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회장 퇴임에 국민연금 반대 결정적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른 첫 총수 퇴임
조 회장 리더십 부재로 대한항공 중장기 비전에 차질

27일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됐다. 사진은 대한항공 공항동 본사<사진=연합뉴스>
▲ 27일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됐다. 사진은 대한항공 공항동 본사<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기율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른 주주권 행사로 국내 기업 총수가 물러난 최초의 사례가 됐다.

경영계에서는 이번 결과로 기업들에 부담 요인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와 최근 대한항공이 밝힌 ‘중장기 비전 전략’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제57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찬성 64.09%, 반대 35.91%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에 명시된 ‘주총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주총 거수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해마다 주총에서 찬성표를 던지고 반대의결권을 행사한 안건도 실제 부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삼성전자 주총에서 사외이사 독립성 문제에도 불구하고 찬성표를 던졌으며, 현대엘리베이터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는 ‘기권’ 결정해 그 오명을 이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 대한항공 주총 의결권 행사로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의 방향성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반대 ‘결정적’

사실 대한항공의 경우 다른 기업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총 270억 원대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조 회장에 여론은 싸늘했다. 국민연금은 ‘기업가치의 훼손, 주주 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이사후보에 대해서 반대할 수 있다’는 스튜어드십 코드 지침에 따라 대한항공 주총 의결권 행사를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검찰은 조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조 회장이 2013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기내면세품을 사들이며 중간 업체를 끼워 넣어 196억 원 상당의 중개수수료를 챙긴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또 조 회장이 2014년 8월 자녀인 조현아·조원태·조현민씨가 보유한 정석기업 주식 7만1880주를 정석기업이 176억 원에 사들이도록 해 이 회사에 약 41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또 조 회장이 자신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변호사 비용을 회삿돈으로 지불한 혐의, 자택 경비 비용을 계열사 회삿돈으로 지급한 횡령 혐의도 추가했다.

조 회장의 재선임 안건 부결은 지난 26일 대한항공 2대 주주(11.56%)인 국민연금이 반대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다. 여기에 외국인 주주와 소액주주 등도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의 반대 권고와 해외 공적 연기금의 반대 의사 표명, 참여연대의 의결권 위임 운동 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경영계는 조 회장의 혐의가 재선임 무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7일 입장문을 내고 “국민연금이 이번 결과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그동안 조 회장이 대한항공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해 왔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은 결정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주주들의 이익과 주주가치를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우려스럽게 생각한다”며 “우리 기업들이 장기 안정적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기업경영권이 더는 흔들리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2016년 6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에 참석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욋줄 왼쪽부터 5번째)<사진=대한항공>
▲ 2016년 6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에 참석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욋줄 왼쪽부터 5번째)<사진=대한항공>

중장기 비전 전략에 차질 빚나

앞서 지난달 19일 대한항공은 ‘중장기 비전 전략’을 발표하고 2023년 매출 16조2000억 원(연평균 성장률 5.1%), 영업이익 1조7200억 원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를 통한 미주-아시아 네트워크 확대를 지속하고 베트남·인도·중남미 등 성장시장 노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겠다는 여객·화물사업 전략도 제시했다. 항공우주사업에서는 민항기 제조부문 신기술 개발, 무인기 본격 양산 등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기내식과 기내판매사업을 강화한다고 했다.

대한항공은 재무구조 개선 계획도 밝혔다. 대형기 위주의 대규모 항공기 투자가 완료되면서 추가 차입금 부담이 줄어 올해부터 5년간 2조 원의 잉여현금흐름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 차입금 규모를 11조 원으로 축소하고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또 연간 사용량 약 50%에 대한 헤지(회피) 및 차입 통화 다변화, 금리 스와프 등 외부환경 변화에 안정적인 대응을 통해 신용등급을 현재 'BBB+'에서 'A+'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0년간 항공사 경영을 통해 노하우를 쌓아온 조 회장의 리더십을 잃게 되면서 중장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으로부터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받은 뒤 지난 20년 동안 대한항공을 이끌어왔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로 성장시키는데 조 회장의 기여가 컸다고 인정하고 있다.

당장 오는 6월 대한항공 주관으로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개최도 걱정이다. 총회 의장은 주관항공사 CEO가 맡는다는 관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대한항공에 과제로 남았다.

대한항공은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오늘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이 부결됐지만, 이는 사내이사직 상실이고 경영권 박탈은 아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이 여전히 대한항공의 최대주주이고,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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