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시험대’에 오른 ‘김병준 체제’, 차기 민주당 지도부 역량이 관건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2기 정국운영의 승부수로 '협치 내각'을 야당에 제안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2기 정국운영의 승부수로 '협치 내각'을 야당에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 수사인 ‘협치(協治)’에다 ‘내각(內閣)’이란 용어를 붙여 ‘협치 내각’을 야당에 제안했다. ‘연정(聯政)’이란 적확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협치 내각’을 제안한 것은 이를 두고 빚어질 정국의 유동성을 감안해 선택의 폭을 미리 넓혀두려는 의미로 해석된다.

청와대의 이러한 제안은 2기 문재인 정부에서만큼은 어떤 형태로든 ‘여소야대(與小野大)의 국회를 극복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여소야대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1년 이상 동안 마련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안,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등 개혁입법 처리는 요원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주목받았던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국회에 계류된 민생법안도 산더미다. 계류 중인 법안만 1만 건에 달하는 데도 국회는 ‘정쟁’의 틀에 갇혀 있다. 다수당의 일방통행을 막자는 취지의 ‘국회선진화법’도 ‘정쟁 수단’이 돼 문재인 정부를 옥죄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의 ‘협치 내각’ 제안은 2기 문재인 정부에서만큼은 1기와는 다른 국회 환경을 조성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에 6.13 지방선거 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뿐 아니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당들도 새롭게 지도부를 구성하는 시점에 미리 화두로 던져 정치권의 변화를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연정’이 아닌 ‘협치 내각’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 인사를 내각에 기용하는 것은 ‘연정’이란 형식이 필수지만 복잡한 정치권 상황을 볼 때 연정의 대상과 범위를 구체화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영됐다. ‘대연정’, ‘소연정’, ‘정당 간 입법연대’ 등 다양한 가능성을 포괄하는 의미, 또는 과정으로 ‘협치 내각’을 화두로 던진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23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협치 내각’이라는 표현에 대해 “편의상 많이 써온 보편적 용어인 협치란 말을 쓴 것”이라며 “연정과는 차이가 있고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다. 어떤 모양새를 이룰지 어떤 형태 띨지는 여야 간 협의 과정에서 구체화될 것”이라고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적 용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김 대변인은 당에서 요청해 그 이전부터 논의선상에 올랐고 이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6.13지방선거 이후라며 “입법 문제에 있어서 야당과 협치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야당에게도 입각의 기회를 준다는 그런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협치 내각’ 구성의 범위에 대해 “현재 있는 정당에 대해서 사람마다 생각 다르지 않겠냐. 어디까지가 보수고 진보인지에 대해선 많이 열려있는 거 같다”며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체라고 하지 않나”라고 한국당 등 보수정당과의 ‘협치 내각’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 대변인은 다음날인 24일 청와대의 ‘협치 내각’ 제안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거부입장을 밝히자 “청와대나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며 “모든 정치적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전날의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체”라는 인식 속에서 오는 8월에서 9월까지 벌어질 정치권의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김병준 시험대’, 관성대로 수용 거부할 경우 ‘당 혁신’은 물 건너가

‘협치 내각’ 제안을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한 포석으로 볼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한국당과의 연정’이며 최소치는 민주당-평화당-정의당과 일부 무소속이 함께해 국회 과반을 이뤄는 ‘개혁입법 연정’이다. 한국당을 배제하고 바른미래당까지 함께하는 방안도 선택지 속에 포함된다.

바로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의 ‘협치 내각’ 제안은 새로 출범한 김병준 한국당 혁신비대위체제에 던지는 정치적 시험대다. 청와대의 ‘협치 내각’ 제안 전인 지난 20일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김 위원장을 처음 만난 상견례 자리에서 노무현 정부의 실패한 대연정 제안을 주제로 얘기를 건넨 것도 의미심장하다.

당시 김 위원장은 대연정에 대해 “(당시) 야당이 (대연정을)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된 것을 저도 아픈 기억을 안고 있다. 그냥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아프게 알고 있다”며 “제 입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얘기했다. 나아가 “여야가 협력해서 국가가 풀어야 할 문제를 적극적으로 푸는 입장이 됐으면 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협치 내각 제안이 있은 다음 날인 24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때 연정 제의는 몇 가지 정책을 빼고는 야권에 다 준다고 할 정도로 과감한 것이었다. 다만, 지금은 연정 범위나 내용을 알 수 없어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며 유보적인 입장으로 후퇴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당내 주된 분위기를 감안하면 ‘가능성’을 열어둔 것만으로 한국당 변화를 모색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김 위원장은 ‘협치 내각’의 뜻을 보다 구체화하라며 ‘공’을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도로 던진 모양새지만 그림이 구체화되면 될수록 이 선택을 두고 받아야 할 ‘압박의 강도’는 점증할 것이다.

정치 현실을 감안할 때 새로 구성될 민주당 지도부가 ‘협치 내각’, 또는 ‘연정 협상’을 던질 경우 제1야당인 한국당으로선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 거부하기는 쉽지만 이를 수용하기는 더 어렵다. 2005년 7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혁을 전제로 한나라당에게 총리와 내각구성권까지 준다고 했음에도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선거제도 개혁 자체도 난제였지만 ‘진영정치’의 틀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자칫하면 지지기반인 진영 블록이 깨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이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정치적 리더십을 지켰다.

그러나 김병준 위원장은 2005년 박근혜 대표 시절의 한나라당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당시엔 관성대로 집권세력과 각을 세우면 세울수록 집권가능성이 높았지만 지금의 한국당은 관성을 거부해 ‘진영정치’ 품속에서 빠져나와야만 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반공보수’의 낡은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한국당 ‘혁신’은 물거품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에게 문 대통령의 ‘혁신 내각’ 제안은 정치적 시험대다. ‘혁신’을 원하지만 몸과 마음은 ‘기존의 낡은 틀’에 익숙한 한국당을 ‘협치’란 미지의 골짜기로 끌고 갈 ‘리더십’을 보여줄 지가 관건이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한국당으로부터 내침을 당할 수 있다.

차기 민주당 지도부에게도 시험대, ‘연정’에 따른 진영 내부 단속 역량이 관건

8월25일 선출될 차기 민주당 지도부에게도 ‘협치 내각’은 험난한 정치 시험대다. 협치와 연정 논의 진행의 주체는 당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당과의 대연정도 난제지만 평화당 및 정의당과의 소연정도 결코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협치’ ‘연정’을 둘러싼 내부 갈등 또한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 2기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강박 인식을 갖고 있다. 그 통로가 국회를 통한 입법성과다. 지난달 18일 조국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재인 정부 2기 국정운영 위험요소 및 대응방안’에서 지방선거 압승 후 정부여당의 오만한 심리가 작동하지 않는 방향으로 국정을 펼쳐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집권 2년차에 미리 ‘협치’ 또는 ‘연정’에 본격 시동을 걸겠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총선 패배 직후 잠깐 ‘협치’를 내걸었다가 도로 회수해 화(禍)를 키운데 대한 반면교사다. 결국 그해 탄핵정국 속에서 박 전 대통령은 뒤늦게 ‘김병준’이라는 ‘연정 카드’로 돌파하려 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후였다.
 
민주당 새 지도부가 문 대통령 뜻에 맞춰 ‘연정’을 추진할 역량을 갖췄느냐가 관건이다. 청와대와 호흡을 맞춰 야당과의 협상을 이끌어내는능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협치’, ‘연정’ 추진에 따른 당내의 반발과 지지층의 반대를 추스르고 이탈을 방지해낼 수 있는 역량이다.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연정’을 추진하다가 실패하면 노무현 정부 때처럼 ‘내부 분열’만 안을 수 있다. ‘협치 내각’ 추진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다지는 최선의 기회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고공지지율에 안주해온 민주당에게는 위기가 되는 양면성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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