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윤청신 기자]

조선 마지막 공주(정실 왕비가 낳은 딸) 덕온공주(1822∼1844)가 남긴 '자경전기'가 국내에 돌아왔다는 소식에 덕혜공주와 덕혜옹주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덕혜옹주를 조선의 마지막 공주로 알고 있지만 조선의 마지막 공주는 순조와 숭원황후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덕온공주가 조선의 마지막 공주다.

1822년(순조 22년) 음력 6월 10일 조선의 제23대 왕인 순조와 순원왕후의 셋째 딸로 태어난 덕온공주는 결혼한지 7년 후인 1844년(헌종 10년) 음력 5월 24일 23살의 이른 나이에 요절했다.

덕온공주의 모후 순원왕후는 안동 김씨 가문 출신으로, 김조순의 딸이다. 순원왕후는 자신의 집안이 풍양 조씨 가문과 함께 조선 말기 세도 정치의 절정기를 이끌어 나가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왕비이기도 하다.

흔히 조선의 마지막 공주로 잘못 알려진 덕혜옹주(德惠翁主·1912∼1989)는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딸 이자 마지막 황녀다.

'덕혜옹주'는 1912년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나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조선황실에서 성장했지만 일제 치하로 접어들면서 일본 귀족과 강제 결혼을 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덕혜옹주는 1925년 13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나 냉대와 감시로 고통의 십대 시절을 보내다 일본 남자와의 강제결혼 당했다.

아버지 고종이 1919년 승하한 뒤로는 독살에 대한 공포도 호소했고 1930년 어머니 복녕당 양씨가 사망한 뒤로는 몽유병과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정신분열 증세가 심해져 1946년에는 남편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해 10년간 감금생활을 당했고 1955년 정략결혼을 주선했던 일본 데이메이 황후가 사망한 뒤 곧 이혼당했다.

이후 딸의 자살 등을 겪으면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쇠약해져 힘든 말년을 보내다 1962년 어렵게 한국에 돌아와 올케인 이방자 여사의 간호를 받으며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1989년 낙선재에서 생을 마감했다.

왕실에서는 왕과 왕후 사이에서난 아들을 대군(大君), 왕후 외의 비 사이에서 난 아들을 군(君)으로 구분했다.

공주(公主)는 왕이나 황제와 왕후 사이에 난 딸이다. 옹주(翁主)는 왕이나 황제의 비 사이에 난 딸이다. 모두 왕녀라고도 한다.

세자를 제외한 며느리도 옹주라고 부른다. 세자와 세자빈 사이에서 난 딸은 군주(君主), 세자빈 외의 여자에게서 난 딸은 현주(縣主)라고 한다.

한편 문화재청은 '자경전기'를 비롯해 덕온공주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한글자료 68점을 지난해 11월 미국에 사는 후손으로부터 매입해 16일 국립한글박물관에서 공개했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국립한글박물관이 협력해 환수한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는 덕온공주와 양자 윤용구, 손녀 윤백영(1888∼1986) 등 왕실 부마 집안에서 3대에 걸쳐 전해진 책, 편지, 서예 작품 등으로 구성됐다.

가장 돋보이는 유물은 단아한 궁서체로 쓰인 '자경전기'다.

덕온공주가 규훈(閨訓·여성이 지켜야 할 덕목과 예절을 소개한 수신서)을 한글로 번역한 서책 일부도 이번 자료에 포함됐다.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에게 보낸 편지와 신정왕후(추존왕 익종 비), 명헌왕후(헌종 계비), 철인왕후(철종 비), 명성황후(고종 비) 등이 직접 쓰거나 상궁이 대필해 덕온공주 집안에 보낸 한글편지도 함께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덕온공주 인장 등 관련 유물을 다수 소장한 국립한글박물관에 이들 자료를 이관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덕온공주 집안의 유물을 소개하는 기획전 개최와 소장자료 총서 발간 등을 계획 중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5월에는 덕온공주의 인장을 미국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2억여 원에 낙찰받아 국내로 들여왔다.

덕온공주는 인기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이 분했던 주인공 효명세자의 막냇동생이다. 그는 열다섯되던 해 양반가 자제 윤의선과 혼례를 올렸지만, 결혼 7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은 없었으며 대신 윤용구(1853∼1939)를 양자로 들였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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