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상응조치’ 두고 교착국면, 세 번째 북미중재 나선 文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 미국을 방문해 9월 25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중재 외교를 펼쳤다.[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 미국을 방문해 9월 25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중재 외교를 펼쳤다.[사진=연합뉴스]

4.27남북판문점평화공동선언에서의 ‘연내 종전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서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내 서울 답방’이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와 연동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로드맵’ 또한 자연스럽게 순연되고 있는 국면이다.

연내 종전선언과 김정은 위원장 답방을 기대해왔던 청와대도 ‘한반도평화 로드맵’의 순연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1월26일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답방과 관련 “(내년 초에 열릴) 2차 북미정상회담 전이 좋을지 후가 좋을지, 어떤 것이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데 더 효과적일지 여러 가지 생각과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논의 중”이라며 매우 유동적인 상황임을 시사했다.

연내 종전선언 목표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만의 결정으로 될 수 있는 것도, 또 남과 북의 결정으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북미 3자가 다 합의를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연내 종전선언이란) 그 최종 목표를 위해서 여전히 논의 중”이라고 가능성 자체는 열어뒀지만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 정부는 남북미 종전선언을 ‘고위 실무급 차원’에서 연내에 진행하는 방법으로 미국 쪽을 설득하려 했으나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의 경우 9.19평양공동선언과 부속 군사분야합의서 서명으로 사실상 종전선언을 한 상태라 ‘남북미 종전선언’ 이행은 미국의 결정에 달린 문제였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첫 단추다. 남북미중 등이 참여하는 평화협정 체결의 첫 조항이 바로 남북미 종전선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어 불가침선언, 영토규정, 관계정상화 등이 뒤따른다. 즉 종전선언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로드맵의 ‘첫 관문’이기도 하다.

정치 선언적 의미가 강함에도 북미가 ‘종전선언’을 두고 이처럼 6개월 넘게 줄다리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내 답방은 종전선언 후 본격적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첫 관문’으로 들어서는 ‘빅 이벤트’였으나 이 또한 유동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종전선언’과 ‘김정은 답방’ 연기가 로드맵 일정 순연에 그치는 것인지 아니면 ‘한반도 평화체제 로드맵’의 동력 약화로 이어질 것인지 여부다. 김정은 위원장의 올 1월1일 신년사를 계기로 4.27남북정상회담, 6.12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진 ‘한반도 평화’를 향한 세찬 물줄기의 힘이 점차 떨어져가는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풍계리·동창리 실험장 폐쇄 등 비핵화 선행조치와 앞으로 있을 영변핵시설 폐쇄에 따른 상응조치를 고민하기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좋다’는 식으로 발을 빼면서 ‘대북제재 유지’만 강조하고 있다. 역작용으로 북한은 미국에 대한 불신을 나날이 쌓아가고 있다. 이에 ‘한반도 평화 로드맵’이 북미 간의 이견으로 순연이 아닌 역풍으로 갈 가능성조차 배제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한반도 문제’는 한 번 꼬이면 그 매듭을 다시 풀기 어렵다. 남·북·미 합이 어긋나 동력이 약화되면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 이해관계가 곧바로 얽혀들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삭간몰 미사일기지 보고서 논란의 배경에는 북한 중단거리탄도미사일에 이해가 걸린 일본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제 공은 다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문 대통령은 11월30일부터 내달 1일까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되는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다시 한 번 ‘북미 중재자’로서 문 대통령이 곽 막힌 북미 간의 이견을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비핵화조치 대 상응조치’ 북미 이견, 중간선거 후 美 ‘바쁠 것 없다’는 태도

동력 약화의 조짐은 11월 중간선거 이후 미국의 태도에서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비핵화 시간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줄곧 얘기하고 있다. 트럼프 1기 정부 내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 목표도 수정하는 흐름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11월25일(현지시각) 캔자스주 라디오방송인 KFDI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것(북핵 협상)이 긴 과정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며 “인내할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은 바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대북 경제제재는 유지될 것”이라는 말로 ‘바쁘고 답답한 쪽은 북한’이라는 속내도 드러냈다.

그러면서 미국은 종전선언의 문도 걸었다. 6.12싱가포르 정상회담 무렵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언제든 할 듯이 얘기했지만 지금은 ‘전략적인 대북 협상항목’이다. 평양정상회담 후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말 미국을 방문해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며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언제든 번복할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태도 변화는 미국 중간선거 결과와 외교정책 우선순위 변경에 있다.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선방했다고 하지만 하원을 미국 민주당이 장악했다. 따라서 비핵화 협상을 보다 신중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 지난 6.12회담 후 미국 언론과 민주당으로부터 ‘성과가 없다’고 공격받은 부분도 되새김질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신중함은 더하다.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과 민주당에게 보란 듯이 내놓을 성과가 없는 회담이란 평가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서 ‘확실한 진전이 없이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북한 핵문제가 점차 미국 대외정책 우선순위서 밀리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가 더 이상 악화되지만 않으면 미뤄도 좋다는 의미다. 미·중 무역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문제, 사우디-이란-터키 등이 얽힌 중동문제 등은 당장 미국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한반도 평화 로드맵’은 남북한에게 절실하고도 시급한 문제이지만 한반도 판을 좌우하는 미국의 관심도는 떨어지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이 해야 할 종전선언이나 제재완화 등의 ‘상응조치’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보다는 북한이 ‘진전된 조치’를 들고 오기만을 기다리는 ‘협상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골치 아프면 문제를 회피하려는 ‘전략적 인내’의 또 다른 패턴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0월 7일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키로 했다.[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0월 7일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키로 했다.[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미국의 이러한 태도에 불만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북미고위급회담을 열자면서도 ‘종전선언’이나 제재완화에 대한 성의는 없기 때문이다. 애초 11월 8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이 미국에서 고위급회동을 갖기로 했다가 연기되고 28일 무렵 다시 열릴 듯 했지만 무산됐다. 게다가 12월에 열릴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북한은 ‘종전선언’과 ‘제재완화’에 대한 미국의 확답을 얻지 못하는 고위급회담을 주저하고 있다. 더군다나 ‘종전선언’ 등 미국의 약속은 얻지 못한 채 핵 신고와 검증, 핵 또는 미사일 반출 등 추가적 비핵화 조치를 들고나가야 하는 자리라고 판단하면 더하다.

게다가 미국은 ‘대북제재 유지’를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 강도를 유지하는데 대해서도 북한의 불만은 강하다. 특히 미국이 한국을 ‘비핵화협상 한미워킹그룹’으로 묶어 남북교류사업도 묶어버리려는 행동에 당혹해하고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에 합의했지만 이후 북한의 더 큰 양보를 끌어내려는 미국에 태도가 거슬릴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미국은 최근 남북철도 연결 공동조사에 대해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면제조치를 취하고 미국 국방부가 내년도 한미연합훈련 독수리훈련 축소 등의 조치를 취해 북한이 비핵화협상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한미 간의 협의로 진행되는 부분이지만 대북 유화적 조치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미국이 ‘협상의 판’을 깨지 않겠다는 뜻을 담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들 조치들도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남북철도사업에 전체에 대한 면제가 아니라 ‘공동조사’에만 국한해 이후 실제사업의 성사도 불확실하다. 제재가 완화된 것이 아니라 절차적 통제는 강화된 것이다.

철도·도로 등은 대북제재 대상이 아님에도 사업단계별로 유엔안보리 면제절차를 거듭해 밟도록 한 것은 철도사업을 더욱 더디게 할 뿐이다. 독수리훈련 축소도 매티스 장관의 말처럼 “외교를 저해하지 않는 수준으로 약간 재조정”하는 수준이다.

특히 11월 15일 유엔안보리에서 대북 인권결의안도 통과시켰다. 북한 입장에서 ‘인권’과 ‘민주화’를 거론한다는 것은 체제안전보장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북한은 비핵화와 연동해 ‘체제안전보장’을 거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북미고위급회담 무산, 文대통령 G20서 트럼프 만나 세 번째 중재역할

북미가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이러한 상황의 반영이다. 미국은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보다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거칠게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반면 북한은 지금까지 행한 비핵화 선행조치에도 아무런 상응조치를 내놓지 않는 미국에 대한 불신은 깊어만 가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일관된 단계적 상응조치 요구에 ‘먼저 비핵화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 내 정치문제와 여론에 바탕하고 있다. 6.12 회담 전후 한미군사훈련 연기 및 축소를 두고 미국 내에서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주장이 비등했던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은 풍계리·동창리 실험장 폐쇄와 조건부지만 영변 핵시설 폐기까지 약속했는데 미국이 ‘종전선언’, ‘일부 제재완화’도 들어주지 않는데 대해 곤혹스러워한다. 남은 것은 굴욕적이라도 미국 여론을 환기할 정도의 ‘비핵화 조치’를 들고 나가느냐, 마느냐의 선택이다. 북한입장에서는 매우 중대한 선택의 기로다. 한 발이라도 삐끗해도 위기국면이다.

또 북미 간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북미 협상의 진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미국은 북핵문제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는 인식 속에서 ‘비핵화 협상’에 임하고 있지만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한 ‘자위적 수단’으로 개발했기 때문에 ‘미국의 책임’을 우선시한다. 

미국은 책임을 져야할 주체인 북한의 실질적이고 가시적 선행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의 ‘상응조치’ 요구에 대해 ‘북한의 선행조치’를 두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으로선 미국의 입장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아르헨티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지난 9월25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했던 것처럼 북한의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알리는데서 그치진 않을 것이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등 추가적인 조치를 끌어내기 위한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두 번의 북미협상 위기 국면에서 중재 역할을 한 바 있다. 6.12 북미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연기했을 때 문 대통령은 5월 26일 김정은 위원장과 판문점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돌파한 바 있다. 또 지난 8월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무산됐을 때는 9월 평양정상회담으로 물꼬를 틀어 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길을 열기도 했다.

11월 북미고위급회담이 연기된 지금 상황은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둘러싼 북미 이견과 갈등을 최고조에 달했음을 알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심화되면 당연히 예정된 2차 북미정상회담의 틀까지 흔들릴 수 있다. 문 대통령으로선 다시 중재자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이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북축에 바탕을 둔 북한의 호응과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반도평화의 판’은 남북한 당사자 뿐 아니라 미국에 의해서도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점을 북한이 인정해야만 가능하다. 남북축이 원활하게 작동하더라도 북미축이 흔들리면 판은 깨진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와 관련해 미국의 관심사항을 선제적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야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북한의 조치에 따른 ‘종전선언’과 ‘제재완화’ 등의 상응조치를 이끌어내는 중재역할을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실천 담보 없이 미국의 상응조치만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다만 북·미 모두 ‘판’이 깨지길 원치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진전된 비핵화 조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이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도 이끌어낼 여지도 있다. 이 경우 순연된 ‘한반도 평화 로드맵’도 동력을 재충전하며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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