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하영 기자] 최근 대우건설을 인수하겠다고 나서 건설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의 잠재돼 있던 대규모 해외 부실 때문에 인수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인 KDB산업은행에 대한 책임론이 다시 한 번 불거졌다.
 
지난 1월 말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지분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호반건설을 선정했고, 이에 대한 시장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국내 시공 능력평가 13위에 머물고 있는 호반건설이 건설업계 3위에 랭크돼 있는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것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격’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대우건설 노조 측 반대도 거셌다. 호반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당시 대우건설 노조는 “회사 규모에 큰 차이가 있을 뿐더러 조직문화도 쉽게 융합하지 못할 것”이라고 앞서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호반건설의 매출 규모는 대우건설의 10분의 1 수준이다. 지난해 대우건설은 매출액 11조8000억 원을 기록한 반면, 호반건설은 1조2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호반건설이 대우건설과 손을 잡고 글로벌 건설사로 도약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도 나왔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택사업에 집중하던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의 강점인 토목·플랜트 분야의 노하우를 통해 사업영역을 확대하거나 해외사업에 진출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를 통해 기존 시공능력평가 13위에서 단숨에 ‘톱3’ 건설사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것이란 기대가 컸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매각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호반건설은 지난 2월 8일 갑작스럽게 “대우건설 인수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고, 결국 대우건설 매각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호반건설의 대우건설 인수 철회는 지난 1월 31일 호반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9일 만에 나온 결정이었기 때문에, 그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 추진을 포기한 것은 지난 2월 7일 이루어진 대우건설의 실적 공시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4분기 모로코 사피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에서 3000억 원 규모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당초 70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됐던 대우건설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4373억 원 수준으로 줄어 들었다. 당시 호반건설 내부의 M&A(기업 인수합병)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한 해외사업의 우발 손실 등 최근 발생한 문제들을 접하며 과연 대우건설의 현재와 미래의 위험 요소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대우건설의 새 주인 찾기가 불발되면서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에 대한 책임론이 다시 한 번 불거졌다. 해외 리스크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구체적인 규모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산업은행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대우건설 경영 전반을 살펴 온 산업은행이 이 정도 규모의 부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산업은행이 ‘헐값 매각’, ‘호반건설 특혜’ 논란 등에도 무리하게 매각을 강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산업은행은 지난해 10월 매각 공고 당시 지분 전량 매각 방식을 내세우다, 호반건설이 제시한 분할 매각 방식을 받아들였다. 산업은행은 “원활한 매각을 위한 매각 전략”이라고 설명했지만, 호반건설에 대한 특혜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 호반건설이 제시한 금액은 산업은행이 대우건설에 투입한 3조2000억 원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금액이어서 “산업은행이 대우건설을 헐값에 매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제기됐다.

이번 매각 실패를 계기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대우건설의 기업 가치를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신한금융투자·하나금융투자 등 10여개 증권사가 최근 대우건설의 목표주가를 5~28% 가량 낮춰잡았고, DB금융투자는 '매수(Buy)'에서 '보유(Hold)'로 투자 의견을 조정했다. 신용평가업계도 마찬가지다. 한국기업평가는 대우건설의 기업 및 CP 신용등급을 ‘부정적 검토’ 대상에 올렸다. NICE신용평가는 대우건설 해외 사업장의 원가율 추가 조정 가능성 등을 지속 모니터링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대우건설의 재매각을 두고 우려하고 있다. 이번 매각 실패로 대우건설의 기업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을 뿐더러, 해외 사업장의 대규모 손실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에선 “과거에 이름을 날리던 그 대우건설이 맞느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은 내부적으로 대우건설의 잠재부실을 해소한 뒤 시장 여건을 감안해 재매각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우건설 매각은 당분간 재추진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해외 부실 우려를 감내하고 매수자로 선뜻 나설 회사가 없어서다. 게다가 해외건설 현장이 많은 대우건설의 경우, 추가 부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매각 무산에 앞서 금호타이어를 비롯해 KDB생명 등 줄줄이 매각에 실패한 바 있다. 최근에는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발표와 관련해서도 2대 주주인 산업은행 책임론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한국GM의 부실이 수년간 누적된 결과임에도 ‘군산공장 폐쇄’라는 극단적 조치에 이르도록 방관해온 산업은행에 대해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가 나온 이후에야, 주주감사 청구권을 발동하고 실사를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늑장대응’이라는 지적만 일고 있다.

산업은행은 현재 GM측과 실사진행을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GM측이 실사에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했고 실사가 최대한 빨리 개시돼 조기 완료되기를 희망했다”며, “정부와 산은은 앞으로 실사를 차질없이 진행하고, 3대 원칙하에 GM측과 정부 지원 여부를 포함하여 한국GM의 정상화 방안에 대해 신속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GM 대응 방식에 앞서 대우건설의 매각 과정에서 나타난 산업은행의 미숙한 일 처리는 두고두고 얘기거리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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