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빅딜 압박과 추가제재 발표 병행, 北 ‘핵·미사일 시험 ’ 엄포와 남북연락사무소 철수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미국은 새로운 비핵화 협상 판짜기를 앞두고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미국은 새로운 비핵화 협상 판짜기를 앞두고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회담 결렬 후 북미는 거칠게 상대를 압박하며 ‘말 대 말’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비록 ‘대화의 문’을 열어놓았지만 ‘비핵화 협상’의 새로운 접점을 찾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은 하노이 회담 이후 연일 북한에게 ‘일괄타결’, 이른바 ‘빅딜’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압박하는 반면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제안에서 한 발도 물러설 수 없고 만약 미국이 계속 ‘빅딜’ 압박을 할 경우 핵·미사일 발사 시험 재개도 할 수 있다는 사실상 ‘판’을 깨겠다는 말로 맞서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3월 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북측 인원을 철수하면서 ‘중재자’를 자임해온 한국까지 압박했다. 하노이 결렬과 함께 시작된 ‘새 협상판 짜기’ 과정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부터 미국의 공세는 거침이 없었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지난 3월 7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영변 핵시설 외에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핵과 생화학무기 등 북미 간 모든 의제를 한 번에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일괄 타결’ 방식을 얘기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3월 11일 미 워싱턴D.C.서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주최로 열린 핵정책 컨퍼런스에 참석해 “북한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핵연료 사이클의 모든 영역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하노이 회담 전 ‘동시적·병행적(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 비핵화’ 방식을 제시했지만 회담 후 표변한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3월 18일 캔자스주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검증된 비핵화’가 이뤄지면 북한 주민을 위한 더 밝은 미래가 뒤따르게 될 것”이라며 미국이 제시한 ‘선(先)비핵화’ 조건을 북한이 먼저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처럼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가 ‘빅딜’ 강경 목소리로 통일되는 가운데 미 재무부는 21일,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으로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 재무부는 북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회피를 도운 혐의로 중국 해운회사 2곳을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미국 재무부는 이번 제재의 관련 조치로 국무부, 해안경비대 등과 함께 북한의 해상 거래에 대한 주의보를 갱신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과 불법 해상 거래를 한 것으로 보이는 선박 18척, 북한산 석탄을 수출한 혐의를 받는 49척 등 67척의 선박 목록이 새로 발표됐다. 이는 대화의 문을 열어두면서도 대북 압박을 최고조까지 점증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날인 22일 트위터에 “재무부는 오늘 북한에 대한 기존 제재에 대규모 추가 제재를 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는 오늘 그 같은 추가 제재들의 철회를 명령했다”고 밝혔다. 대북압박 일변도로 치달을 경우 ‘대화의 동력’마저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한 완급조절의 의미와 함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정상간 ‘탑다운’ 협상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신호를 내보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비핵화 협상 새판 짜기’ 과정에 볼턴-폼페이오 라인의 거친 압박은 계속될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적인 ‘완급조절’이 결합시켜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보다는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들고 나오도록 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北 ‘김정은 핵·미사일 시험 중대발표’ 엄포, 남북연락사무소 인원 철수 강수

문제는 북한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일괄타결 빅딜 방식’에 대한 북한의 불신과 반감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에서 내놓은 ‘영변핵시설 폐기’가 자신의 내놓을 ‘최선의 카드’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3월 15일(한국시간) <타스>와 에이피(AP) 통신 등과의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과 타협할 의도도, 이런 식의 협상을 할 생각이나 계획도 결코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러면서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계속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에 달렸다며 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이후 향후 행동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최 부상은 하노이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 내 군부와 군수업계 등에서 “핵을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는 무수한 청원을 김 위원장 앞으로 보냈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사회 내부의 반발을 뚫고 미국과의 신뢰를 쌓고 상호 합의된 약속들을 이행하기 위해 하노이로 갔던 것이라고 했다. 북한 내부의 반발 또한 크다는 점도 시사했다.

아울러 최 부상은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 중재 역할에 대한 질문에 “문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도우려 하고 있지만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에 ‘중재자(arbiter)가 아닌 플레이어(player)’”라며 문 대통령의 대미 중재능력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만 그는 폼페이오-볼턴 라인을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양국 정상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좋고, 케미스트리(궁합)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며 정상 간의 대화 여지를 남겨뒀다. 최 부상의 이러한 기자회견은 하노이 회담 후 미국의 연속된 ‘빅딜’ 압박에 대한 ‘강 대 강’ 대응이다.

또 북한은 미 재무부가 대북 추가제재에 나서겠다고 발표하자 3월 22일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북측 인원 철수를 통보했다. 같은 날 대남 매체를 통해 우리 정부가 북미 ‘중재자’, 내지 ‘촉진자’ 역할을 강조한 데 대해 “자기의 처지를 망각한 주제넘은 처사”라며 “미국의 승인과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조선당국이 어떻게 무슨 힘으로 중재자 역할,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추가제재 철회로 북미, 남북 간의 높아지던 긴장도는 다소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다시 재개되기까지 이러한 과정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푸는 관건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보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이다.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시한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는 현실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김 위원장은 지금 ‘협상판’을 깰 것인지 아니면 ‘하노이 제안’에서 한 발 더 나간 비핵화 조치를 마련할 것인지를 두고 선택해야 한다.

그 과정은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내부의 합의과정에 일정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김 위원장의 결단도 쉽지 않지만 이후 과정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따라서 ‘포스트 하노이 새판 짜기’는 긴 호흡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