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냉전 회귀 관성’의 힘에 쐐기 박아, ‘비핵화 진전’에 속도 낸 남·북·미

문재인 대통령은 9월 18일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의 영접을 받고 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은 9월 18일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의 영접을 받고 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적인 2박3일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이 마무리됐다. 판문점 1차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첫발을 뗐다면 이번 3차 평양정상회담은 이 길을 더 이상 뒤로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인 중대 전환점이다.

2000년과 20007년 두 번의 정상회담이 남북화해와 평화의 문을 열었다지만 냉전과 대립에 기반 한 ‘과거 회귀’의 관성을 뚫고 나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번 3차 정상회담은 한반도 냉전이라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관성의 힘이 더 이상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았다.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과 함께 한반도가 순식간에 적대와 대결의 장으로 회귀한 것은 당시 남북한 내부의 평화와 화해로 가려는 힘이 분단 이후 60여 년간 축적돼온 적대적 관성의 힘에 눌린 결과였다. 여기에 중국 견제를 우선시하며 북한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미국의 현상유지 동북아 전략이 한반도 외부환경을 지배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월 19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권을 빼앗기는 바람에 지난 11년 동안 남북 관계가 단절돼 여러 손실을 봤다”고 했지만 이는 단면적이고 자의적이다. 2007년과 2012년 대선결과는 당시 남북한 내부의 평화 추진동력이 소진된데 따른 결과였다. 보수정권의 집권과 이후 퇴행은 이에 대한 반작용에 가깝다.

김정일 체제의 북한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도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길 주저했다. 이것을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 ‘북한 체제 붕괴’로 봤기에 ‘핵’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없었다. 그 결과가 2006년 핵실험이다.

남한의 평화추진세력은 북의 핵실험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것이 2007·2012 대선 결과다. 비핵화 문제를 두고 ‘북미 간의 문제’라는 이유로 ‘핵 폐기’에 대한 견고한 방침을 천명하지 못했고 ‘핵동결’ 선에서 어정쩡하게 타협하려 한다는 인상마저 줬다.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낼 역량 또한 미비했다. 이것이 반북냉전 세력에게 한국정치의 주도권을 내준 원인이 됐다.

북한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권 기반이 취약한 평화추진세력보다는 보수정권과의 ‘협상’을 통해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려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선 자신의 건강문제로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시급하게 이양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3대 세습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남북한 적대적 공존’이란 한반도 냉전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명박 정권의 냉전 회귀와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북한 김정은 체제 수립과정은 나란히 병행했다. 남북미는 이때 ‘적대적 공존’을 향해 세 개 톱니의 합을 맞췄다. 남한 보수정권은 ‘종북 프레임’으로 거침없이 폭주했고 북한은 이를 명분 삼아 정권이양과 체제안전의 보검 ‘핵’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상호이해가 맞아떨어진듯했다.

남한 정권교체를 기다렸다는 듯이 남북한 내부의 축적된 냉전의 관성은 광풍처럼 역사를 반동으로 돌렸다. 2009년 김정은의 후계자 부상과 6자회담 중단, 금강산 관광 중단이 거의 동시에 진행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5.24 조치’, 오바마 ‘전략적 인내’, 그해 9월 김정은의 후계자 지명 등이 한 묶음으로 진행된 것과 마찬가지다.

‘촛불혁명’ 한반도 냉전 이끈 관성의 힘 근저에서부터 붕괴시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 서명한 후 기자들을 향해 합의문을 들고 함께 포즈를 취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 서명한 후 기자들을 향해 합의문을 들고 함께 포즈를 취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한반도 평화시대’로의 역사적 대전환은 역설적으로 10년 전 진행된 반동이 낳은 결과물이다. 관성의 압력에 눌렀던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한반도 역사는 냉전질서 해체와 한반도 평화를 향해 변화의 급물살을 탔다. 이 격랑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기세로 몰아치고 있다.

4.27 1차 남북정상회담, 5.26 2차 남북정상회담, 6.12 북미정상회담, 평양 9월 남북정상회담, 불과 5개월 사이에 폭풍이 몰아치듯 진행된 남북미의 숨 가쁜 움직임은 한반도를 냉정과 냉전과 대립으로 이끈 ‘관성의 힘’이 근저에서부터 붕괴됐다는 지표다.

변곡점은 2016년 연말을 뒤흔든 ‘촛불혁명’이다. 이는 ‘냉전질서’의 보루를 타격한 역사적 사건이다.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추진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는 원동력이 됐고 ‘남북 냉전과 적대’를 자양분으로 한 정치세력은 퇴락했다.

‘촛불혁명’은 헌법질서를 무너뜨린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에 대한 탄핵을 넘어 남북분단과 냉전에 기댄 정치세력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남북 간 적대성은 심화되고 반대급부로 북한의 핵능력은 더 고도화된 데 대한 책임도 물은 것이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7월 사드 배치 결정, 9월 5차 핵실험 등의 일련의 과정은 보수정권의 대북정책 실패를 확증했다. 이러한 사태에 이어 촉발된 ‘촛불혁명’은 대북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한 것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그 출발이었다.

‘한반도평화의 시대’는 ‘촛불혁명’이 낳은 역사적 산물이다. 정치지형을 변화시켜 냉전보수 세력의 입지를 크게 좁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과거 민주정부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민족’과 ‘애국’의 가치를 보수정권보다 더 철저하고 강력하게 구현해내려는 행보로 보수층을 흔들었다.

19대 5.9 대선결과와 6.13지방선거 결과는 냉전보수 세력이 다시 한국정치를 주도할 수 없을 것이란 점을 보여줬다. 이는 ‘한반도 평화’의 물결을 되돌릴 수 있는 관성의 힘이 그만큼 약화됐다는 의미다.  

주목할 지점은 ‘한반도 운전자’, ‘북미 중재자’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의 역량이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지난해 갖은 조롱에도 ‘전쟁 불용’과 ‘완전한(CVID) 비핵화’ 원칙을 병행하면서 북미 양쪽의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은 인상적이었다. 그 결과 올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평화’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선언’을 이끌어내고 이를 토대로 6.12 북미정상회담의 장을 열었다. 또 북미 불신으로 6.12회담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5.26 정상회담으로 이를 봉합했다. 그리고 마침내 6.12 회담에서 북미 정상은 적대청산을 선언하고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도록 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로의 실력은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김정은 위원장이 9월 19일 기자회견장에서 육성으로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천명했다. 여기에 동창리 엔진발사장 영구폐기와 비록 조건부지만 영변핵시설 영구폐기까지 이끌어냈다. 미국이 원하는 방향까지 북한을 인도했다.

10년 전 보수세력에게 정권을 뺏긴 원인이었던 ‘한미 균열’과 북한에 대한 관리능력의 취약 문제를 극복했다. 문 대통령이 이 두 개의 문제를 계속 관리해내는 한 남한 내부에서 냉전으로 회귀하려는 관성의 힘은 맥을 출 수 없다.

무엇보다 9월 정상회담이 갖는 중대한 의미는 남북 축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의 길로 간다는 천명에 있다. 공동선언에 남북은 실질적인 ‘종전선언’을 했다. 물론 비핵화란 전제도 확보했다. 6.12 싱가포르회담 후 북미 축에 끌려가던 남북 축이 다시 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 평화 진전’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면 남북이 선제적으로 움직일 공간을 열은 것이다. 이는 미국의 발길을 재촉할 뿐 아니라 중국의 한반도 정세변화에 개입할 여지도 크게 좁힌 것이다. 또 다른 주변 강국인 일본과 러시아도 남북 축에 따라 끌려오도록 하는 전략적 지점을 만들어 낸 것이다.

김정은의 “핵무기 없는 한반도” 천명, 냉전으로 뒷걸음질할 수 없는 ‘외길’ 진입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19일 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 집단체조극 관람 후 함께 손을 맞잡고 환호하는 평양시민들에 답하고 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19일 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 집단체조극 관람 후 함께 손을 맞잡고 환호하는 평양시민들에 답하고 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은 과거 10년의 시간 속에 목표한대로 ‘핵’을 보유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의 강도는 더해졌고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마저 등을 돌리는 사태를 맞이했다.

체제안전은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현돼야 가능하다. 그러나 지난 10년 간 북한 핵은 ‘한반도 냉전구조’의 자양분이자 기본 틀이었다. ‘북한 핵’이 빌미가 돼 일본의 재무장과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에 명분을 제공했고 이것이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의 ‘한반도 신(新)냉전체제’로 가는 길을 열었다.

역설적으로 ‘핵’이 북한의 ‘체제안전’을 담보하기보다는 발목을 잡았다. 결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과 미사일’을 매물로 내놓는 결정을 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역사적 전환기를 낳았다. 지난 2017년의 거듭된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는 자신이 가진 ‘핵과 미사일’의 ‘협상가치’를 극대화하려는 과정이었다.

북한은 얻고자 하는 것은 ‘북미수교’를 통한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최대한 얻어내는데 있다.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4.27과 6.12 두 번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대 체제안전’을 거래하기로 세계에 공표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러한 결정은 한 발만 떼도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선택한 순간이었다.

4.27 정상회담 후 5개월 동안 북한 내부는 ‘비핵화와 체제안전’ 빅딜 외에 다른 국가적 비전은 없다는데 인식을 모으는 치열한 내부진통을 겪었다. 6.12 북미정상회담 성사까지 진통을 겪은 이유가 여기에 있고 6.12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국면을 맞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9월 평양정상회담은 북한이 한 번 선택한 이상 되돌아갈 수 없는 결정을 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반증했다. 9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공식적으로 얘기했다. 이제 북한은 ‘한반도 냉전질서’로 다시 뒷걸음질할 수 없는 ‘외길’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11월 중간선거 이후로 북미협상 미뤘던 트럼프, 919공동선언으로 다시 속도 내

남북한 당사국 외에 한반도를 규정하는 강력한 힘인 미국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전통적인 한반도정책인 ‘현상유지 전략’의 틀을 깼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0년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유럽 새 질서 구축을 주도했지만 유독 한반도에서만은 소극적이었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접하고 있어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북한이란 존재가 한국과 일본을 관리하는데 요긴했을 뿐 아니라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을 압박하는데도 중요한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한반도 정세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정책이다. 과거 미국 행정부들은 이름을 달리하지만 이러한 정책기조에 서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 정권 출범 과정에 북한 체제붕괴와 미국의 개입을 기대한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이러한 전략적 의도와 함께 6.25전쟁은 미국인에게는 잊고 싶은 전쟁이었다. 미국 내 팽배한 대북 불신은 여기에 근원이 있을 정도로 뿌리 깊다. 심지어 미국은 남북한 주도의 화해 무드를 깨고 방해하는 역할도 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반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한 장본인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미국 전역을 사정권을 놓는 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와 6차 핵실험에서 보인 핵능력의 고도화는 더 이상 미국으로 하여금 ‘전략적 인내’를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치적이 되는 상황까지 왔다.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위기가 오히려 재선의 발판이 되고 있다. 그는 미국이 북한을 굴복시켜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는 치적이 꼭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민주당과 주류언론이 비핵화 협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에 관한한 정치적 주도권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 북한 비핵화를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성공시키면 모든 공은 그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9.19 남북공동선언은 희소식이다. 무엇보다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미국의 요구에 근접한 비핵화 언질을 내놓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 후로 미뤘던 북한과의 협상에 다시 속도를 내기로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북미 실무라인이 다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미국 내 냉전으로 회귀하려는 힘이 꺾인 것이다.

게다가 남북한이 냉전을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함으로써 미국으로선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등에 있어 더 이상 기존 입장을 유지하는 것도 부담이다. 남북 군사적 대결 종식과 한반도 비핵화를 함께 담은 9.19 평양공동선언은 한국이 북한 비핵화의 보증인으로 등기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증인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철수와는 무관하니 미국은 속도를 내 달라’는 요청에 실린 무게도 과거와는 다르다. 즉 미국의 속도에 따라 움직이던 ‘한반도 평화’의 물길은 점차 남북 축으로 옮기는 계기점을 마련했다는 뜻이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까지 ‘한반도 평화’를 향한 남·북·미의 합이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계기가 됐다면 9.19 평양공동선언은 ‘냉전 체제’의 관성이 작용해 만든 북미협상 교착국면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불가역적인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여는 중대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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