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북한의 대미외교 베테랑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북미협상 교착국면에서 명실상부한 북측의 '대변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선희 부상은 15일 평양에서 북한 주재 외교관들과 외신을 불러모아 회견을 열고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과 타협할 의도도, 이런 식의 협상을 할 생각이나 계획도 결코 없다"며 미국의 '일괄타결·빅딜'론을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최 부상은 지난달 27∼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합의가 결렬된 이후 북한 당국자로서는 사실상 유일하게 언론의 질문 공세에 자유롭게 답하며 북한의 입장을 전달해 왔다.

최 부상은 리용호 외무상과 함께 지난달 28일 밤 북한 대표단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합의 결렬 후 북한의 입장을 처음으로 대외에 밝혔다.

당시 미리 준비해 온 입장 원고는 리 외무상이 읽었지만,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는 최 부상이 나섰다.

최 부상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조미(북미)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라며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의 '심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다음 날에도 멜리아 호텔에서 연합뉴스를 비롯한 일부 남측 기자들과 스스럼없이 인터뷰에 나섰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 발언을 거론하며 북미대화와 관련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등, 작심한 듯 발언을 이어갔다.

이번 외신 기자회견에서도 최 부상은 귀국길에 김 위원장이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가 다시 이런 기차 여행을 해야 하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하는 등 김 위원장의 발언을 거침없이 공개했다.

북한 체제상 일선 간부가 공개석상에서 최고지도자의 속내를 추측하거나 발언 내용을 전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상 김 위원장의 의중을 직접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최 부상이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최선희 부상은 2차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에게 실무 협상대표직을 내준 뒤 어떤 역할을 할지가 다소 불분명했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회담 직전에는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하고 북미정상회담 재검토를 거론한 최 부상의 담화가 미국의 반발을 사 한때 회담이 좌초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최 부상을 일종의 '악역'이라고 할 수도 있는 대외 여론전의 선봉에 다시 내세운 것은 그동안 북한 대미외교의 아이콘으로서 그가 축적해온 입지와 인지도, 중량감 등을 고려했기 때문일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공개석상에서 최고지도자를 자유롭게 입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김 위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으리라는 분석도 있다.

대외 여론전에서는 임기응변을 발휘하면서도 판을 깨지 않을 수 있는 '외교적 언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국제무대 경험이 많은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 등이 스피커로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북한도 현재의 국면에서 '메시지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순간적 대응능력도 있어야 하고, 어떤 발언을 할 때 그것이 갖는 파장을 잘 알아야 하니 외무성 출신의 리용호나 최선희가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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