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소재 신명실업학교 오는 3월 개교 46주년 앞둬
성인 문해 교육에서 결혼 이민자 한글 학습까지 폭 넓혀

지난 46년간 송파구에서 청소년, 문맹 성인, 다문화 결혼이주민 등 졸업생 1만여명에게 배움의 보금자리가 돼 온 신명실업학교의 전경. <사진 제공= 신명실업학교>
▲ 지난 46년간 송파구에서 청소년, 문맹 성인, 다문화 결혼이주민 등 졸업생 1만여명에게 배움의 보금자리가 돼 온 신명실업학교의 전경. <사진 제공= 신명실업학교>

서울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를 나와서 소방서를 끼고 비호부대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변변한 마당조차 없는 낡은 적벽돌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낯선 곳을 처음 찾은 이는 건물 이곳 저곳에 '신명실업고등학교' '주부학교' '영어 한문 컴퓨터 검정고시' 등 간판 용도의 글자가 70~80년대 식으로 붙여진 모습에 '과연 학교인지, 학원인지'가 의아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알고 보면 이곳은 교육당국이 '학교 형태의 평생교육시설'로 분류해 놓은 엄연한 학교로 바로 지난 1973년 3월 10일 이후 곧 개교 46주년을 맞게 되는 신명실업학교(교장 이동철)이다. 

간판이 알리고 있는대로 개교 당시에는 선도가 필요한 변두리 청소년들에 대한 대안교육에서 시작해 30여년 전부터는 글을 모르는 성인을 위한 '문해교육', 결혼이민자를 위한 한글교육에 이르기까지 가르침의 폭을 넓혀왔다.

지난 22일 학교에서 만난 이양례씨(성남시 도천동)는 "어릴 때 어려운 집안 형편에 어머니가 '네가 벌어서 학교에 가라'는 말에 순종한 뒤 누구에게나 일상이고 평범하던 교육의 기회를 다시 못 얻을 줄 알았다"면서 "저에게 정말 소중한 꿈이요, 소원이던 읽기와 쓰기를 신명학교에서 배워 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만학도는 주로 주부들로 연령은 50대에서 80대까지 한해 평균 230여명 안팎이다.   

신명학교는 지난 2007년부터 다문화시대를 맞아 이들 계층에도 문호를 개방했다.  

2015년 이 학교 졸업생인 필리핀 출신 에드랄린씨는 "이곳에 오기 전에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글씨를 못 읽어 길을 잃고 혼자 애를 먹기 일쑤였다"고 고마움을 감추지 않았다. 

못배운 오랜 한이 멀고먼 종착지에서 신명의 날개가 된 듯 이 학교와 학생들이 이룬 성과는 진학율이 보여주고 있다. 

고교와 대학 합격률은 각각 98%와 70%, 매년 20~30명이 대학 합격 및 진학. 

이처럼 신명실업학교를 거쳐간 소외된 이웃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 희망만큼 지난 46년 동안 이 학교는 역사는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학교가 자리 잡은 마천동을 비롯해 송파구는 서울 동부지역의 중심이 된,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현재 모습과 달리 88올림픽 경기장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청계천의 철거민이 반 강제로 이주될 만큼 궁벽한 낙후지역이었다.

특히 범죄가 끊이지 않아 '도시 속 유형의 땅'으로 불리던 거여와 마천의 환경에서 한창 자랄 나이의 청소년들은 가정은 커녕 사회의 관심과 돌봄에서 소외된 채 가난의 대물림이 이미 운명 속에 잉태되는 처지에 내던져졌다. 

이때 청소년 선도와 교육에 팔을 걷어부친 젊은이들이 바로 당시 총회신학대학에 다니던 문대자 목사 등 몇몇이다. 

하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맨주먹과 젊음, 사명감 뿐인 이들 청년의 청소년운동 앞에 가로 놓인 장벽은 높기만 했다.

몇날 며칠 동안 머리를 맞댄 끝에 이들이 찾은 교실 부지는 가축을 사육하는 축사, 그마저도 고작 세칸을 월세로 임대하는 조건이었다.

2천여년 전 한 위대한 선지자가 마굿간 한켠에서 복음의 고된 노정에 나섰듯이 당시 새마을운동본부본부의 승인을 얻은 '신명새마을청소년학교'는 1973년 3월 10일 송파구 거여동 산 109번지에서 개교의 깃발을 올렸다. 

이후에도 아무런 재정 지원이 없는 악조건 아래서 교사와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분필과 연필을 치운 뒤 일부는 조를 짜서 길거리행상을, 일부는 밤에 판자촌을 돌며 분뇨를 수거해 처리해가며 학교 운영비를 조달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신명학교는 결국 임대료 부담을 감당하지 못 한 채 기간이 끝나자마자 주인의 퇴거 통보로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놓이게 됐다.

초대교장인 이정남 목사(LA 거주)가 주머니를 털어 마천2동의 현 거여제일교회 교육관 부지에 마련한 3동의 무허가 천막 교실 역시 숱한 철거는 물론 책걸상 조차 없어 흙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수업을 들어야 하는 고난이 이어졌다. 

신명학교가 지금의 터에 둥지를 틀게 된 배경에는 재미교포인 이정자 선교사(초대설립자)가 우연히 기독교방송의 전파에 실린 딱한 사정을 들은 뒤 보내온 500만원이 있었다. 

지난 46년간의 간난신고 끝에 이 학교를 거쳐간 졸업생은 1만여명에 이르며 오는 2월 15일 110명이 졸업장을 손에 든다. 

신명학교의 위상을 확인하듯 지난 2016년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학교를 찾아와 평생학습 관련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한 재정난을 보다 못한 최조웅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나서 책걸상과 난방기 교체 예산 3천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동철 신명실업학교 교장은 "서울의 가장 험한 변두리에서 시작해 어려운 형편의 학생과 문맹의 성인, 결혼 이민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명예로운 임무를 이어받은데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면서 "우리 학교가 사회의 따뜻한 도움으로 배움과 가르침에만 전념하게 되는 것이 남은 소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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