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br></div>
(사진=연합뉴스)
▲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사진=연합뉴스)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렸다. 나는 항상 그렇게 휴대전화를 버린다.”
“휴대전화 뒷판을 열고 송곳으로 찍은 뒤 내다 버렸다. 항상 그렇게 해왔다.”
“절에 불공드리러 갔다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

휴대전화에 남은 증거를 인멸했다는 이 얘기는 댓글조작을 했던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이 아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현직 판사들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며 진술한 내용들이다. 그 판사들이 법정에서 엄하게 단죄했던 범죄자들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 법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그들도 숨기고 부수고,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내다버렸다. 판사들이라고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 판사들은 이렇게 증거인멸을 했지만 법원은 이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모두 기각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으로 근무한 전·현직 판사 수 명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되고 말았다.

검찰이 밝힌 법원의 기각 사유는 우리들의 상식을 조롱한다. “고 전 대법관이 직접 문건을 작성하거나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해당 재판보고서를 작성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낸 사실을 다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압수수색으로 취득하고자 하는 자료를 생성하거나 보관하고 있을 개연성이 부족하다.” 법원은 이들 판사들의 향후 행동에 대해 기대섞인 추측과 짐작을 해가며 영장 기각의 사유를 만들어냈다. 영장 발부 대상자에 대해 이렇게 희망섞인 선의의 기대를 하는 식이라면 대한민국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해야 할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더구나 “재판연구관실 압수수색은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 침해가 우려된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연할 따름이다.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는 것은 영장청구 행위가 아니라 법원의 그같은 영장 기각이 아니겠는가. 이쯤되면 법원이 자기 조직 보호를 위해 팔을 안으로 굽히며 수사를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떤 불법행위를 했어도 한 솥밥을 먹는 판사에게는 영장을 발부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얘기 아니겠는가.

정의란 것이 결국은 강자의 이익을 위한 것 아닌가라는 트라시마코스의 질문은 역사 속에서 내내 계속되어 왔다. 플라톤은 지성을 갖춘 입법자가 만든 '최선의 법률'에 모든 사람이 복종할 때 이상적 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지만, 언제나 법을 만들고 해석하는 것은 강자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법치를 통한 '지성의 배분'은 실현되지 못한 이상이었다. 대한민국 법원 역시 그러한 강자의 얼굴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정의와 법의 여신 디케의 왼손에 있는 저울의 추는 강자에게 기울어 있고, 그 오른손에 있는 칼은 약자를 향하고 있다. 그러니 법원이 정의를 수호할 자격도 능력도 잃게 되는 것이다.

자기 동료들에 대한 법적 처벌을 막아주기 위해 묻지마 영장기각을 계속하는 법원. 이들이 과연 다른 사람들의 위법행위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묻게 된다. 대한민국 법원, 그리고 판사들의 양심에 묻는다. 도대체 이들은 누가 심판해야 하는 것인가.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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