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기자의 '도발'을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좌)와 문재인 대통령(우).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화면 캡쳐>
▲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좌)와 문재인 대통령(우).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화면 캡쳐>

김예령 기자가 소속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질문한 것은 잘못이었다. 다만 “(지목받은 것이) 뜻밖이라 당황해서 정신이 없었다”는 본인의 해명을 들어보면 달리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 순간적인 실수로 생각된다.

그리고 같은 내용이라 해도 좀더 정제된 질문을 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너무 힘들다”고 답한 계층의 여론을 대변하려고 했다면 뭔가 구체적인 대답을 얻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질문이 필요했을 것이다. 김 기자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대략 거기까지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 ‘단도직입’적인 느낌은 주지만 대통령을 무례하게 몰아붙이려는 의도가 있었던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라는 물음은 듣기에 따라 비아냥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정말로 몰라서 궁금해서 사용한 표현일 수도 있다. 물론 다의적인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깍듯한 예의를 갖춘 표현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기자가 대통령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비난받아야 할 일인지는 수긍이 되지 않는다. 회견이 있던 날 하루 종일 김 기자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 1위에 올라있었다. SNS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무례함을 비난했다. 과거 SNS에 올라온 내용까지 문제삼는 전형적인 신상털기도 빠짐없이 등장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가장 관심을 받은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김예령 기자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이 정도로 난리가 날 일은 아니었다. 설혹 젊은 기자가 다소 건방지게 느껴지는 태도로, 도발적으로 질문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돌팔매질 당해야 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하나의 생각, 하나의 태도, 하나의 방식만이 정답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다양한 생각, 다양한 태도,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고, 마음에 들든 아니든 그 다양한 여러 모습들을 배척할 일은 아니다. 기자가 부족했던 점이 있었다면 마땅히 지적받아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겠지만, 그렇다고 죄인 취급당할 일은 아니다.

젊은 기자의 ‘도발’을 결코 용인하지 않으려는, 그래서 참지 못하고 훈계하는 ‘정치적 꼰대’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다 같은가. 내 생각이나 방식과는 좀 다르더라도, 나쁜 의도가 실린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인정하고 갈 수는 없는 것일까. 김 기자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뭇매질을 지켜보노라면 또 다른 폭력의 기운이 전해져 온다.

"기자라는 분들이 본래 좀 그렇지 않느냐. 그러니까 결례하더라도 얼마나 자연스러우냐”고 좋게 받아들인 박지원 의원이나, “권위주의 정부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의미 부여를 한 손석희 앵커의 말들이 한결 품이 있게 느껴진다.

김예령이라는 기자는 하루 사이에 ‘마녀’가 되었다. 역사에서 마녀사냥은 마을 안에서의 소문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내용이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형이 집행되었다. 김 기자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어서 대통령을 욕보이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은 소문이다. 그 소문 역시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녀에 대한 처형은 진행된다.

이택광 교수는 『마녀 프레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마녀다'라고 지목하는 순간 너를 배제한 우리는 정상성의 윤리를 획득할 수 있겠지만, 그 사회가 만인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김예령이 저지른 것이 작은 잘못이었다면, 그를 마녀로 몰아가는 이 사회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우리는 종종 마녀심판자가 되지만, 때로는 바로 우리가 진짜 마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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