공동행동 주최로 2019년 재벌 사내유보금 현황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기율 기자] 최근 한 시민단체에서 30대 재벌 그룹의 사내유보금이 950조 원에 달해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은 재벌 기업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 이면에는 부당 노동행위가 있다며 사내유보금을 환수하고 재벌체제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 사내유보금이 정말 기업이 쌓아놓은, 환수할 수 있는 현금일까?

민주노총과 사회변혁노동자당, 한국진보연대 등으로 구성된 ‘민중공동행동’은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0대 재벌 그룹 사내유보금이 950조 원에 달한다며 환수를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해 말 재무제표 기준으로 30대 그룹(비상장사 포함)의 사내유보금이 949조5231억 원으로 전년 대비 66조6180억 원(7.5%)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룹별로는 삼성이 291조2357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현대차(136조3148억 원), SK(119조389억 원), LG(58조4523억 원), 롯데(60조5271억 원) 순이었다.

민중공동행동 측은 “2018년 기준으로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 증가율은 7.5%로, 한국경제 국민총생산(GDP) 증가율 2.7%의 3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또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매출에서 각종 비용, 배당까지 지출하고 남은 이익금을 동산·부동산 형태로 쌓아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저임금·장시간·비정규 노동체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과하다는 지적은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기업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 탓에 경제가 어렵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기업들이 곳간에 쌓아놓고 투자나 고용 등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는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 때문에 빚어진 오해”라며 “사내유보금이 현금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한다. 이 오해를 바로잡으려면 기업의 재무제표가 자금의 사용처인 자산과 출처인 부채, 자본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세 가지 항목은 ‘자산=부채+자본’이라는 등식이 항상 성립한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에서 모든 비용과 세금, 그리고 배당금까지 제한 최종 이익을 말하는 것이다. 자본의 일부분인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을 편의상 묶어서 말하는 것으로, 회계학에서는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사내유보금은 현금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생산설비나 공장 등 실물자산이나 연구개발(R&D) 투자로 인한 성과 등이 모두 포함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다트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이익잉여금은 242조 원 정도인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0조 원 정도로 집계됐다. 때문에 사내유보금의 일정 금액이 투자로 전환된다면 그만큼의 재정투입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은 무리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기업들이 섣불리 현금성 자산을 투자로 돌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유동성을 갖춰야 한다는 이유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지난해 ‘기업과 혁신생태계’ 특별대담에서 “과거 은행대출이 혁신을 위한 ‘인내자본’ 역할을 했다면, 현재는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이는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중장기투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기업이 무작정 현금성 자산을 들고 있는 행위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내유보금을 위해 배당률을 지나치게 낮게 잡을 경우 투자자들이 장기 투자보다 단기적 시세차익을 선호하게 돼 기업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 이에 현대차, SK, 한진 등 기업들은 지난 정기주주총회에서 장기적인 주주친화정책을 약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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