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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창선 칼럼] 안희정이 아닌 김지은을 피고로 만든 재판

인간의 마음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일단 법원은 안 전 지사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이번 재판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남겨주었다.

1심 재판부의 얘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피고인이 위력을 사용한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확고한 거절 의사가 없었기에 현행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한 후 간음·추행 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나름의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는 피해자 진술이 사실이라고 해도 통상적 수준의 거부나 저항이 없었으면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래서 “사법적 판단에 있어서는 현행법상 구성요건에 대한 엄격한 해석과 각종 증거법칙에 따른 사실 인정,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기초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가 무죄 선고를 내린 이유였다.

재판부는 현행법에 모든 책임을 떠넘겼지만, 성폭력 여부에 대해 그렇게까지 보수적 해석을 한데 대해서는 적지않은 반론도 제기된다. 그리고 단지 법의 해석 문제를 넘어 재판과정에서 법원이 보여준 태도는 이미 여러 의구심을 낳았다.

이번 재판은 안희정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 김지은에 대한 재판이 되고 말았다. 재판에 나온 증인들은 정조와 행실을 들먹이며 피해자를 몰아붙였고, 성폭력이라는 쟁점은 이내 불륜이라는 문제로 둔갑하고 말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안희정이 아니라 김지은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재판부가 ‘피해자답지 않은 태도’를 문제 삼은 것이었다. 도대체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자다운 태도는 누가 어떻게 규격화된 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피해자가 거절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을 지켜보노라면 이번 재판의 피고인은 안희정이 아니라 김지은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할 지경이었다. 이것이 2018년 한국사회의 사법체계가 보여준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대한민국의 법원은 사회의 변화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판결을 접하면서 대체 법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법은 ‘위력’과 ‘거절’에 대한 증거를 요구한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증거로 남을 수가 없다. 따라서 법은 최종적 판결자가 될 수 없다. 법은 인간의 양심을 재판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유한한 법이 무한한 진실을 억압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톨스토이가 쓴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는 평범하고 세속적인 판사 이반 일리치가 나온다. 그는 심각한 병에 걸려 의사를 찾아가지만, 의사는 일리치가 법정에서 피고를 대할 때와 똑같은 태도로 그를 대한다. 의사는 일리치의 생명에 대한 절박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오직 병명이 무엇인가를 가리는 데만 골몰한다. 그 누구도 그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일리치는 주변 사람들의 거짓과 위선에 절망한다. 죽음이 다가와서야 일리치는 역지사지의 생각을 하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했던가를 성찰할 수 있었다. 이것이 성폭행이 아니었냐고 묻는 한 여성 앞에서 형사법의 한계만을 말하던 재판부의 모습, 그것은 깨달음을 얻기 이전 판사 일리치의 모습이었고, 일리치의 절박한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은 의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법의 죽음이었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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