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윤 칼럼] 고작 수류탄 수준의 북ICBM 보도

실시간 뉴스

    새벽에 쐈다고 기습발사?… 언제나 습관적 타성 벗어나나

    ▲북한이 공개한 화성-15 미사일 발사모습 <서울=연합뉴스>


    “북한이 ICBM 화성15호를 우리 시간으로 새벽 3시경 쐈다”며 언론들이 한 목소리로 “기습 발사”란다. 듣기 민망한 소리들 제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우리 시간 새벽 3시면 워싱턴DC나 뉴욕 등 미국 동부는 오후 1시다. 일과시간 중인데 웬 기습? 미국 보란 듯이 그 시간 택해 쏜 것으로 추측되는데 기습 발사라니 듣기에 민망하다. 모든 발사는 다 기습이지, 시간대별로 달라지는가. 우리 시간으로 일과 중에 쏘거나 미리 통지하면 정규 발사고, 새벽에 쏘면 기습인가. 

    일과 중 쏘면 정규발사이고, 새벽에 쏘면 기습? 

    이번 화성15호의 주요 팩트는, ▲이전과는 성능 면에서 여러 가지로 개량된 점, ▲역대 최고 고도 도달, ▲미국 심장부인 동부지역도 사정권, ▲미국 일과시간 중 발사 등이다. 그런데 ‘새벽 기습 발사’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이런 주요 팩트와 새로운 점에 맞춰 기사가 작성되고 해설 초점도 맞춰졌어야 한다. 짐작컨대, 기습 발사 운운만 온종일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것은 몸에 배서 별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민망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가 미사일발사 직후 김정은을 “병든 강아지”라고 비아냥대며 비판한 것을 두고 종편 어느 앵커는 출연한 군사전문가에게 “병든 강아지가 무슨 뜻이죠?”라고 묻는다. 그 출연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보는 내가 다 황당했으니 그는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다니… 트럼프 막말이 어디 한두 번인가. 아마도 일부 외국 언론은 보고 있었을 텐데, 부끄러웠다. 약 20년 전 미국 <타임>지가 인도 특집기사에서 “소 달구지에 핵미사일을 싣고 다니는 나라”라는 제목을 뽑은 적이 있다. 그건 비아냥이라기보다는, 인도의 두 모습을 함축하려는 시도로 읽혔었다. 

    “최순실 가방에는 뭐가 들어있을까요?“ 

    일부 언론의 선정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 하나 들어보겠다. 작년 최순실 씨가 독일에서 귀국하던 날이었다. 온 이목이 다 인천공항에 쏠렸다. 필자가 출연하던 모 방송의 프로가 마침 최순실 도착 30분 후 시작이었다. 스튜디오에 앉아 사전 CM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진행자가 갑자기 묻는다. “최순실 가방 속에 뭐가 들어있을까요?” 당연히 농담이겠거니 생각하고 못들은 척 했더니 재차 묻는다(그 프로는 시청률이 좋아서 광고가 제법 길었다). 계속 못들은 척 할 수 없어서 “장거리 비행과 한국 체류에 필요한 것들 아니겠느냐. 사람들이 다 보는데 뭔 중요한 걸 저기에 싸들고 오겠느냐”며 웃고 치웠다. 광고 끝나고 본 방송 시작. 최순실 귀국 장면이 당연히 톱인데, 문제의 그 가방을 클로즈업시키더니 앵커가 내게 정색을 하고 묻는다. “이 위원님, 저 가방에 뭐가 들어있을까요?” 아뿔싸… 설마 1분 전 그 말을 실제로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황당함을 참고 좀 전에 말한 대로 답하면서 왜 그리 창피하고 화끈거리던지. 기자나 앵커, 언론 수준은 질문과 논평에서 드러난다는 것, 상식이다. 

    군사전문가에게 ‘병든 강아지’ 말뜻 묻는 앵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앵커는 ‘병든 강아지’를 묻는 대신, “바뀐 건 아무 것도 없다(Nothing changed)”고 거듭 강조한 트럼프의 발사 직후 언급에 담긴 백악관의 의중을 물었어야 했다. 그게 이번 15호 발사의 주요 포인트 중 하나라는 것 역시 상식이다.
       
    긴 소리 할 필요없이 말은 의식의 반영이다. 습관적 또는 무의식적 반복 속에 얼마나 많이 중요한 것들을 놓치거나 인식상 한계를 드러내는지 일깨워주는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시절 준엄한 칼럼으로 세상에 죽비를 내리쳤던 김중배 전 한겨레 사장의 사회부 초년기자 시절 이야기다. 기자 김중배는 형사피의자에게 처음으로 “무슨 무슨 혐의를 받고 있는 아무개 씨”라고 썼다. 이 짤막한 구절에 한국언론사에 기록될 두 가지가 들어있다. 최종 유죄확정 전이니 “혐의를 받고있는”이라고 쓴 것과, 이름 뒤에 씨라는 최소한의 호칭을 붙인 것이다. 김중배 전까지는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저지른 아무개가 00일 경찰에 체포됐다”고들 썼다. 기자 김중배의 이 시도는 얼마 가지 않아 전 언론으로 퍼졌고,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일부 언론들의 몸에 밴 습관적 타성보도를 보면서 김중배 청년기자를 떠올린다. 
     
    청년기자 김중배가 남긴 교훈
     
    아직도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부박함을 되풀이하고 있는 우리 일부 언론들, 민망함을 넘어 이제는 무섭다. 언제나 구석기시대에서 벗어날 건가. 세상 사람들이 왜 언론과 기자를 우습게 여기게 됐는지 처절히 반성해야 한다.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 향상에 진력할 것을 당부한다. (이강윤.언론인)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강윤 언론인 lkypraha@naver.com

    ⓒ 폴리뉴스(www.poli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폴리뉴스는 인터넷신문위원회인터넷신문 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