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과감한 양보, 트럼프의 통큰 수용, 文대통령의 중재노력 결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미국 현지시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방북결과 브리핑을 받는 자리에서 5월 중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가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사진=청와대]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미국 현지시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방북결과 브리핑을 받는 자리에서 5월 중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가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사진=청와대]
한반도 정세는 변화의 급물살을 탔다. 4월 남북정상회담을 담은 3.6 남북합의만 해도 현기증이 날 지경인데 불과 한 달여 만인 5월에 북미정상회담까지 열린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후 갖는 북미정상회담의 의미는 지대하다. 1945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과 냉전체제에 흡수된 한반도가 73년 만에 진정한 의미의 변화를 모색하는 한바탕의 장이자, 1953년부터 무려 65년 간 지속된 정전협정 체제의 종지부를 찍는 ‘입구’가 열렸기 때문이다.

정전체제상 교전상대국인 미국과 북한 정상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한반도 정세지형을 뒤흔들며 새로운 목표지점으로 향한 격랑의 물길을 만들어낼 것이다. 새로운 목표지점은 다름 아닌 ‘한반도 비핵화’와 정전체제를 대체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북미 탐색전’의 목표지점이 ‘북미대화’로 모아졌지만 북미정상회담까지 도출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장관급 회담 정도면 최선일 것일 것이고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북미정상회담은 지난하고도 험난한 실무 차원의 북미 비핵화 협상과 단계적 합의 이행에 대한 검증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연후에야 진행될 사안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를 한달음에 내달렸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기에 전 세계는 놀랐다. 사회주의체제 붕괴에도 불구하고 이후 30년 가까이 냉전의 그늘에 갇힌 한반도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는 마지막 남은 냉전 잔재를 해체한다는 의미를 넘어 세계 중심으로 발돋움하려는 동북아질서 재편과 연동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날 경우 ‘북한 핵폐기’와 ‘북미수교와 북한 체제안전’을 맞교환하는 본질적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지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열릴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질서 뿐 아니라 세계질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북미정상회담 성사에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두 분이 만난다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설 것”이라며 “5월의 회동은 훗날 한반도의 평화를 일궈낸 역사적인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한 주민, 더 나아가 평화를 바라는 전 세계인의 칭송을 받을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김정은의 과감한 양보, 트럼프의 통큰 수용, 文대통령의 중재노력 결과

한국과 미국 입장에서 ‘북미대화’의 입구는 ‘핵동결’과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이며 ‘북한 핵의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한 불가역적인 해체(CVID)’가 ‘북미대화’의 출구다. 반면 북한 입장에서의 대화의 입구는 ‘대북제재 완화와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이며 출구는 ‘체제 안전 보장’이다.

이러한 양쪽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한 중재안이 중국의 쌍준단(雙中斷), 쌍궤병행(雙軌竝行)이다. 북한은 핵동결을, 한국과 미국은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동시에 하는 것이 ‘입구’이며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병행을 대화의 ‘출구’로 높고 양쪽을 설득하려 했다.

대화 입구를 놓고 교착상태를 푸는 과정이 평창올림픽 중 펼쳐진 ‘북미 탐색전’이었다. 탐색전 속에서 과감한 결단과 양보를 한 쪽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과감한 양보에 ‘북미정상회담’ 수락으로 통 크게 답례했다.

북한은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못 받은 상태에서 한미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이해한다”는 말로 양보했다. 중국의 쌍중단 중재안보다 크게 물러선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이러한 과감한 지도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북한 내부의 입장에서 보면 ‘위험한 도박’이다.

여기엔 중재자 문재인 대통령의 설득력이 작용했을 것은 분명하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양보하면 문 대통령이 미국을 움직이게 할 것이란 신뢰를 가지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대화 수준의 최고 단계인 ‘정상회담’으로 화답했다. 한반도 평화 운전자인 문 대통령의 노력이 이 과정에 베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핵폐기 프로세스에 6자회담도 병행, 북미협상 진전 속도에 달려

북미정상회담은 새로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란 목표로 가는 ‘입구’다. 그 과정을 보면 결코 순탄하지 않다. ‘북한 핵의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한 불가역적인 해체(CVID)’과정과 연계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북미수교는 사실 굉장히 지난한 프로세스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가입과 동시에 사찰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핵 폐기까지는 사찰을 시행한 뒤 사찰 단계 단계별로 검증과 확인과정을 거쳐야 하며 폐기 단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비핵화 실행 단계에 맞춰 평화협정과 북미관계정상화 프로세스를 단계별로 설정할 경우 이 또한 많은 인내 속에서 진행된다. 

또 남북한과 북미협상 이 두 개 축만으로 ‘한반도 평화체제’가 보장되지 않는다. 중국은 정전협정의 당사국이기에 자국의 전략적 이해 속에서 움직여나갈 것이다. 북한과 국경을 맞댄 러시아나 한반도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일본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결국 다시 6자회담 프로세스도 병행될 것이다.

일본은 과거처럼 일본인 납치문제 등 자국 현안문제를 제기하며 협상의 진전에 제동을 가할 가능성이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 주둔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의 민감한 문제와 연동시켜 나갈 것 또한 분명하다. 남북대화의 축과 북미대화의 축이 강하게 작동하더라도 이를 푸는 과정도 여의치 않다.

이러한 난관을 뚫는 동력원은 ‘북미협상’ 진전이다.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투명하고 빠르게 진행한다는 결단을 행하면 시간이 단축되고 이에 맞춰 미국도 적절하고도 신속하게 북한에게 문을 열면 6자회담은 남북한과 미국의 템포에 발맞춰 속도를 내는 구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6자회담 실패는 남북한 축도 그다지 강하지 못한 상황에서 북미 축은 사실상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던 데 있다. 천신만고 끝에 2005년 9.19 공동성명까지 갔으나 오히려 미국은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지목된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대한 제재로 협상국면을 해쳤다.

이에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으로 맞섰고 결국 미국이 한 발 물러서면서 2007년 2.13합의가 이뤄졌고 그해 10.4 남북정상회담까지 진행됐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한 축까지 무너지면서 6자회담도 무력화됐다.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은 이러한 과거의 문제점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요인이다. 과거 6자회담의 동력은 남북한 축이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남북한 축과 함께 새롭게 북미 축이 중심이 된다는 의미다. 북미 축을 통해 북미관계 정상화 속도가 정해지면 여기에 맞춰 6자회담도 연쇄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북일관계는 북미관계 정상화의 속도에 맞춰지는 구조이고 북한이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정상화에 속도를 낼 경우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갑’의 지위를 상실하는 역학관계가 있다. 그래서 5월의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 정세 변화의 분수령이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길을 여는 ‘입구’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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