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는 정치권의 무관심이 초래한 것...대책 마련과 문책은 별개 사안

이명박 대통령은 9일 국정 운영의 원칙과 일관성 있는 실천을 강조하는 내용의 라디오 연설을 했다.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용산참사와 관련해 "저는 원인이 다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자를 사퇴시키느냐 마느냐는 그렇게 시급한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러한 비극이 다시 재발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것이야말로 대통령의 책무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우리 역사에는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진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는데 책임자부터 물러나게 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하지만 그 후에도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똑같은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경험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으며 대책 마련을 통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동안 밝혀온 대통령의 소신을 강조한 것이다.

대책 마련 , 악순환 고리 끊기, 재발 방지, 다 옳은 말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전제가 틀렸다.

대통령이 지적한 ‘책임자 문책만 하고 대책 마련이 안됐다’는 과거 사례는 대책 마련을 못한 것이 문제이지, 책임자를 문책을 했기 때문에 대책 마련을 하지 못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용산참사는 5명의 시민과 1명의 경찰관이 사망한 사건으로 공권력 집행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그 중요성이 더 하다.

공권력의 집행은 엄정하지만 과하지 않아야 한다. 이 사건은 핵심은 불법 시위가 아니라 공권력이 잘 집행됐는지에 있다.

대통령은 사법적 책임만을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사법적 책임은 법원과 검찰이 할 일이다. 대통령은 법률적 책임은 물론 정무적 책임도 가려야 하는 자리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서울경찰청장으로 이번 용산에 공권력 투입을 결정한 사람이다. 그로 인해 6명의 고귀한 생명이 스러졌다. 야당이나 한나라당 내 일부에서 김 내정자의 내정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그의 이런 정무적 책임을 물으라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이로 인해 엄정한 공권력 집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용산참사의 비극 뒤에는 그동안 재개발, 재건축사업에서 소외당한 서민들의 설움과 애환이 녹아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정부 당국이 이들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대책 마련이 선행됐다면 이런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들이 설혹 불법과격시위를 했다고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옥상 망루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갔는지 정치를 하는 자이면 생각해야 한다.

늦었지만,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준다면 대통령은 김석기 청장 내정자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대통령의 모습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부 책임을 간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디라 간디는 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것이 정치적 책임인 것이다.

또한, 대책 마련과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과 함께 재개발, 재건축 비리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선행돼야 한다. 이는 문제의 본질 파악과 함께 법 집행의 형평성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산참사를 두고 검찰이 보여주는 수사는 그렇지 않게 보인다.

정부는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가 불법, 폭력시위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검찰은 세입자들과 전철연 사이의 돈 거래가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검찰은 재개발사업조합과 시공사, 그리고 철거업체, 경찰 사이에도 불법 돈 거래가 있었는 지도 같이 조사했어야 했다.

재개발, 재건축사업에 있어 이런 비리는 그동안 무수히 나왔다. 이런 사업에 대해 조금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용산4구역이라고 별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검찰이 용역업체를 압수수색한 것은 경찰 진압에 용역업체가 가담했다는 경찰무전 내용이 밝혀지고 난 3일 후였다.

이런 식이라면 검찰이 수사결과를 백 날 발표한들 누가 정부와 검찰을 믿겠는가?

이 대통령도 과거 국회의원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 하차한 적이 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굉장히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 당시 BBK로 고초를 치루면서 심정적 상처를 많이 받았겠지만 무혐의가 밝혀졌다. 당시 캠프에서는 정의가 살아있다는 내용의 논평이 있었다.

때문에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정말 정의의 여신 디케가 항상 정의의 편에서만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지’ 그리고 ‘힘 없고 돈 없는 서민들에게 정치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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