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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이슈

[유창선 칼럼] 안희정이라는 권력의 성폭행


안희정 지사는 김지은 비서에게 거역할 수 없는 권력으로 존재했다. 성폭행 폭로에 나선 김 비서는 그동안 겪었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사님도 저한테 이야기하신 것 중에 하나가, 늘 이야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네 의견을 달지말라 네 생각을 달지 말라, 날 비추는 거울이다, 그림자처럼 살아라, 그렇게 얘기했다. 그래서 저는 지사님이 이야기하는 것에 반문할 수 없었고 늘 따라야 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녀에게 ‘지사님’은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되는 왕과도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비단 안 지사의 경우 뿐만은 아니다. 미투 고발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과정에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검찰, 문단, 연극계, 대학 등 곳곳의 크고 작은 권력들은 하급자나 제자들을 성적으로 유린해왔다. 도지사라는 권력이 비서를 상대로 반복적으로 성폭행한 안 지사의 경우는 그 정점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조직과 연결된 성폭력들은 단순한 성(性)의 문제를 넘어 남녀 간의 사회적, 정치적 위계에 따른 구조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성폭력’이 아니라 ‘젠더폭력’이라는, 사회구조적 의미가 강조되는 용어가 사용되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마침내 대통령이 되겠다던 현직 도지사까지도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폭력 가해자로 등장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이 사회의 끝을 본 느낌이다. 이처럼 권력을 가진 사람의 성폭행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일반적인 성폭행과는 또 다르다. 거기에는 성적인 충동을 다스리지 못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의 모습 이외에도, 갖고 있는 권력에 도취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집단이나 조직 내에서 권력을 갖게 된 사람이 점차 권력의 맛을 알게 되고 빠져들면서 성폭행 같은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게 된다.

우리 인간에게 권력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인간의 구원에 관한 저작 『신(神)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에서, 인간이 권력에 도취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묘사하고 있다.
 
“만일 열병식 같은 행사를 볼 기회가 있다면 참모를 따라가보라. 거기서 스스로의 위엄에 도취한 최고 사령관의 모습을 확인해보라. 훈장이 잔뜩 달린 특별한 군복을 입고 화려하게 장식한 말에 앉아, 정연하고 장엄한 군악대의 나팔 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뭔가에 마비된 비굴한 표정으로 총을 들고 줄 지어 선 병사들 앞을 지나가는 누구이든, 즉 최고사령관이거나 병사거나 중간 무리에 속한 자거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다른 조건하에서는 절대로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미투 고발의 가해자로 등장했던 권력자들 역시 권력을 갖지 못했더라면 절대로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을 태연하게 저질렀다. 그렇게 권력에 도취된 인간은 스스로를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로 간주하게 된다. 그런 권력 도취는 “황제로부터 길거리에 서 있는 순경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쥔 모든 사람들한테서 발생되는 것”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그만큼 인간은 자기가 가진 권력에 극도로 취약하게 노출된 존재이다. 스스로 경계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권력의 단맛에 중독되어 자신과 주변, 그리고 사회를 망치게 된다.

안희정 지사의 성폭행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유난히도 심란하게 만드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에 대한 성찰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지도자들을 판단하고 선택하여 막중한 권력을 위임해왔던가. 혹 바람따라 만들어진 신화의 허상만 보고, 깊은 곳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우리의 책임은 없는가. 여비서를 유린한 도지사의 책임을 묻는 것과 함께 우리 자신의 소홀함도 돌아볼 일이다. 물론 모든 곳의 권력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에 관한 문제이다.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불붙은 미투 운동은 가히 혁명적 상황을 낳고 있다. 혁명적 상황이라 함은 낡은 것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제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도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성(性)의 문제인 동시에 권력의 문제이다. 따라서 성적 인권을 지키는 일이자 억압적으로 군림하는 권력들을 해체시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들의 책임을 묻는 일, 피해자들과 함께 하는 일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 따라야 한다. 정권이라는 큰 권력과는 결연하게 싸워 물리쳤던 우리가, 도처에 군림하는 그보다 작은 권력들에는 어째서 그렇게 구경꾼이 되어왔는지를 깊게 돌아볼 일이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부당한 권력들과도 싸울 수 있어야 우리의 구체적 삶이 개선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정당한 싸움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다.

미투 운동이 몇몇 개인들의 일탈을 단죄하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구조적 해결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 권력관계를 통해 성폭력이 자행되는 구조를 해체시켜 나가야 우리는 같은 일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톨스토이는 앞의 책에서 “신의 나라는 개인의 삶이 변할 때 비로소 열린다”고 했다. 가해자들의 책임은 분명 그것대로 있지만, 결국은 우리의 모습도 변해야 할 일이다. 보고도 못본 척 하는 구경꾼에서 벗어나, 감시와 고발의 책임을 다하는 동반자로 말이다. 위드유(#WithYou)는 사후적인 다짐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의 선제적 예방을 위한 구호로 거듭나야 할 일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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