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호된 신고식이나 다름 없이 보낸 취임 3개월차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가 스스로 지난 신임 기간을 돌이켜본다면 마치 회장 임기를 한 바퀴 다 돈 듯한 소회가 들 것이다. 최 회장은 중후장대형 산업의 대명사인 철강회사 CEO임에도 취임 직후 사회 각계 각층의 제안을 '러브레터'로 받겠다며 '소프트 리더십'을 예고했다.

소박한 표정의 공식 인물사진만큼이나 '경청'을 표방하는 그의 태도는 전임 포스코 CEO들의 연이은 의혹에 피로감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국민들의 가슴에 신선하게 다가갔다. 하지만 최고경영자와 그 참모진의 정밀하게 설계된 호의가 그에 합당한 성과로 보상받기란 포스코를 둘러싼 상황이 처음부터 허락하지 않았다. 한 지상파 방송사는 탐사보도를 통해 최회장도 전임 CEO들의 각종 의혹에 연루됐다는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어 민주노총이 포스코 노동조합 재건을 천명하고 정치권과 연대해 회사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 와중에 노조 와해 공작 주장이 방송 단독보도와 파문의 형식으로 제기되고 노조원의 회사 문서 불법 탈취와 폭행 공방으로 경찰이 개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수행 기업인 명단에 최정우 회장이 포함된 일은 여러 모로 볼 때 한 줄기 훈풍과 같았다. 특히 전임 권오준 회장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동반 기업인에 포함되지 못했던 때와 비교하면 포스코가 이제야 가슴에서 정치적 주홍글씨를 떼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최 회장의 방북은 한반도 평화와 북한 재건을 위해 한발 앞서 시대를 통찰한 창업자와 포철의 기업사가 재조명되는 기회도 됐다. 고 박태준 전 회장은 ‘북한이 개방하면 원산이나 청진 사이의 해안에 제철소를건설하고 초기 요원은 인민군에서 선발해 포항과 광양에서 연수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숨 돌리기는 잠시, 최정우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채택은 ‘호된 3개월’의 정점이나 다름 없었다. 지난 10일 여야 간사가 철회를 합의하면서 매듭 지워지기는 했으나 이번 결정은 정치권이 합당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신임 회장을 서슬 퍼런 국감장에 세워 과거 회장 시절의 과오를 따져 호통을 치는 게 온당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 안팎에 닥친 경영 위기를 타개할 개혁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을 최고경영자가 있어야 할 곳은 국회가 아니라 국내외 경영현장이다.

그렇다면 최정우 회장은 이번 국감 증인 철회의 의미를 다시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앞으로도 국감장에 서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이다. 답은 명확하다. 최소 1년 간 유예된 것 뿐이다. 상황이 꼬여 최 회장이 다음 국회에 증인으로 선다면 무슨 문제 때문일지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바로 두 전직 회장 재임 시절의 각종 의혹과 경영 부실 책임이 또 다시 도마에 오를 것이다.

국회가 최 회장을 국감 증인에서 놓아주면서 과연 헤아렸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1년은 그가 선배 경영자들이 저질러 놓은 온갖 잔재를 청산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권오준 전 회장의 퇴진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정준양 전임 회장의 과오에서 자유롭지 못 했기 때문이다. 만일 최 회장마저 국민기업에 대한 여망에도 불구하고 ‘일그러진 포스코’를 일소할 수 있는 적기를 놓친다면 그때는 이번과 달리 돌아선 여론은 국감증인석에 그를 세울 수도 있다. 

제9대 포스코 최정우 회장은 지금 세계 열강의 철강세이프가드와 인도 등 제철 후발국의 추격, 환경오염으로 철강구조 조정에 나선 중국의 시장 재진입 예측, 철강 기술력의 세계적 평준화 등 거친 들판을 헤쳐야 할 사명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다음달 3일 취임 100일을 맞아 그동안 구상해온 개혁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필경 그 개혁의 세목에는 비철강 분야 육성 등 만만찮지만 유망해보이는 사업들이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국민기업 포스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진 이라면 포스코의 성공 DNA, 그 펀드멘탈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포스코의 창업 정신, 즉 일제 식민지 배상금, 조상의 피값을 희생했다는 제철보국의 정신이다. 최정우 회장이 그 창업이념의 숫돌에 자신의 기업가 정신을 벼린다면 그에게 어떤 시련이 와도 경영의 운명과 국민 여론은 그의 편이 될 것이다.

스톡옵션을 통해 최고 임원들이 수백억에서 수십억의 이득을 챙겨 사사로움을 취하고 숭고한 창업정신을 내팽개친 과오를 철저히 경계하겠다는 결의와 실천도 먼저 내보여야 한다. 경영진의 도덕성과 능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노조라면 과감히 동반자로 인정함으로써 일본과 유럽 철강업계의 조용한 노사 관계의 모델에 도전해야 한다. 최정우 회장이 전임 회장들의 온갖 의혹, 묵은 잔재와 결별하고 튼튼한 국민기업 포스코를 되돌려 주리라 다시 한번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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