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범국민위원회 “올해도 광장에는 4·3을 기억하는 꽃 필 것”
유족의 편지글 낭독... 박원순 시장·민갑룡 청장도 눈물
추모행사 이어져...“4.3특별법 반드시 개정” 목소리도 

제71주년 제주4.3사건 추념식 '봄이 왐수다'에 참석한 종교계 인사들과 박원순 시장, 민갑룡 경찰청장 등 <사진=폴리뉴스>
▲ 제71주년 제주4.3사건 추념식 '봄이 왐수다'에 참석한 종교계 인사들과 박원순 시장, 민갑룡 경찰청장 등 <사진=폴리뉴스>


[폴리뉴스 이지혜 인턴기자] 3일 오전 11시 광화문 중앙광장에서는 제71주년 제주4·3사건 추념식 ‘4370+1, 봄이 왐수다’ 행사가 진행됐다.
 
추념식을 주최한 ‘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진정한 해방조국을 꿈꾸었던 봄날의 항쟁은 처절한 학살의 겨울을 겪으며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올해도 광장의 회색 콘크리트 바닥 위에는 4·3을 기억하는 꽃이 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날 행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민갑룡 경찰청장, 이용선 시민사회수석 등과 유족 150여명이 참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 이날 행사에는 문 대통령 이외에 이재명 경기도지사, 민갑룡 경찰청장이 보낸 조화도 자리했다.  <사진=폴리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 이날 행사에는 문 대통령 이외에 이재명 경기도지사, 민갑룡 경찰청장이 보낸 조화도 자리했다.  <사진=폴리뉴스>

 

추념식은 추모 헌화 분향, 묵념, 유족회 추념식사, 유족 편지글 낭독, ‘잠들지 않는 남도’ 합창으로 구성되어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특히 유족의 편지글을 읽는 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위원회는 지난 해 광화문에서 제70주년 제주4·3사건 추념식을 되돌아보며 “(행사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해 그 사건은 이제 역사의 광장으로 들어선 듯 했다”고 추억했다.

이어 “수많은 기념행사들이 10년 주기의 불꽃을 터뜨리고 나면 다음 해마디를 기다리는 긴 휴지기에 들어가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올해 다시 이곳에 추모의 제단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의심이 났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70주년처럼 성대하지 않더라도 광장을 꾸미기로 결정했다며, “그래서 올해의 광장은 제주4·3 71주년이 아니라, 70+1주년이며 4370을 이어받아 4370+1”이라고 추념식의 이름을 설명했다. 

 

헌화하고 묵념하고 있는 제주4.3 유가족 <사진=폴리뉴스>
▲ 헌화하고 묵념하고 있는 제주4.3 유가족 <사진=폴리뉴스>


유족들, ‘그리움’과 ‘연좌제 고통’ 담긴 편지 낭독... 곳곳 눈물 

4·3유족인 양경인 선생은 자작시 ‘열두 살’을 통해 어머니와 언니, 조카를 한날한시에 잃은 사실을 고백하며 당시 자신이 너무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던 것에 대한 짙은 회한을 드러냈다.

“그 때 나는 열두 살, 열다섯만 되었으면 어멍 가는 길 고운 옷 입히고 삼촌들 성가시게 안하고 집 탈 때 세간도 꺼내고 물 그리듯 그리운 어머니 옷가지, 삼단 같은 머리채 담은 고리짝 타는 집 뛰어들어 바리바리 꺼냈을 걸” 라는 후회를 담담히 읽어내려가자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4·3사건 당시 할아버지를 잃은 이진순 재경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은 ‘아버지께 드리는 글’을 통해 ‘연좌제’로 고통받은 유가족의 슬픔과 상처를 보였다. 

이 회원은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심경을 밝히며 다섯 살에 아버지를 잃고 희생자의 아들로 살았던 아버지의 외로움을 너무 늦게 알아 죄송하다고 울먹였다. 

목소리 높여 “아버지, 기억하겠습니다. 다섯 살에 할아버지를 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그 상처를요. 혹여 4·3 관련자의 후손으로 ‘연좌제’에 연루돼서 취직이 안될까 염려하던 아버지를요.”라는 절절한 다짐도 덧붙였다. 

또한 “이렇게 아픈 가족사를 아버지 손녀들에게는 되풀이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왜, 어떤 이유로 스물아홉 살에 어여쁜 아내와 아홉 살, 네 살, 두 살의 어린 자식을 두고 눈을 감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게 되었는지를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며 제주4.3사건을 대한민국의 역사로서 남기겠다고 말했다. 

추념식에 참석한 민갑룡 경찰청장(왼쪽)과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 <사진=폴리뉴스>
▲ 추념식에 참석한 민갑룡 경찰청장(왼쪽)과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 <사진=폴리뉴스>


박원순 서울시장, 민갑룡 경찰청장 참석... “진상규명 고대”

민갑룡 경찰청장은 제단에 흰 국화 바구니를, 박원순 서울시장은 빨간 동백꽃 바구니를 헌화하고 묵념했다. 두 사람은 유가족들과 악수하기도 하고, 편지를 들으며 눈물을 닦기도 했다.

2000년 당시 진상보고서 작성기획단 단장을 맡은 바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추념사를 통해 “이제 우리는 제주4·3에 대한 제대로 된 이야기 한 줄 남겼다. 그러나 여전히 진상규명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4.3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강조했다.

경찰청장으로는 처음으로 4·3추념식에 참석한 민갑룡 경찰청장은 행사 후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에게 분명히 사죄를 드려야한다”고 말하며 사과의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지고 상처가 치유되기를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유가족들은 경찰청장이 추념식에 나타남을 반가워하며 그를 환영했다.

 

'잠들지 않는 남도'를 제창하는 제주4.3유족들 <사진=폴리뉴스>
▲ '잠들지 않는 남도'를 제창하는 제주4.3유족들 <사진=폴리뉴스>


“아, 통곡의 세월이여”...‘잠들지 않는 남도’ 제창

참석자들은 제주4·3사건을 언급한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의 영상을 시청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대통령 사과문을 통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해 제주4·3사건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도사를 통해 사과의 뜻을 밝히며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생존피해자 및 유가족들은 가수 안치환의 ‘잠들지 않는 남도’를 제창하며 제주4·3사건을 추모하고 희생자들을 위해 헌화했다.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라는 가사를 부르는 유족들의 목소리는 노래가 끝나갈수록 더욱 커졌다.

사회를 맡은 박진우 제주4·3범국민위원회 집행위원장은 “4·3특별법 개정안도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 12시부터는 불교, 원불교, 천주교, 천도교, 개신교 5개 종단별 추모의례가 진행되어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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