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보유국 논란의 두 가지 오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으로 가뜩이나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내 일각에서 거론되는 북한 핵보유국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북이 남쪽과의 전면 대결 태세를 공언한 이후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북미관계 역시 클린턴 방한 이후 오히려 갈등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북핵폐기 원칙과 함께 북한의 후계 체제 불안정성을 언급하면서 북의 심기를 잔뜩 건드려 놓았고 이에 뒤질세라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를 기정사실화하며 시기 선택만을 남겨 놓고 있는 태세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상호 복합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북한 핵보유국 논란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 핵폐기에서 핵인정 후 핵확산 방지라는 소극적 방향으로 선회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미 지난 해 말부터 미국 국방부 산하 기관과 정보 기관의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표기하고 있고 국방부 장관마저 기고문을 통해 북한이 핵폭탄을 제조했다고 명기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의 핵보유 인정을 결사코 반대하면서 미국의 북핵정책이 변질되지 않도록 더욱 강화된 한미동맹이 필요함으로 역설하고 있다. 동시에 북한이 이를 이용해 이른바 ‘핵군축 회담’ 요구로 지금의 6자회담을 회피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며 경계하는 눈치다.

그러나 이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지 않은 부분은 과도한 우려가 초래한 기우의 측면이 강하다.

북 핵보유국 표기..보유국 '인정'과 구별해야

우선 논란이 되는 미국 내 핵보유국 ‘표기’는 그 자체로 국제사회에서의 핵보유국 공식 ‘인정’과 질적으로 다른 차원임을 명심해야 한다.

미 국가정보위와 합동군사령부의 보고서가 북을 핵보유 국가로 표시한 것은 미국의 군사와 안보를 책임져야 하는 부처의 속성상 이미 핵실험을 한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표기하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의도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고 핵실험을 완료한 북한이 이이 기술적으로 사실상의 핵보유국임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따라서 국방부와 정보기관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전제로 이에 대비한 국가안보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북을 핵국가로 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의 권한을 가진 공식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는 전혀 없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핵보유를 공식 인정받을 수 있는 국가는 5개국 외에 아무도 없다.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이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들 역시 국제법상 혹은 국제정치적으로 핵보유의 권리를 공식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단지 미국의 군사 안보 기관이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사실관계를 언급하고 있는 점을 들어 미국이 마치 북한의 핵보유 권한을 정치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은 구분해야 할 일이다. 사실관계를 표기하는 것은 정치외교적, 전략적 판단에 따른 공식 인정과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만의 하나 북한이 지금의 인도와 파키스탄 및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비공식적으로 핵보유를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지금 단계에서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아 보인다.

핵보유 자체를 사실로 전제하고 비공식적 핵보유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이른바 ‘친미화’와 국제사회로의 정상적 편입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북미 우호 관계가 정착되며 미국과의 협력 하에 투명한 핵프로그램의 모니터링이 수용될 경우에만 핵보유 5개국 이외에 현실적으로 핵보유가 사실상 인정될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북한이 친미국가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같은 비공식적 핵보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한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의 경로가 존재할 수 있는 바, 북한이 근본적 개혁개방을 통해 그야말로 친미 친서방화의 체제전환을 한 경우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양자간 국교 수립이 이뤄지는 경우이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는 북한의 체제전환을 통해 이미 북핵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을 의미하고 후자의 경우는 북한 스스로 핵폐기를 완료해야만 가능하다.

결국 북한이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비공식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은 논리적으로 핵문제의 근본해결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거나 우려할 일이 아니다.

미국 내 일각에서 북한의 핵능력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과 함께 백악관과 국무부는 북핵의 검증가능한 완전 폐기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클린턴 국무장관도 직접 북핵보유 불인정 방침을 천명하고 6자회담을 통한 북핵폐기 원칙을 재확인했다. 2005년에 합의한 북핵문제의 모범답안인 9.19 공동성명과 이후 실천 로드맵인 2.13과 10.3 합의문도 일관되게 북한핵의 폐기를 명시하고 있다.

북한이 근본적인 친미국가가 되지 않는 조건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현실로 인정하는 순간, 한국의 핵무장 요구는 물론이고 일본 대만 등의 핵도미노 요구를 잠재우기 힘들다는 정치적 딜레마도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미국의 북핵정책이 핵보유를 인정한 채 외부로의 이전 확산만 방지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북핵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보거나 미국의 대북정책을 과도하게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북한의 핵보유국 논란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자칫 미사일방어 체제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미국 내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에 악용될 수 있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북, "북한의 핵군축 요구 보도는 사실 왜곡이다"

북한의 핵보유국 논란과 관련한 또 하나의 오해는 마치 북한이 핵군축 회담 요구를 기정사실화할 것이라는 우려다.

미국은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이를 활용해 북한은 핵폐기를 위한 6자회담이 아니라 상호 핵군축을 위한 미러중북 4자 회담을 주장할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북한의 원칙과 입장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앞서 해석하는 오해에 불과하다.

북한은 지금까지 6자회담에서 공개적 공식적으로 핵군축회담을 주장하거나 관철하려 시도한 적이 없다.

2005년 2.10일 핵보유 공식 선언 이후 3.31 외무성 성명을 통해 ‘우리가 핵무기 보유국이 된 지금에 와서 6자회담이 마땅히 참가국들이 평등한 자세에서 문제를 푸는 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긴 했다.

그러나 이후에 열린 2005.7월의 4차 6자회담에서 북은 정식으로 핵군축 회담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기조연설에서 자신의 최대치 요구중 하나인 ‘한반도 비핵지대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남한 내 핵무기 반출입 금지와 핵우산 제공 철폐 등을 언급한 바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화가 미국이 인식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보다는 넓은 개념이지만 핵군축 회담과는 질적으로 다른 개념임도 명백하다.

부시 행정부와의 힘겨루기에서 핵보유 선언을 공식화한 북한이 자신의 논리를 연장시켜 ‘핵군축 회담’의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거론하긴 했지만 이후 미국과의 실제 협상에서 이를 요구하거나 주장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핵실험 직후인 2006.12월에 개최된 6자회담에서는 조선신보 기사를 통해 서방 언론들의 왜곡보도를 비난하기도 했다. 마치 북한이 핵군축 회담을 요구한 것처럼 외부 언론이 일제히 전했지만 명백한 사실 왜곡이었다는 것이다.

핵실험 직후인 만큼 서방의 앞서가는 언론들은 이제 북이 핵군축 회담을 요구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이를 두고 북을 비난하기도 했지만 정작 6자회담에서 북한은 핵군축 회담 대신 북미 양자협상과 BDA 해결 및 9.19 합의 이행 등을 요구했다.

핵군축 회담으로서 4자회담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공식인정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앞에서 밝힌 바 있다.

핵 보유국 논란 이면..북핵 평화적 해결 '방해' 의도

북한은 핵문제의 본질을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의 산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핵무기 등을 통한 안보위협을 해소한다면 북한으로서는 결코 핵무기를 만들 이유가 없음을 일관되게 밝혀왔다. 즉 미국이 요구하는 핵포기는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적대정책 철회와 북미관계 정상화와 맞교환되는 것임을 누차 강조해왔다.

북한은 핵보유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선제 핵공격에 대응하는 자위적 수단으로서 핵보유를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관계 정상화를 통한 북미 평화공존이 달성된다면 북한은 핵무기를 가질 이유가 없게 되고 이것이 바로 그들이 시종일관 강조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의 원칙인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국 논란이 마치 북의 전술에 말려들어 결국은 북의 의도대로 핵군축 회담 요구로 연결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결국 과장된 것이었다.

오히려 핵보유국 논란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수적 시각을 확대하고 북핵문제의 심각성과 어려움을 확산시켜 대화를 통한 평화적 문제 해결을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존재함을 유의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에도 굳이 핵국가 표기를 문제 삼아 미국의 대북정책이 유화적으로 변화했다며 과장을 하고 보다 강경한 대북 입장을 주문하는가 하면 북한이 핵군축 회담을 필경 주장할 것이라며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 해결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암묵적으로 확산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국 논란은 결국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불가능한 것으로 기정사실화하려는 일각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려 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핵보유국 논란으로 북핵문제의 해결불가를 외치는 것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북한과 미국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호 요구 사항의 교환을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야말로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북핵문제의 근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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