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공분 높아지면서 정치적 해결 움직임 시동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br></div>
 
▲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묻지마 살인, 가정폭력 살인, 분노 범죄, 심신미약 범죄 등 다양한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적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과 같이 개인사로 치부됐던 문제들이 빈번히 발생하는데다 살인미수 이상의 강력범죄로 번지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목소리가 크다.

이 가운데 정치권에서 이를 사회적 폭력으로 규정, 제도적 해결에 시동을 걸고 있어 사회적 해결로 방향이 모아지고 있다.

가정폭력 가해자 구속률 0.8%…처벌 수위 낮아

지난 10월 22일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25년 간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이모(47·여)씨가 남편 김모(49)씨에 의해 살해됐다. 이씨는 결혼생활 시작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2015년 김씨와 이혼했지만, 이혼 후에도 김씨의 살해협박 등으로 괴롭힘을 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범행 전부터 이씨의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동선을 파악했으며, 범행 당시 가발을 쓰고 이씨에게 접근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지난해 3만8389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74.6%는 여성이었다. 재범률은 2015년 4.9%에서 지난해 6.1%로 상승했고 올해는 7월 기준 8.7%로 소폭 올랐다. 반면 가정폭력 가해자 구속률은 0.8%, 기소율은 26.7%에 불과했다. 가해자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비율은 34%였다.

가정폭력 임시조치(접근금지)의 경우 2015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상자는 1만9270명이었다. 이중 신고된 위반자는 7.1%(1369명)였고, 그중에서도 27%(362명)에게만 과태료가 부과됐다. 긴급임시조치의 경우 지난 3년간(2015년 7월~2018년 7월) 대상자가 4643명이었고, 이중 위반자는 133명(2.9%)이었다. 법원의 과태료 부과는 위반자 중 28명(21.1%)에 불과했다. 

이처럼 가정폭력 발생률과 수위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미약한 처벌 수위가 범죄를 오히려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의 경우에도 피의자에게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러나 살인을 막진 못했다. 피해자의 딸은 10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아빠는 치밀하고 무서운 사람이다. 엄마를 죽여도 6개월이면 나올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했다”며 “아빠를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강력한 처벌을 요청했다. 해당 글은 10월 31일 현재 15만여 명의 동의를 얻으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살인까지 번지는 데이트폭력, 처벌 규정 없어

지난 10월 24일에는 부산 사하구의 한 아파트에서 조모(33·여)씨와 조씨의 부모님, 할머니 등 일가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조씨의 전 남자친구인 신모(32)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신씨는 조씨 일가족의 귀가 순서대로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씨는 범행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경찰은 신씨가 조씨의 이별 통보에 앙심을 품고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5명으로 나타났다. 살인미수 등으로 목숨은 건진 여성은 최소 103명이었으며, 피해 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경우도 최소 55명에 달했다. 범행 동기별로 보면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가 6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우발적이 43명, 자신을 의심해서가 24명, 자신을 무시해서가 16명 등으로 나타났다.

데이트폭력도 지난해 1만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연도별 데이트폭력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에 발생한 데이트폭력 사건은 1만303건이었다. 데이트 폭력은 2015년부터 매년 증가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구속률은 낮았다. 지난해 구속률은 4%로 전년도의 5.4%보다 1.4%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부산 일가족 살인사건의 피의자 신씨가 평소 피해자 조씨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증언이 경찰을 통해 밝혀지면서 이 또한 낮은 처벌 수위가 강력범죄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법률상 관계집착 폭력행위를 처벌할 특별한 규정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목하며 데이트 폭력 방지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표 의원은 10월 30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뉴스타파’에 출연해 “데이트폭력 등에 일반 폭력죄를 적용하면 상습성 때문에 더욱 악화된다. 그래서 나중에 심각한 상해나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국회에서 빨리 입법을 해서 데이트폭력에 대한 특별조항이 마련되어야만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가정폭력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br></div>
 
▲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가정폭력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서 PC방 사건으로 폭발된 심신미약 감형제…“안전하게 살고 싶다” 청원 쇄도

묻지마 살인 또한 가중 처벌의 필요성이 야기된다. 여기에 심신미약 감형제도도 재정비 대상으로 지목됐다. 이 같은 논란은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서부터 시작됐다. PC방 손님이었던 김모(29)씨가 아르바이트생 신모(21)씨를 흉기로 찔러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다. 김씨는 경찰조사과정에서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씨가 평소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는 진단서가 경찰에 제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청원 글이 10월 17일 게시, 현재 110만여 명을 돌파했다. 해당 글을 게시한 청원인은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이런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하냐. 나쁜 마음먹으면 우울증 약 처방받고 함부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며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면 안 되나. 세상이 무서워도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게시글 밑에는 “이 땅, 이 하늘 아래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심신미약 등 나도 모르게 범죄인이 될 수 있는 그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지 않게 국가에서 보호해 달라. 인권주장의 모순을 알아 달라” 는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또 다른 청원인은 10월 26일 ‘한국은 살인공화국입니까? 안전하게 살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원글을 올리고 “요즘 뉴스보기가 공포영화보기보다 더 무서운 시대다. 묻지마 살인, 이별살인, 가정폭력살인 등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시대”라며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글은 현재 1천명 이상이 동의했다.

정부‧국회, 사회적 공분에 관련 제도 정비 돌입

사회적 공분이 거세지자 이낙연 국무총리는 심신미약 감형과 관련해 법무부에 사법정의에 맞는지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이 총리는 10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4회 국무회의에서 “최근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 대한 경찰의 초동대처가 부실했다거나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이 약해지면 안 된다는 등의 여론이 높다”며 “법무부는 심신미약의 경우에 범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형량을 줄이도록 하는 현행 형법이 사법정의 구현에 장애가 되지는 않는지 검토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 검찰을 향해 “기소부터 구형까지 심신미약 여부를 조금 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하지 않는지 고려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도 관련 법제도 정비를 약속했다. 진 장관은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의 여가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과 관련,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며 "또다시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샅샅이 정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한 “관련 법과 제도 정비를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피해자 중심 보호 조치 부분을 조금 더 정밀하게 점검하고 확인한 뒤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관련 움직임에 시동이 걸렸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월 30일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서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의 피해자 딸을 참고인으로 부르는 등 가정폭력 살인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정 의원은 가정 유지에만 초점을 맞춘 현행 가정폭력 처벌법의 목적을 피해자 중심으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표창원 의원도 ‘데이트 폭력 등 관계집착 폭력행위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법안(이하 데이트 폭력 방지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발의됐으나 아직 국회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에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국가차원의 실태조사와 예방정책 의무, 피해자 신고시 반드시 경찰이 출동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