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트럼프가 북미 탐색전 ‘최종 승자’로 인증하는 외교 절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8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8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의 8일 미국 방문은 ‘북미 대화의 탐색전’의 대미(大尾)다. 정 실장 일행의 방미 절차는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을 계기로 전개된 북미 탐색전의 ‘최종 승자’임을 인증하는 외교적 의전절차에 가깝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의 방미는 ‘북미 탐색전’ 중 끊임없이 자신이 최종 평가자이자 ‘북미 대화’ 기준을 설정하는 존재임을 각인시켜온 미국에게 ‘북미대화’의 문을 열어달라는 최종 결재서류를 들고 가는 절차다. 한반도 안보지형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현실적 힘은 이러한 절차 속에 녹아 있다.

이들은 11일까지 2박 4일간 방미 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만나 대북특사단의 방북 성과와 최근의 남북합의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여기서 정 실장은 북한이 미국에 보내는 추가적인 메시지도 전한다. 메시지 내용의 파괴력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지만 ‘추가 메시지’를 비밀로 해 미국에게 따로 전하는 것 자체도 ‘의전 절차’에 가깝다.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것인지 말지를 결정할 주체는 미국이고 한국의 북미 중재 역할을 인정할지 말지 여부도 미국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은 ‘북미 탐색전’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모두 보여줬다. 즉 북한은 미국을 향해 ‘대화의 문’을 두드리는 위치이고 미국은 ‘문’을 열지 말지를 놓고 고민하는 ‘의사결정자’다.

또 북한과 미국 간의 신뢰의 폭이 극도로 제한돼 있어 직접 ‘탐색전’을 펼치기보다는 중간에 문재인 대통령을 세웠다. 문 대통령이 북미 양쪽의 ‘중재자’를 자임했다기보다는 미국과 북한이 양쪽의 신뢰를 받았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통해 미국의 문(門)을 두드리려 했고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 대신 문 대통령을 만나 북한의 진심(眞心)을 파악하려는 장이 ‘평창 북미 탐색무대’였다. 이어진 대북특사단 방북에서 이뤄낸 남북합의는 약 한 달간의 ‘탐색전 결과’이다.

정의용 실장과 서훈 원장은 미국에게 남북합의 결과와 내용, 속사정 등을 미국에 전하고 ‘추가 메시지’란 부속사항도 곁들인다. 부속사항에는 미국과의 대화를 원하는 북한의 뜻이 어떠한 형태든 담겼을 것이고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여는데 있어 중요한 판단 지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북미 탐색전’의 외교적 절차 진행을 뜯어보면 북한이 ‘을’의 위치에 서 있고 한국도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모든 초점을 맞춰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북미대화’를 얻어내야 ‘체제 안전’의 길이 열린다는 점을 감수하는 모양새다.

게다가 ‘핵 보유국’임을 천명했던 북한이 굴욕적으로 핵은 체제 안전의 수단임을 합의문에 담았다는 것도 진전이다. 또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점도 대북 군사적 압박을 자신에 대한 큰 위협으로 보는 ‘을’의 입장을 내보였다.

한국 또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키를 미국이 쥐고 있는 현실에 맞춰 미국이 ‘최종 승자’가 되도록 하는 외교적 절차를 수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의용-서훈 일행을 맞은 후 북미대화 여부에 대한 마지막 최종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승자’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

北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약 30년 간 미국에 문(門) 두드려

이러한 절차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로 한반도 정책의 방향을 트는 절차이기에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가지긴 했지만 한반도에서 ‘대북 적대시 정책’ 자체를 변경하진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2000년 말 이러한 시도가 있었다지만 미국 정치 주류의 동의가 뒷받침 되지 않아 쉽게 뒤집혔다.

부시 행정부 역시 ‘비핵화 로드맵’인 2005년 9.19공동성명을 반기지 않았다. ‘대북 적대 정책’은 폐기하지 않은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로 정책적 방향 전환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 결과가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으로 이어졌고 이를 수습하려다보니 9.19공동성명의 초기조치인 2007년 2.13 합의가 나왔고 이후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도 열렸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불과 1년여 만에 휴지조각이 됐고 6자회담도 파탄났다. 미국이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만들어 놓은 한반도에서의 자신의 관성을 변경하지 않는 한 한반도 정세변화는 어렵다는 점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사실 북한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약 30여 년 간 줄기차게 미국에 문을 두드렸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정권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에 외교적 총력을 다 했다. 이는 북한 체제 생존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의 ‘북미 탐색전’ 또한 북한이 미국에게 ‘문’을 열어달라는 ‘노크’를 외교적 형식과 절차를 빌어 진행한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다. 북한이 미국에 문을 두드리기 위해선 반드시 ‘한국’이란 중재자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북미 대화의 문은 완전히 봉쇄됐다. 간혹 북미 대화의 가능성이 제기되면 한국 정부가 방해해 더욱 힘들었다.

한반도 정세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도 한반도 당사국인 한국정부의 뜻과 보조를 함께해야 하는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북미대화가 가능했듯이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북미대화의 길은 다시 열릴 여건은 존재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차 내에 이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된 점은 주목해야할 지점이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진전에 속도가 붙을 경우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한국과 미국, 북한 모두 ‘비핵화와 평화체제’로의 길을 가는데 있어 자신들 내부의 ‘찬반 갈등’ 문제와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이해관계 조정 등 험로가 예상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초반이란 점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데 유리한 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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