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 · 의사진행 카드로 2차 입법전쟁 한 방에 ‘역전’

3일 원내교섭단체 합의문 이후 열린 민주당 첫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오늘 이 자리에서 어제 우리는 83석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 한다”고 말했다.

2월 임시국회 최대 쟁점법안이었던 미디어법을 놓고 한나라당이 주장했던 시한부 표결처리에 굴욕적으로 사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정세균 대표는 같은 날 밤 12시 30분께 열린 정세균 대표-원혜영 원내대표 기자간담회에서 “저는 83석이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확신하다”고 말했다.

불과, 자신이 83석으로는 한계를 느낀다고 고백한지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말을 번복한 것이다.

도대체, 그 12시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난 3일 국회 정무위에서는 한나라당 김영선 위원장이 금산분리완화를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산업은행 민영화를 담은 한국정책금융공사법을 날치기 통과시켰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에서는 이른바 ‘인터넷 삼진 아웃제’라고 야당이 주장하는 저작권법과 지상파 디지털전환 특별법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쟁점법안과 관련해 민주당은 여전히 한나라당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그런가하면, 민주당 내부에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부터 나왔던 지도부 사퇴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내 비주류 연합체격인 ‘민주연대’를 비롯해 당내 초·재선 개혁성향 의원모임인 ‘국민과 함께하는 국회의원 모임(국민모임)’은 2일 여·야 3개 원내교섭단체 대표회동이 끝난 후 모임을 갖고 지도부의 전략부재를 비판했었다.

하지만, 쟁점법안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독주나 민주당 내부의 지도부 사퇴론에 정 대표는 의연했다.

정 대표는 3일 오후 5시께 ‘미디어악법 관련 당원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전부를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싸워야 당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과 일부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국회를 파국으로 만드는 것은 遇라는 주장이 있었다”며 “저는 후자를 택했다”고 말했다.

2일 원내교섭단체 합의 도출에 대한 자신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음을 직접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 대표는 사회적 논의 기구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실질적이고 성실한 논의기구 운영과 수렴된 여론의 입법 반영이라는 두 가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울 것”이라며 미디어법과 관련해 민주당이 백기를 든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찬반토론이란 카드가 있었다.

현재 국회 법사위 위원장은 민주당 소속 유선호 의원이 맡고 있다. 국회법 절차에 따라 소관 상임위에서 법안이 처리되면 본회의에 넘어가기 전에 법사위에서 한 차례 더 통과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다른 상임위 위원장은 몰라도 법사위의 경우 전통적으로 야당이 위원장을 맡곤 했다.

민주당 법사위의 힘은 3일 명확히 드러났다.

법사위는 이날 오후 여당이 날치기로 통과시켰던 금산분리 완화 은행법을 계류시켰다. 이 과정에서 유선호 위원장이 악위적으로 계류시켰던 것은 아니다.

민주당 박병선 정책위의장은 3일 브리핑을 통해 금산분리완화법이 법사위에 계류된 이유를 한나라당이 3차례에 걸쳐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장에 따르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애초 산업자본의 투자 퍼센티지와 사모펀드의 투자 퍼센티지를 놓고 거의 합의에 이르렀으나, 한나라당이 돌연 직권상정을 하지 않을 테니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자고 입장을 바꿨으며 이후 이번 회기에 자동 폐기하는 것으로 처리하자고 제안하는 등 한나라당은 무려 3차례나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으로써는 코에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셈이고, 한나라당으로써는 스스로 자중지란에 빠짐으로써 금산분리완화법 법사위 통과에 실패한 꼴이다.

문방위에서 논란이 됐던 저작권법과 지상파 디지털전환법도 본회의 통과라는 마지막 관문을 넘는데 실패했다.

본회의에서 이들 법안은 야당 측이 찬반토론을 벌이면서 의사진행을 지연하는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한국정책금융공사법의 경우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신청한 반대토론을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날 본회의는 수 십여 분간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서갑원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등 야당 측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본회의 지연은 한층 더 심해졌다.

결과적으로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쟁점법안은 출자총액제한제 페지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뿐이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여야가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를 합의한 법안으로써 이미 출총제가 사문화되다시피 한 법안이다.

그래서 정 대표는 오전에 한 자신의 말을 불과 12시간도 채 안 돼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 대표가 얻은 것은 단순히 이 뿐만이 아니다.

정 대표는 2일 한나라당으로부터 교섭단체 대표가 합의한 본회의에 민주당이 왜 참여하지 않느냐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라톤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날 민주당 의총에서는 굴욕적인 합의문을 놓고 지도부 사퇴론 등 강경발언이 이어졌다.

정 대표는 다음날인 3일에도 또 다시 의총을 열어 당내 지도부에 대한 불만과 갈등을 최고조로 이끌어 내는 극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절정에 달했던 민주당 내 지도부에 대한 불만과 갈등은 정 대표가 준비했던 법사위와 의사진행 카드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2월 임시국회를 사실상 민주당의 승리로 마감하면서 그동안 들 끊었던 민주당 지도부 사퇴론은 한풀 꺽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날 자정 넘어 열린 정세균 대표-원혜영 원내대표 기자간담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정 대표는 3일 24시를 기해 2월 임시국회 회기가 자동 종료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도부부터 앞장서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고 하는 각오를 가지고 함께 한다면 우리가 제 역할을 해낼 수 있겠구나 확신을 갖았다”며 사실상 현 지도부 체제 굳히기를 선언한 것이다.

원 원내대표도 “4월부터 민주당은 국회가 아무리 과반이 넘는 집권당의 의석이 있더라도 야당을 무시해서는 제약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고 국회가 민의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국회운영에 있어서 의사진행, 법안심사에서도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라며 그간 논란을 일었던 지도부 사퇴론을 일축했다.

법사위와 의사진행으로 일단 승기를 잡은 정세균 민주당 지도부 체제가 과연 4월 임시국회와 재보선 선거에서도 승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시 조삼모사 식의 발언을 해야만 하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 정치권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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