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2019년 말까지 복직 대상자 부서 배치 완료 계획
금속노조 "양승태 사법농단 진실규명 해야"

노∙노∙사∙정 4자 대표자들이 14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무실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 합의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최종식 쌍용자동차 대표이사, 홍봉석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위원장, 문성현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사진=김기율 기자>
▲ 노∙노∙사∙정 4자 대표자들이 14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무실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 합의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최종식 쌍용자동차 대표이사, 홍봉석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위원장, 문성현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사진=김기율 기자>

[폴리뉴스 김기율 기자] 쌍용자동차는 14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고자 복직 합의서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노·노·사·정의 대표(홍봉석 노동조합 위원장,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 최종식 쌍용차 대표이사, 문성현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들이 참석했다. 이로써 지난 2009년 쌍용차 구조조정 이후 9년 만에 노사갈등 문제가 해결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 해결 언급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 방문 일정 중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 그룹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에게 “쌍용차 해고자 복직문제 문제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쌍용차는 올해 말까지 복직 대상 해고자들의 60%를 채용하고, 나머지 해고자들에 대해서는 내년 상반기 말까지 단계적으로 채용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부서배치를 받지 못한 복직 대상자는 내년 말까지 6개월 무급휴직으로 전환한 후 부서 배치를 완료할 계획이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2009년 구조조정과 관련된 집회나 농성을 중단하고 시설물을 자진 철거하기로 했으며, 회사를 상대로 2009년 구조조정 관련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합의에 따른 세부 실행계획 점검은 노·사·정 대표가 참석하는 '쌍용차 상생발전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30명의 목숨을 앗아간 쌍용차 사태

막대한 적자가 이어졌던 쌍용자동차는 지난 1998년 대우그룹에 인수됐다. 그러나 1년 만인 1999년 대우그룹은 IMF 사태를 버티지 못하고 유동성 위기를 맞아 공중분해 된다. 이후 쌍용차는 독자적으로 워크아웃에 돌입해 느리지만 조금씩 회생하고 있었다.

쌍용차의 위기는 지난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인수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중국 국유기업인 상하이자동차가 기술 유출을 위해 쌍용차를 인수하려고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산업은행과 조흥은행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은 5909억 원이라는 가격으로 48.9%의 지분율을 매각했다.

인수 이후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차에 약속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신차도 단 한대도 출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헐값에 기술과 연구원들을 빼돌렸다. 그중에는 정부가 차세대 핵심기술로 선정해서 개발을 지원하던 것도 있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구조가 약해진 쌍용자동차는 버티지 못했다.

결국 상하이자동차는 지난 2009년 1월 쌍용차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최대 주주였던 상하이자동차는 20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이를 이행해야만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2월 법원은 쌍용차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으며, 4월 쌍용차는 전 직원의 36%인 2646명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노조는 회사의 결정에 반발했다. 84%의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해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노조는 해고에 정당성이 없다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해 평택 공장을 점거했다. 회사에 남게 된 사람들과 정리해고 대상자들의 갈등은 심해졌다. 한솥밥을 먹는 처지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싸워야 했다. 서로에 대한 반목과 대립은 극에 달했다. 결국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은 34개 중대 3000여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노조는 거세게 저항했으며 경찰은 헬기로 공중에서 최루액을 살포하고 식량과 물 반입을 막았다. 경찰특공대까지 투입된 거친 진압 끝에 77일 간의 옥쇄 파업은 끝이 났다.

끝까지 버틴 970여명 중 454명은 무급휴직을, 나머지는 명예퇴직을 택했지만 어느쪽도 선택하지 않은  165명은 해고자가 됐다. 이후 해고노동자들은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 1심 패소 이후 이들은 쌍용차 사태 희생자 추모 분향소를 대한문에 설치하고 송전탑 고공농성을 하는 등 해고 부당함을 알렸다. 결국 2014년 해고자 153명에 대한 해고무효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당시 해고할 만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9개월 뒤인 2014년 11월 대법원은 국제금융 위기 등을 이유로 회사의 판단이 정당했다고 판결을 뒤집었다.

쌍용차는 2013년 경영 회복 후 무급 휴직자 454명을 전원 복직시켰다. 이후 노사는 채용합의를 진행해 2016년 40명, 2017년 62명, 그리고 올해 16명이 일터로 돌아갔다. 그러나 119명은 여전히 복귀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쌍용차 사태 이후 지금까지 해고자와 가족, 협력업체 노동자 등 총 30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 14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해고자 복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김기율 기자>
▲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 14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해고자 복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김기율 기자>

금속노조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14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해고자 복직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합의로 해고자 119명에 대한 전원 복직이 결정됐지만 아직 남은 과제가 많다는 입장이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남은 과제가 많다”며 “주변을 돌아보면 제2, 제3의 쌍용차가 많다. 외롭게 투쟁하는 이들 동지에게 관심과 힘을 모아서 일상으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지부장은 “아직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가 없다"며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문제도 여전히 진실 규명이나 처벌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댓글 공작을 총지휘한 혐의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계속해서 소환해 조사 중이다 . 또한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현직 부장판사 사무실 등을 연달아 압수수색하며 재판개입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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