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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여부를 둘러싼 진실공방은 그의 알리바이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증거가 드러남에 따라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이번 파문은 정봉주 개인의 일탈과 거짓말이라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민낯을 드러냈다. 카드 사용내역 하나로 드러날 거짓말을 온 국민을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모습에서, 그가 이미 이 시대가 낳은 또 다른 형태의 권력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이 등장하기까지는 진실이 무엇인가를 따지는 이성은 소거한 채 자신들이 만든 우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팬덤들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피해 여성을 향해 돌팔매질을 했던 그들의 2차 가해는 성추행 보다도 더 나쁘고 잔인한 행동이었다.

여기에 더해, 정봉주 사건을 대했던 언론의 윤리 또한 여러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최악의 보도는 역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였다. 이미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와 함께 제작자 교체, 책임자 징계를 밝혔지만, 근본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짚고 가야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수 있다. 780장의 사진 전체가 아니라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선택한 사진들만을 방송에 내보낸 일, 전체적인 진실 규명에는 관심 없이 오직 오후 1~2시대 정봉주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주는 데만 전력을 기울였던 일, 정봉주의 동선을 규명하는데 결정적 단서가 되는 을지병원 방문 시간을 밝히지 않고 그 사진조차 누락시켜버린 일 등은 언론보도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모습이었다. “팩트 체크만 했다”는 것이 제작진의 해명이었지만, 이미 팩트를 대하는 제작진의 시선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던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보았듯이, 같은 팩트를 갖고도 정반대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언론이기도 하다. 진실공방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는 이 민감한 사안을 그렇게 제작자 마음대로 방송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더 심각한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 윤리에 관한 것이다. 본인도 말했듯이, 진행자 김어준은 정봉주와는 세상이 다 아는 ‘특수관계인’이다. 그런 방송에서 정봉주 사건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시선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블랙하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송을 해버렸다. 더구나 이미 법적 소송에 들어간 사건이었다. 언론으로서는 겁 모르는 행동이었다. 무리가 따르더라도 정봉주를 지켜주는 것이라면 정의라는, 왜곡된 ‘선악의 이분법’이 제작진의 내면에 자리했던 것은 아닌가 묻게 된다.

그런가 하면 진중권 교수는 <프레시안>에 정봉주 미투 사건에 관한 기고문을 실으면서 이런 경위를 밝혔다.

“이 글은 원래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던 것이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썼지만, 하루가 넘도록 게재가 보류가 되더니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오마이뉴스>에서는 나의 양해를 구했고, 나는 <오마이뉴스>의 난처한 처지를 이해하여 내 글을 내리는 데에 동의해 주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먼저 내 글을 내린 후 나의 동의를 물어왔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진 교수가 말한 ‘오마이뉴스의 난처한 처지’는 정봉주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글을 실었을 때, 그 지지자들로부터의 반발을 사는 사태가 부담스러워 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그 과정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설명이 나오지 않아 정확한 상황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언론들이 팬덤에 위축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언론을 탄압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물러간 이 시대에, 우리 언론은 자신들을 길들이려는 또 다른 힘 앞에 서 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언론은 어떤 성역도 인정하지 않고 그 시대의 모든 권력을 감시하는 정의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물이 고이지 않고 흐르게 되어 썩는 일이 없게 된다. 그 책무가 저널리즘의 기본이 되어야 함을 정봉주 사건이 새삼 일깨워 주었다.

(컬럼 부분수정 ; 2018년 3월31일 14 : 40)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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