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정당화 위해 7개월 간 회계처리 논의한 내부 문건 등장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 2015년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를 관계회사에서 종속회사로 변경하기에 앞서 삼성 미래전략실과 해당 계획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사진=연합뉴스>
▲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 2015년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를 관계회사에서 종속회사로 변경하기에 앞서 삼성 미래전략실과 해당 계획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정당화하기 위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과 7개월간 회계 처리를 논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두 회사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1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는 지난 2015년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를 관계회사에서 종속회사로 변경하기에 앞서 삼성 미전실에 해당 계획을 이메일로 사전 보고했다.

또한 금융감독원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두 회사가 주고받은 이메일 문건을 지난달 31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메일이 오간 기간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결의가 공시된 같은 해 5월부터 11월까지다. 7개월간 두 회사가 관련 사항을 논의했다는 뜻이다. 이후 삼성바이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를 변경했다.

이러한 문건의 존재는 최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심의중인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성이 높다. 두 회사의 관계변경이 합당했는지,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고의적 관계변경은 아니었는지 등의 의구심이 해당 의혹의 골자여서다.

삼성바이오는 그동안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를 자회사(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꾼 이유에 대해 “국제회계기준 상의 의무사항일 뿐 고의성은 없었다”고 밝혀왔다.

지난 2017년 2월 삼성바이오가 발표한 고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해명자료에는 “삼성바이오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 의약품) 개발 성과가 가시화됨에 따라 합작사인 미국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콜옵션(미리 정해둔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 행사를 통해 충분한 효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며 “바이오젠의 콜옵션은 실질적인 권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한 상태가 됐다”고 적시돼 있다.

즉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잃었기 때문에 두 회사의 관계가 자회사가 아닌 관계회사로 변경됐다는 의미다.

금감원은 지난 1일 불거진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 입수와 관련해서는 증권선물위원회 심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 금감원은 지난 1일 불거진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 입수와 관련해서는 증권선물위원회 심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금감원이 입수한 이메일 문건에는 이제까지 삼성바이오가 해온 주장과 전면 배치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서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지면서 회사가 1조8000억 원의 부채와 평가손실 반영에 따른 자본잠식(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은 상태) 위기에 처하게 됐고, 이럴 경우 ‘기본 차입금 상환 및 신규 차입 불가, 상장 불가’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삼성 미전실에 알리고 있다.

또한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 미전실과 세 가지 방안을 논의한다.

첫 번째는 바이오젠과 합작계약서를 소급해 수정하자(과거의 계약서를 조작해보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를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꿔보자(회계처리 방식을 바꿔보자)는 방안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자회사로 유지하되 콜옵션 평가 손실을 최소화 해보자는 제안이다.

이 중에서 삼성바이오가 택한 것은 두 번째 방안이었다.

실제로 관계변경 당시 삼성바이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 91.2%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배력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8.8% 지분을 가진 합작사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연구 개발 사업이 성공할 경우 지분율을 49.9%까지 늘릴 수 있다는 콜옵션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바이오젠은 그때까지만 해도 콜옵션 행사 의지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를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해버렸다.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르면 종속회사와 달리 관계회사의 기업 가치는 투자한 금액(취득가액)이 아니라 시장 가격(공정시장가액)으로 따진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와의 관계변경을 통해 기업 가치가 3300억 원(취득가액)에서 5조2726억 원(공정시장가액)까지 수직 상승했다.

그러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 91.2%에 대한 가치를 4조8000억 원 대로 평가하고 이를 장부에 반영해 4조5000억 원(지분 가치에서 투자금액을 제외한 것)의 투자 이익을 냈다고 공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적자 기업에서 상장을 앞둔 지난 2015년 말 1조9000억 대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이유다.

문건에는 또 삼성바이오가 무리하게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 변경을 추진한 까닭도 적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과 연관돼 있다.

문건에서 삼성바이오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의 합병 당시 제일모직 주가의 적정성 확보를 위해 바이오산업 가치를 6조9000억 원으로 평가한 것을 두고 삼성 미전실과 논의한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 보면 해당 논의는 두 회사의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주주인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기 위해 제일모직이 최대 주주로 있는 삼성바이오의 바이오산업 가치를 6조9000억 원으로 평가했는데, 이를 정당화하려면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 위기에 처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논의인 셈이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는 삼성 미전실과 위기 대응 방안을 마련했고 세 가지 방안 중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변경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삼성바이오가 주장해 온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변경은 고의 분식회계가 아니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과도 연관 관계가 없다”는 해명과는 전혀 맞지 않는 정황이다.

지난달 31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심의를 오는 14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금감원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내부 문건을 증선위에 제출한 것이 사실이라면, 증선위는 내부 문건의 존재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셈이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달 31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심의를 오는 14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금감원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내부 문건을 증선위에 제출한 것이 사실이라면, 증선위는 내부 문건의 존재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셈이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2일 금감원 관계자는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이메일 문건) 입수 관련해서는 증선위가 진행중이라 사실 여부를 확인해 주기 어렵다”며 “같은 이유로 (관련 내용을 보도한) 한겨레 기사에 대한 해명 보도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국회에 해당 문건의 확보 및 공개 검증을 요청한 참여연대 측에서도 아직 문건의 존재를 직접 확인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은 “현재 한겨레에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의 일부라도 공개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이며 문건을 어떤 경위로 입수했는지는 알지 못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날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김경율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내부문건인 것은 확인이 됐다”며 “작성자도 확인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선 “문건을 보도한 기자에게 들은 사실을 토대로 발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증선위는 지난달 31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심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오는 14일 정례회의에서 해당 의혹을 재심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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