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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이슈

[유창선 칼럼] 4.3 이후 70년, 기억과 망각의 싸움

한국의 홀로코스트, 한국의 아우슈비츠


브루스 커밍스는 2010년에 쓴 『한국전쟁』이라는 책에서 제주 4.3 학살을 다루면서, “이 학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며 당시 제주에서 있었던 서북청년단의 만행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하귀리 마을에서는 남편이 반란자로 추정되는 스물한 살 된 임신부 문씨는 집에서 우익 청년단에게 끌려가 창으로 열세 번 찔려 유산했다. 그리고 아이가 반쯤 나온 상태의 그녀를 죽도록 내버려두었다. 다른 여인들은 흔히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윤간한 뒤 질 안에 수류탄을 집어 넣어 폭발시켰다. 이 병리 현상은 아마도 이전에 일본에 복종했고 이제는 다른 외세를 위해 활동하는 자들의 자기혐오, 그리고 가부장적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여성 혐오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유족들이 전하는 증언들은 커밍스가 전하는 만행들이 빙산의 일각임을 알려주고 있다. 30만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을 참혹하게 희생시킨 대학살은 제주의 아름다운 유채꽃을 피로 적셔버렸다. 그 학살은 한국의 홀로코스트였고 학살이 자행되던 곳곳이 아우슈비츠였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피신했던 가족들은 몰살 당했고, 이념이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었던 2, 3살 짜리 아이들도 가족들과 함께 무참히 살해되었다.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 학살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의 추모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어왔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해 55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당시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여러 노력들도 경주되었다.

그러나 기억을 찾아내 복원시키려던 노력들은 지난 9년 동안 망각을 강요받아 왔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통령은 추념식에 가지 않았고, 4.3을 기억하기 위한 예산들은 끊겨버렸다. 4.3은 다시 망각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예들의 머리 속에는 인간은 없고 오직 이념 밖에 없는 모습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4.3 희생자 추념식을 가리켜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좌익 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고 했다. 그 당의 대변인도 “제주 4.3 사태는 건국과정에서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반대하기 위한 무장폭동으로 시작됐다”고 했다. 여전히 4.3의 희생을 ‘남로당’이라는 이념의 문제로 되돌려 놓으려는 모습들이다. 당시 희생자들 가운데 80%가 군과 경찰에 의한 것임이 조사결과 드러났음에도, 일부 보수 정치세력은 양민들에 대한 학살에 눈감은 채 자신들만의 조작된 기억을 강요하고 있다.

그 망각과 조작의 시도를 물리치고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전쟁기에 있었던 학살의 진실들을 추적해온 김동춘 교수는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라는 책의 말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는 잘 알고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감동하면서도, 우리가 즐겨찾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바로 비극적인 학살 현장이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고 했다. 

이 나라는 아직까지 4.3에 대해 제대로 된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한 채 그저 ‘사건’이라 부르고 있다. 70년의 세월동안 역사는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제 자리 걸음을 반복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념이 무고한 인간들을 희생시키는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제주에서 있었던 학살을 기억해야 한다. 더는 양민들이 이념 때문에 죽어가는 일이 없도록 한반도 평화의 시대도 이루어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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