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뉴스에 나와 딸의 죽음을 얘기하면서 묘하게 실실 웃는 엄마는 나쁘다. 남편의 사망 순간을 묻는 질문에 남 얘기하듯 하는 아내 역시 나쁘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지만, ‘나쁘다’는 게 곧 ‘죄’는 아니며, ‘나쁜 사람’이 곧 ‘죄인’은 아니다. 

경찰이 가수 고 김광석 씨의 부인 서해순 씨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법에서는 규범적 당위보다 팩트가 더 강력하고 중요하다. 검찰의 최종 판단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영화 <김광석>을 통해 가수 김광석의 사인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했던 이상호 기자는 당위를 뒷받침할만한 팩트는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일단 경찰 재수사 결과 드러났다. 

그러나, 경찰의 서해순 씨에 대한 무혐의 결정이 곧바로 “서해순 씨는 완전히 결백하다”는 얘기로 믿는 사람이 그리 많은 것 같지도 않다. 일반인의 상식적 법 지식으로 무혐의는 ‘물을 죄가 없어 기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고, 무죄는 법정에서 판사가 쌍방의 증거 공방을 지켜본 후 죄를 물을 게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므로 무혐의 결정은 공소시효와 현재 남겨진 증거와 정황 등으로 볼 때, 서해순 씨에게 처벌 가능한 죄목을 찾기 힘들다는 것일 게다. 그게 사법적 종결이자 처리이다. 

경찰의 무혐의 결정이 내려지자 곳곳에서 이상호 기자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이 기자에게 명예훼손과 무고혐의가 있는 건 분명하다. 이 기자가 성급했던 것도 맞다. 그러나 제기 가능한 의혹을 공론화시켜 재수사를 이끌어낸 점은 평가받을만 하다. 기자는 수사기관이 아니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기자의 1차적 역할이다. 이 기자의 역할은 거기까지였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기자는 의혹 제기를 넘어 99% 결론을 내려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서해순 씨가 남편 김광석 씨의 살해자인 것처럼 믿게 만들었다. 이 기자가 서 씨를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쪽으로 몰아간 것은 씻을 수 없는 잘못이다. 이 기자는 자기확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당위와 팩트의 구분 앞에서 엄정함을 잃고 감정적 재단으로 흐른 것 같다. 

이번 건과 관련해서 이 기자는 잘못한 만큼 책임져야 한다. 명예훼손이건 무조건 잘못한 딱 그만큼은 책임져야 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기자가 무고 혐의는 벗지 않을까’라고 예측한다. 무고를 광범위하게 받아줄 경우, 개인의 고소고발권 위축을 초래하기 때문에 법원이 무고에 대해 엄격하게 대처해온 관행을 그 근거로 든다. 명예훼손이든 무고든 이 기자가 한 개인을 살인자로 몰고간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잘못 된 것이다.  

이 기자가 의혹을 제기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쁜 X”이라며 들고 일어나 손가락질 하더니, 경찰의 무혐의결론이 나오자 이번에는 그 손가락질이 이 기자를 향하고 있다. 또 다른 냄비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차분하고 진중한 시민이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언론을 가질 수 있다. 마치 좋은 관객이 좋은 영화를 만들듯이.

함량미달 언론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책은 시장에서의 퇴출이다. 광고주나 정부가 아니라, 시민들만이 퇴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안듣고 안보면 광고가 안붙는다. 그럼 퇴출된다. 요즘 백가쟁명인 각종 팟캐스트들도 마찬가지다. 음모론을 상업적으로 교묘히 써먹거나, 5W1H도 갖추지 못한 내용을 뉴스랍시고 버젓이 내보내는 경우, 저질 쌍욕 막말을 습관적으로 쓰면서 '청취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다'고 오산해 막말의 수위가 계속 올라가는 경우, 오보를 내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한 마디로 언론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을지 주저되는 쓰레기가 지천이다. 이런 팟캐스트들 역시 걸러져야 한다. 그 필터 역할은 소비자들만이 할 수 있다.

이상호 기자는 <다이빙 벨>에 이어 또 한 번 무리수를 뒀다. 열정만으로 결점이 이해받거나 용서되는 건 아니다. 열정과 언론의 사명감을 차가운 팩트로 승화시키기 바란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그 가치가 지고해진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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