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기념일'은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광주(光州)와 전남(全南) 일원에서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중항쟁을 국가 차원에서 기념하는 날이다.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다음 해인 1981년 5월 18일 피해자 집단, 학생, 재야운동 세력이 망월묘역에서 추모행사를 거행한 것이 발단이었다. 국가는 이 추모행사가 재발하지 못하도록 탄압을 가했으나, 5월 계승운동의 일환으로 꾸준하게 실행되어 마침내 1997년 5월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으로 5월 18일 광주지역의 학생시위로부터 출발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신군부는 계엄군과 공수부대를 보내어 잔악하게 진압하기 시작했다.

열흘간 이어진 운동은 탱크로 무장한 계엄군의 대대적 진압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일단락되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한국 현대사 가운데 집권세력에 대항한 최초의 무장항쟁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이후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의 실질적인 출발점이자 준거점이 되었다.

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찾아 집중 취재 재조명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SBS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집중 조명해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2017년 4월 2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전두환 회고록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파헤쳤다.

# 논란의 시작, 『전두환 회고록』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자 보안사령관 이었던 전두환은 신군부의 핵심인물로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후 정치 실세가 됐다.

유신 독재가 무너진 자리 신군부가 들어서자 전국 각지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정부는 계엄을 확대했고 광주 시민들은 계엄령 해제와 전두환 퇴진을 외쳤다.

당시 열흘간 숨진 사람은 192명, 부상자는 수천명에 달했다. 9월 1일 전두환씨는 제11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신군부의 주체 세력인 전두환은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뒤 권좌에 올라 7년의 재임기간 동안 반대자들을 철저히 억눌러왔다.

민정당이 정권 연장에 성공하면서 그가 저지른 집권 과정의 불법행위와 재임 중의 폭압적인 통치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하는 듯 했으나 결국 법적 처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군사 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그리고 권력형 비리에 대한 재판을 거쳐 그는 ‘반란수괴죄’,‘상관살해죄’,‘내란수괴죄’,‘내란목적살인죄’,‘뇌물죄’등 12개 항목의 혐의가 인정돼 1996년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뒤이어 정치적 사면과 복권이 단행됐다. 고 김영삼 대통령이 국민대화합의 명분으로 특별 사면을 단행한 것이다.

그가 37년 만인 지난 4월 논란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 발포 명령자도 없었다"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없었고 자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과 전혀 무관하다고 회고록을 통해 주장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회고록에서 이른 바 북한군 침투설을 제기한 것.

전두환씨는 5.18 당시 600명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남침해 대한민국의 전복을 시도했다는 지만원 씨 등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무기를 탈취하고 군인들을 살해한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 대규모 학살, 발포명령자는 누구인가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이튿날인 5월 18일 오전부터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학생과 시민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가자 시민들은 저항하기 시작했다.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 모인 10만의 시민들은 비무장 상태로 계엄령 해제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했다. 그 때 시민들을 상대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일어났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전 회장 정수만씨는 "불과 한 1미터 사이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어요, 군인들하고 시민들하고. 광주 시민들이 다 보는 데서 총을 쏜 거예요. 그래가지고 옆에서 툭툭 쓰러지니까...."이라 증언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총격에 쓰러졌다. 심지어 시신을 수습하려던 시민들이나 임산부와 어린이 등 무고한 민간인들 역시 비참하게 희생됐다.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가 국민을 향해 총격을 가한 충격적인 상황.

5월 27일 계엄군이 도청에 재진입하기까지 열흘 동안 확인된 사망자는 160여 명이고, 부상자는 5000명에 육박하며, 암매장되거나 실종된 이들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광주에서의 최초 발포명령자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시민들의 무력시위에 맞선 자위권의 발동이었다는 전두환 회고록의 주장은 과연 정당한가.

 # 전투원이 아닌 민간인을 상대로 헬기에서 사격을?

“그날 분명히 헬기 동체 좌측에 장착된 그 기관총이 뿜어대는 것을 봤어요”

- 헬기 사격 목격자 최형국씨

“벽면을 스쳐 맞은 거라든지 그다음에 바닥에 있는 것들은 이것보다 같은 위치거나 높은 위치 아니면 쏠 수가 없는 탄흔이죠. 헬기에서의 사격 가능성이 굉장히 유력해지는 거고...”

- 국과수 김동환 총기안전실장

목격자들의 증언이 이어져왔고 얼마 전 광주 전일빌딩에서 기관총 사격의 탄흔까지 발견됐지만, ‘광주엔 사격이 가능한 헬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전 씨와 군 당국의 주장.

공수부대의 발포는 자위권 행사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면서도 헬기 기총소사만큼은 애써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진압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이런 주장과는 다른 내용을 증언했다.

# 누가 광주시민을 폭도로 둔갑시키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것은 전두환 씨만이 아니었다.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초유의 범죄 행위에도 불구하고 경미한 처벌만 받았던 당시 군 수뇌부들이 37년 만에 털어놓은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 자체를 내가 부인해. 무엇이 민주화요 그게 폭동이지”,“광주에 틀림없이 북괴가 습격했을 거예요. 우리가 잘 잡지 못하고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전두환씨는 회고록에서 양민살상은 없었고 시위대가 먼저 무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시민이 뺏은 차량에 군인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관계자는 "시민 차량이 아니다. 기갑학교 군인들이 일개 대대 한대씩 장갑차 지원이 나왔는데 그 장갑차다. 그 장갑차가 퇴각하면서 우리 부대원 깔아 죽였다. 내가 그 현장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1980년 5월 광주의 진상규명은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두환 씨는 과연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과 무관한가.

북한특수부대가 광주시민을 선동했고 폭도들이 무기고를 습격해 군인을 살상하는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는 그의 주장은 과연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인가.

이미 법적, 역사적 판단이 내려지고 국가에 의해 기념일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에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시민이 저항한 명예로운 사건으로 정의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날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전두환 회고록』 속 전두환 씨의 주장을 면밀히 검증해 봤다.

한편 5월 19일 5.18 특집 2부작 <그것이 알고 싶다> '잔혹한 충성 2부 - 학살을 조작하라'편이 방송된다.

# 5.18 진실 조작의 두 갈래 '511 연구위원회'와 '기무사'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고립된 광주. 민간인 학살은 시내뿐만 아니라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도 계엄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자행되었다.

외부인은 목격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피붙이를 잃은 슬픔을 오롯이 삼켜야 했던 마을 주민들, 왜 38년간 그들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걸까?

5월 19일 방송되는 이번 주 <그것이 알고싶다> '잔혹한 충성' 제 2부에서는 '학살을 조작하라'는 제목으로 군이 5.18 때 자행한 학살의 실체와 오랫동안 이를 어떻게 은폐 조작해 왔는지 추적한다.

제작진은 지난 1988년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조사를 위해 광주특위가 출범할 당시, 국방부가 만든 511 연구위원회라는 비밀조직을 해부한다. 위원회에 가담한 사람들의 명단을 어렵게 입수, 당시 실제로 어떤 조작을 했는지 탐문한다.

이 조직은 발포와 학살에 대해 조작하고 심지어 당시 여당 국회의원도 동원해 청문회 예행연습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입수한 군 내부문건을 통해 보안사에서 기무사를 거치는 동안 5.18에 투입되었던 군인들에 대한 사찰과 입막음을 위한 회유 내역을 찾아냈다.

1995년 특별수사 때에는 현직 검사들을 사찰하고 동향 파악했다는 문건도 확인했다. 이 밖에 광주 외곽에서 벌어진 또 다른 주민 학살에 대한 새로운 증언도 확보했다. 법의학자들의 사진 분석으로 학살 당시의 잔혹함도 입증한다.

왜 군은 이토록 광주에서 잔혹한 만행을 저지르고도 철저한 은폐와 조작을 해 왔을까, 무엇을 감추고 누구에게 충성하려 한 것일까? 제작진은 그 해답의 실마리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30년 만에 해제된 5.18 관련 문건들을 발굴해 찾을 수 있었다. 과연 미국 기밀 해제 문건 속 진실은 무엇일까?

5.18 특집 2부작 <그것이 알고 싶다> '잔혹한 충성 2부 - 학살을 조작하라'는 이번 주 토요일(19일) 밤 11시 1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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