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직접 지뢰부터 제거해야 하는 긴장된 작업, 느리고 더디나 조금씩 나아간다”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이행추진위 위원들이 지난 17일 DMZ 남북 유해 합동 발굴 현장인 화살머리고지 방문했다.[사진=청와대]
▲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이행추진위 위원들이 지난 17일 DMZ 남북 유해 합동 발굴 현장인 화살머리고지 방문했다.[사진=청와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26일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전사자 유해 발굴에 대해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국가의 의무이고, 잊혀진 영웅들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날 <유튜브>에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임 실장과 이행추진위 위원들이 지난 17일 DMZ 남북 유해 합동 발굴 현장인 화살머리고지 방문 영상을 공개했다. 국민보고 형식으로 제작된 4분 분량 영상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임 실장은 이같이 밝혔다.

임 실장은 화살머리 고지 전투와 관련 “우리가 휴전선이라고 부르는 군사분계선은 1953년 7월 정전협정에서 결정됐다. 약 240km의 군사분계선은 당시 양측의 점령 지역을 기준으로 정해졌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고지를 차지하려는 전투가 치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그중에서도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 전투는 가장 치열했고 희생자도 그만큼 많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의 철원평야가 우리 땅이 되었다”며 “화살머리고지에는 우리 국군 전사자 유해 200여 구를 비롯한 미군, 프랑스군 등 총 300여 구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에도 수차례 서로 고지를 빼앗는 전투를 벌였고, 스러진 전우를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65년이 지났다. 2018년 10월, 이곳은 평온하다”고 65년 전 치열한 전투현장과 지금을 모습을 비교했다.

또 임 실장은 발굴작업 현장 상황에 대해 “평양정상회담 이후 꽤 많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유해발굴에 앞서 일대 지뢰부터 제거해야 한다. 평평한 지형에서는 특수 굴착기도 쓰지만, 잡목이 우거진 좁은 지형에서는 사람이 직접 나서야 한다. 긴장된 작업”이라며 “느리고 더디다. 그러나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고 전했다.

이어 이곳에서 발견된 수통을 보여주며 “30여 발의 총탄 흔적에 말문이 막힌다. 그새 우리 군은 지뢰 16개, 불발탄, 포탄, 실탄, 야전삽까지 발굴했다. 전투만 아니었다면 실개천이 흐르고, 산새가 지저귀는 작은 마을…”이라며 “이제 곧 땅이 얼어붙는 계절이다. 본격적인 유해 발굴은 흙이 부드러워지는 4월에 시작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전날인 25일 남북 공동유해 발굴 작업을 위한 지뢰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강원도 DMZ 화살머리고지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수습된 유해는 2구로 추정되며 유해와 함께 나온 인식표 1개에는 ‘대한 8810594 PAK JE KWON 육군’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국유단은 인식표가 전사자의 것으로 추정하고 이를 확인한 결과 인식표 주인공은 6·25전쟁 당시 국군 2사단 31연대 7중대에 배속된 고(故) 박재권 이등중사(현재 병장)로 확인됐다.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국군 2사단과 미군 9군단이 참전한 화살머리고지 전투는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7월 6일부터 11일까지 2차례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됐다. 박 이등중사는 전투가 끝나기 하루 전인 7월 10일 전사했다.

화살머리고지에서는 1951년 11월부터 1953년 7월까지 국군 2·9사단, 미군 2사단, 프랑스 대대와 중공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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