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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 홍사덕②

13, 15대 총선 무소속 출마, 3당통합,무지개 연합 구상, 한나라당 입당, 노무현 탄핵, 17대 총선, 친박연대에 얽힌 사연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을 시작하며...

시대가 변하고,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크게 고양되고 있음에도, 또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한국의 정당은 과거의 틀과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 듯 합니다.

대의정치체로서 정당의 본질적 임무인 민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시대를 앞서가는 지도력은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정당의 현실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정당체제라면 앞으로의 한국 정치의 미래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에 무엇보다 최우선 할 것이 과거를 정확히 되짚어보는 일일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찾는 단서를 찾고자 합니다.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는 기존 자료의 재정리 방식이 아니라 한국정당을 이끌어 오신 정치지도자와 주역들로부터 당시의 <생생한 동영상 증언> 방식입니다.

60여년의 한국정당사 전체를 살아있는 정당주역들로부터 듣는 ‘증언록’으로 정리하겠다는 것은 아직 어디에서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야심찬 기획입니다.

한국정당사를 정리하는데 있어서 이념노선, 정책, 인물, 리더십, 정체성, 지역성, 파벌성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정당의 본질은 다름 아닌 ‘민의’를 대변하는 대의정치라는 점에서 과연 과거 정당들이 그 시대 민의를 제대로 대변했는지, 또 어떻게 민의를 억압, 왜곡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이슈별로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또한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정치적 진실도 증언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폴리뉴스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의 두번째 인터뷰 인물은 홍사덕 의원이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그는 81년 11대 민한당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신민당 대변인, 민주당 부총재, 민주당 대변인, 정무제1장관,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국회 부의장 등 을 거친 6선의 거물 정치인이다.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돌풍의 주역이 됐고 그 후 한나라당으로 복당, 현재는 친박계를 이끌고 있다. 그는 기자협회 부회장 시절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기도 했고, 대변인과 부총재 시절 언론으로부터 홍대, 홍총 이란 애칭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좋았다.

그와의 인터뷰는 김능구 본지 발행인과의 대담 형식으로 3시간 여 동안 진행됐다. 기사는 총 3편으로 나뉘어 게재할 예정이며 ①편에서는 민한당 참여, 2.12 총선, 신민당 ''이민우 구상'', 양김의 분열 등에 얽힌 숨겨진 얘기를 ②편에서는 13, 15대 총선 무소속 출마, 3당통합,무지개 연합 구상, 한나라당 입당, 노무현 탄핵, 17대 총선, 친박연대에 얽힌 사연을 ③편에서는 바뀌어야 할 우리 정당 구조와 정치 문화에 대한 그의 탁견을 전할 예정이다.

인터뷰 게재가 완료되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터뷰 전문과 동영상을 제공할 예정이다.

홍사덕 의원 인터뷰 전문 및 동영상 ②


3당합당, ''온 마음으로 반대''...13대 총선 무소속 출마, ''지역 주의 정치 타파 위한 선택''

홍 의원은 88년 13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선언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다.

13대 총선은 국회의원 선거구가 소선거구제로 바뀐 후 처음 실시되는 선거로 민정당 124석, 평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이 35석을 차지했다. 정치적으로는 이른바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3김정치가 막을 올린 선거란 의미를 지닌다.

홍 의원은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강남쯤 되는데서도 제가 처음으로 지역타파라는 깃발을 드니까 아마 이해하기도 좀 어려웠겠죠"라며 "선거 마지막에는 상대가 아 이거 승부모르겠다는 선까지 가지고 갔고, 또 큰표 차이가 아니였습니다. 제가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고 회고했다.

이후 1990년 1월 22일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이 합당해 민주자유당이 탄생했고 이는 92년 12월 대선에서 김영삼 정부 출범의 기초가 됐다.

하지만 이듬해인 93년 3월 열린 14대 총선 결과는 민주자유당 149석(38.5%), 민주당 97석(29.2%), 통일국민당 31석(17.3%), 신정치개혁당 1석(1.8%), 무소속 21석(11.5%)로 정국판도를 3당통합 이전인 13대 초기의 여소야대 상황으로 되돌려 놓았다.

홍 의원은 3당 통합에 대해 "온마음으로 반대를 했습니다''며 "그거는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호남고립이랬거든요"라고 3당 통합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꼬마민주당에 참여한 얘기로 말을 이었다.

통합민주당에 합류, 14대 총선 당선...15대 무소속 출마는 민주세력 분열 때문

홍 의원은 "이기택 총재님이 이러이러한데는 내가 참여하지 못하겠다 그러고 따로 깃발을 세웠고 그래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렸지요"라며 "김정길 의원이나 박찬종 의원이나 그때 이제 노무현 당시에 의원, 이런 사람들이 몰려가지고 이기택 총재님 중심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꼬마민주당을 만들게 됐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1991년 민주당과 김대중이 이끄는 신민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을 창당하자 이에 합류하여 제14대 국회의원(서울 강남을)에서 당선됐다.

홍 의원은 이와 관련해 "14대 선거 임박해가지고 실전에서는 이렇게 갈라져있을 게 아니라 영호남이 화합하는 김대중 총재님하고 이기택 총재님 손을 잡는 그런 모습이 좋지 아니하겠느냐 라는 취지하에 마침내 이제 하나가 돼서 선거를 치루었죠"라고 통합민주당으로 출마한 배경을 설명했다.

1995년 지방선거 이후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하면서 통합민주당에서 소속의원들을 탈당시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그는 이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남았다가 96년 15대 총선에서 다시 무소속으로 강남(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홍 의원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14대 말이 됐을 적에, 아시는대로 김대중 총재님이 다시 재기를 하기 위해서 당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하여튼 긴 부분이 있습니다만 전 평생 지역정당은 안했으니까 지역정당에는 몸을 담을 수 없다고 그러고 나와서 다시 무소속으로 강남에서 출마를 했는데 그때는 13대 때에 제가 들었던 깃발이나 메시지에 대한 잔영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아주 수월하게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 폴리뉴스
''강남이란 특수성 때문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것이라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13대 때 비록 졌지만은 근접전을 벌일 수 있었던 거, 그리고 15대 때 무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남표, 호남표, 충청도표가 도매금으로 막 떠 당길적에 무소속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게 강남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고 동의했다.

이어 "역시 높은 지적수준, 자아의식 같은 거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았고, 거기에 더하기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뭔가가 다릅니다. 그런데 강남주민들은 그게 근거가 있건 없건 간에 자존심 같은걸 가지고 있어서 제가 무소속 도전으로 선거를 할 수가 있었다고 봅니다. 다른 선거구였으면 아마도 어려웠을 겁니다"고 덧붙였다.

무지개연합, 25억만 확보 됐으면 승부를 했을 것...돈 없어 8일 만에 중단

그는 1997년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문민정부의 마지막 정무장관으로 입각하기도 했으나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에 입당하지는 않았으며, 2000년 1월 19일 장기표와 함께 ''1인 보스정치와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가칭 ‘무지개연합’ 창당을 선언했으나, 8일 만에 해체되며 1월 27일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는 무지개연합 창당 배경에 대해 ''정치 지형을 바꿔야 한다는 젊은 멘토들과의 상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정말로 정치지형을 바꾸고 정치문화를 바꾸었으면 좋겠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한테 돈이 없지 않느냐, 하나님이 모든 축복을 다 줬는데 돈 축복은 빼놔서, 그랬더니 역시 제 멘토들이 젊어서 내린 결정이죠"라며 "(멘토들이)당을 하나 만듭시다, 지역정당이 아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그때 시도를 했던 게 소위 무지개, 무지개라는 게 무당파, 지역타파, 개혁 그 세 깃발을 합당한 사람들이 하는 거다, 그래가지고 우리 장기표 선생을 모시고 지금 원내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제가 떡잎이, 제 눈에 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쭉 섭외를 하고 다녔습니다. 오세훈 시장도 거기에 들어있었고, 한선교 의원도 들어있었고, 여하튼 그때 내가 짚었던 사람들이 거의 다 원내에 들어왔어요. 제가 웬만큼 본 셈이죠"라며 무지개연합 창당 과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해체된 이유에 대해 " 내 수중에 25억만 확보가 됐으면 그대로 승부를 했을 겁니다"면서 "당초에 여의도에 당사까지 얻어놓고 또 이파티(e-party)시스템으로, 그러니까 입당에서부터 당비납부까지 그러고 중앙당의 당무회의는 속기비서들이 온라인에 바로 띄우는 그런 시스템을 다 만들어놨는데 거기까지였습니다"라고 자금력의 한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회창 측 한나라당 입당 제의'', 16대 총선 공동선대위장 맡아...장기표 끝내 거부

한나라당 입당과 관련해 홍 의원은 "그러던 차에 우리 이회창 총재님 쪽에서 혼자 그렇게 고군분투하지 말고, 여기가 그렇게 한심한데가 아니니까, 또 친구들이 다 여기 있지 아니 하냐, 와 가지고 같이 하자, 그래서 좋습니다, 그랬더니 16대 총선 선대부위원장을 맡으라고 그렇게 됐던 겁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당 직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와 함께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비례대표로 당선, 같은 해 6월 5일 국회 부의장이 됐다.

홍 의원은 장기표가 한나라당에 입당하지 않은 사연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장기표 선생을 어떻게 해서든지 원내진출 시키기로 나도 이제 작심을 했고, 할 적에는 장형은 비례요, 지역에 체질상 선거 못 치릅니다, 그 얼마나 상스러운지 압니까, 그래가지고 대충 이제 그러고"

"이쪽에 한나라당과의 교섭에서 내가 내세운 조건이 딱 하나였습니다. 장기표씨 문제는 해결을 해야 된다, 원하는 지역이 있으면 무조건 비워라, 그러고 지역이 아니라 큰 당에 배경으로 가면은, 기왕이면 지역이 더 나으니까 내가 미리 이야기를 했어요. 거긴 일단 비우시오, 그리고 비례를 원하면 체면에 상하지 않는 번호를 주시오 그래가지고 다 오케이를 했는데.."

한나라당 측에 장기표의 지역출마를 보장하라고 요구했지만 비례대표로 합의를 봤다는 설명이다.

장기표는 이와 관련해 "내가 거기에 사맞지 아니한데 홍 당신은 현실정치를 했던 사람이니까 어떨지 몰라도 나는 차마 못하겠다, 이 위치에서(무지개연합) 그냥 해나가겠다, 이거 당 창당해 가던 것만 나한테 넘겨라"라고 말했다고 그는 전했다.

탄핵 주역 역풍으로 17대 한나라당 공천 탈락...탄핵 정당성 입증위해 무소속 출마했지만 ‘석패’, 경기 광주 재보궐에서도 ‘석패’

2004년 한나라당 원내총무였던 그는 유용태 민주당 원내총무와 함께 노무현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그 후 2004년 4월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고양시 일산구(갑)에 출마했으나 한명숙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석패했다.

홍 의원은 "16대 말에 내가 원내사령탑을 맡아가지고 적어도 국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습니다"라며 "당의 젊은 리더들이 부탁하기를 경기도 북부지역이 이상할 정도로 허하니까 거기에서 좀 맡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역풍에 받아 낯선 데서 승부가 되겠느냐 싶었지만은 뭐 해보는 거다, 그러고 일산으로 왔고 그만하면은 그 역풍 속에서 이긴 거에 버금갈 정도로 선전을 한 다음에 낙선을 했습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17대 총선에서 탄핵 후폭풍으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탄핵의 정당성 입증 때문이란 점을 강조했다.

홍 의원은 "마음 한 편에 늘 가지고 있는 희망은 다른데도 아닌 수도권에서, 탄핵역풍이 제일 거셌던 수도권에서 탄핵의 정당성을 선거를 통해가지고 증명하고자 했는데, 마침 기회가 왔던 게 경기도 광주 보궐선거였습니다"며 "그래서 그 대의명분을 가지고 공천신청을 했는데, 뭐 여하튼 표면적인 이유가 뭐가 됐든 간에 거절을 했고, 그래서 그렇다 그러면 내 혼자 힘으로라도 정당성을 입증하겠다, 그러고 다시 무소속 출마를 했더랬습니다"고 회고했다.

이어 "경기도 광주에서 목적은 수도권에서 탄핵의 정당성을 내 몸으로 입증을 하겠다 그랬고 아마 그때 한나라당이 정말로 전력투구를 해서 날 막지 아니했으면 조순형 선배가 입증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었을 텐데 퍽 아쉽게 생각합니다''고 낙선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나라당 공천 못 받은 것 “이해한다”...원내 진출 시 당내 역학구도 변화도 고려됐을 것

ⓒ 폴리뉴스
''그는 탄핵을 당론으로 추진했던 한나라당이 탄핵의 주역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이 자기모순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나는 이해합니다. 탄핵역풍에 대한 여론이 그때까진 살아있었을 터이고, 또 그 외에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들을 탄핵 그러는 공사간에다가 숨겨놨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나는 그 부분 이해합니다"고 답했다.

''탄핵부분은 선거에서 당시 민심에 불리하니까 그랬다는 이야긴가''라고 거듭 질문하자 그는 "그거는 그 일에 관여했던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듣는 게 오히려 더 객관적일 겁니다"고 즉답을 피해갔다.

''그 당시 반대했던 사람들은 다 이해한다, 이런 이야긴가''라고 질문을 이어가자 그는 "내가 원내 진출할 경우에 나타날 여러 가지 경쟁양상의 변화나 이런 것들도 고려대상이 됐을 겁니다"고 말해 공천 탈락을 두고 회한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홍 의원은 국회의장의 권한이 커진 시기를 이만섭 전 국회의장 시절부터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가 모셨던 이만섭 의장님은 한국헌정사 의장사에서 아주 중요한 변화의 획을 그은 분입니다"며 "날치기가 없어진 거는 이만섭 의장님 때부터 비롯된 겁니다. 아주 합리적으로 분명한 대의명분 깃발을 가지고, 문자 그대로 여야 위에 군림하는 그런 의장이었습니다. 감히 이만섭 의장님한테 날치기 해 달라 하는 요청도 못할 정도로 아주 훌륭하게 국회를 이끌었습니다. 그 이전과 그 이후가 확연하게 다릅니다"고 말했다.

18대 총선 친박연대 선대위장...무소속 한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 ‘설득’

그 후 홍 의원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상태에서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지만 그해 7월 이명박 후보 측의 반대로 복당이 무산됐다.

하지만 그는 2008년 3월 ''친박연대''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텃밭인 대구 서구에 출마해 한나라당 이종현후보를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으며, 그 후 복당했다.

그는 친박연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친박연대는 원래 소멸을 목표로 해서 만들어진 정치그룹입니다. 박근혜 대표가 자리 잡고 있는 대로 회귀를 목표로 한 거니까, 처음부터 소멸을 목표로 한 겁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그 회귀를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지연시켰거나 할 수 없어서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친박연대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친박무소속이 따로 움직이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처음에 만들어진 과정도 다수의 의원들이 박근혜 대표하고 친하다는 이유 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이제 공천이 탈락이 됐고, 저한테 이제 상의를 해왔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저는 처음부터 확고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무소속 출마경험이 많기 때문에 하는 이야긴데 각개약진으로 해서는 힘이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그러니까 일단 한 개 울타리 안에 집어넣어야 된다, 그게 설령 정당형태가 아니더라도, 구락부가 되더라도 한 개의 깃발 아래에 모여 있어야 국민들이 우선 식별할 수 있을게 아니냐, 그러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 그러는 주로 이제 부산경남 이쪽 영남 쪽의 친구들한테 자신 있더라도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 그러고 있는데 친박연대가 먼저 떠 버렸어요"

"사실 그 부분은 저하고 상의 없이 먼저 뜬 겁니다. 뜬 상태에서 이제 그쪽에 주도했던 친구들하고 만나가지고 사실 홍모가 거기에 참여를 해야 그나마 그림이 좀 갖춰진 그림이 되니까, 제가 이제 몇 가지 단서를 달고 참여를 했고, 그 단서 중에 이루어진 거도 있고"

"영남의 주축들은 착각으로 친박무소속 그러면은 그걸 벽보에 통일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줄 알고 그게 착각을 했습니다. 자기들대로 이제 뿔뿔이 했다가 선거 끝난 다음에 다시 울타리를 만들었죠"

한나라당 대표경선 출마는 탄핵 정당성 입증 위해...당에선 장을 세우기 위해 협조 요청해와

홍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이 거셀 당시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유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다음에 당 체제를 새로 정비하게 됐습니다"며 "그때는 이미 TV에 맹활약, 그리고 인터넷논객들의 아주 절묘한 합동 저거 때문에 탄핵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뒤집혀진 상황에서 됐습니다"고 당시 상황을 언급했다.

이어 "박근혜 대표 혼자 나왔고 뭐 그 외에 좀 결례가 될지 몰라도 전혀 얘기 상대도 안 되는 사람들이 나와서는 정당판의 용어로 장을 세우기가 어렵다, 그러면서 저한테 계속 요청을 하는데 내가 장 세워주러 나갈 생각은 없다, 그러다가 그렇다고 그러면은 정면으로 승부를 하마, 나는 탄핵이 정당했을 뿐더러 그 뒤에 오는 사태에 대해서 겁먹은 표정으로 물러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겠다, 내가 당대표가 되면 여론이 어떻든 간에 이걸 하여튼 이겨나가는 쪽으로 당을 끌고 가겠다, 그리고 이제 승부를 했죠. 그리고 결과는 역시 예상했던 대로 지게 됐죠"라고 말해 출마 이유가 탄핵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③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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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뉴스 김윤진 기자] “제공 데이터 소진시 1Mbps 제어 데이터 무제한” “클라우드 게이밍 권장 속도 20Mbps" 최근 동영상, 게임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유행하면서 ‘bps'라는 통신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생소한 용어인데, 무슨 뜻일까요? ‘bps’란 ‘bits per second’의 약자로, ‘데이터 전송 속도’의 단위입니다. 1Mbps, 20Mbps 등에서 앞의 숫자는 1초 동안 송수신할 수 있는 bit(비트) 수를 말합니다. 1Kbps는 1000bps, 1Mbps는 1000Kbps, 1Gbps는 1000Mbps로 환산됩니다. 여기에 낯익은 용어인 컴퓨터 정보 처리 단위 ‘byte'를 대응해봅니다. 1bps는 컴퓨터 정보 처리 단위와 대응하면 8byte가 됩니다. 즉, 1Mbps 속도로는 1초당 0.125MB, 1Gbps 속도로는 1초당 125MB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셈입니다. 그래도 어렵다고요? 그렇다면 이번엔 bps가 생활 속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자신의 스마트폰의 데이터 전송 속도가 1Mbps라면, 텍스트 위주의 카카오톡이나 웹서핑은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3Mbps라면 SD(640x480) 화질의 동

[카드뉴스] 청년들과 황교안의 불통(不通)과 쇼통(show通) 사이

[사진1] “청년 취향을 저격하겠다“ 황교안, 30여 명 ‘청년 공감단’ 마주해 미팅 최근 정치 행보에 대한 쓴소리 나와 [사진2] ‘페어플레이 대한민국’ 황교안 “당 윤리위 규정에 채용비리 범죄 명시” “친인척 채용‧입시비리 밝혀지면 당 공천에서 배제“ [사진3] 황교안 면전에 쏟아진 청년들 비판 ”‘갑질 논란’ 박찬주 대장 영입, 청년의 신뢰 잃는 행보“ ”청년이 관심 가질만한 정책에 집중해야“ [사진4] ”오후 2시, 정상적으로 사회생활 하는 청년들은 못 와” “금수저 청년들만 청년으로 생각하나“ 황교안 ”날카로운 말씀 잘 들었다“ [사진5] ‘샤이(shy)보수가 아니라 셰임(shame)보수’ ”한국당 하면 ‘노땅 정당’ 떠올라“ 비판 사항 수첩에 받아적은 황교안 [사진6] 한국당 공식 유튜브, 청년들 쓴소리 빠져 문재인 정부 비판 청년 목소리만 실려 황교안식 ‘불통’…누리꾼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사진7] ‘팬미팅’ 소리 나온 文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와 달리 누리꾼 ”직언하는 청년들 있어 희망 보인다“ 쇼(show)통 논란은 종식 [사진8] 굳은 표정으로 행사장 떠난 황교안 청년과의 토론 없이, 의견 청취 후 마무리 발언만 쇼통


靑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는 거짓발표 않는다, ‘하명의혹’ 수사결과로 밝혀질 것”
청와대는 5일 ‘김기현 비리첩보 하명수사 의혹’ 및 숨진 검찰수사관 관련 추측성 언론보도에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발표가 사실인지, 일부 언론의 추측 보도가 사실인지, 머지않아 수사 결과가 나오면 밝혀질 것”이라며 “청와대의 하명 수사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전날 고민정 대변인의 김긴현 관련 첩보 문건 작성과 경찰청 이첩, 그리고 2018년 1월 특감반원의 울산 출장이 ‘김기현 첩보’와 관련이 없었다는 발표 내용을 되짚은 뒤 “고인이 불법으로 김기현 관련 첩보를 수집했다는 언론의 무차별적인 보도가 모두 허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청와대가 전날 발표에서 제보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며 ‘하명수사’ 의혹을 제기하는데 대해 “청와대는 내부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제보자가 누구인지 본인의 동의 없이 밝혀서는 안 된다”며 “만일 제보자가 누구인지 밝혔다면 그건 불법이 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언론은 청와대가 제보자를 밝히지 않았다고, 즉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다”며 “제보자 인적 사항이 공개되면 제보자가 그 제보로 인해 유무형의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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