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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칼럼] 비핵화를 선반위에 올려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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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의 동아시사 순방이 진행 중이다. 김정은은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트럼프의 순방 결과를 지켜보고 향후 핵질주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시기는 조절하겠지만 큰 틀에서 김정은이 핵무력의 완성을 중도에서 멈출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트럼트 역시 김정은을 향해 군사적 옵션까지를 겨냥한 강경대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북미간 극단적 충돌을 피할 수도 있겠지만 위기와 불안감은 지속될 것이다. 이미 일상화되어버린 한반도 위기의 본질적 원인은 북핵문제이다. 김정은은 누구에게도 개의치 않고 핵미사일 능력을 완성하겠다고 마음을 굳혔고, 트럼프는 북의 사실상 핵보유국 상황을 결단코 저지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한쪽은 반드시 핵보유를, 다른 한쪽은 기필코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접점 없는 평행선이 작금의 한반도 위기의 원인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김정은의 핵질주를 끝까지 저지하려면 군사적 수단까지도 불사하며 이른바 풀 옵션을 고민해야 하고 이는 곧 한반도 전쟁상황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제재로도 협상으로도 당장 김정은의 질주를 막아세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핵화를 고집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만성적인 전쟁위기와 군사적 긴장고조를 결과한다면 오히려 비핵화라는 정책목표 자체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해볼 때가 되었다. 당장에 효과적으로 비핵화를 실현할 뾰죽한 현실적 해법이 없다면 차라리 비핵화를 조금은 뒤의 과제로 미루고 좀 더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전혀 새로운 발상의 전환으로 이제는 비핵화를 선반 위에’(on the shelves) 올려놓을 것을 제안한다. 한국과 미국은 당장의 비핵화 대신에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오히려 비핵화는 차후의 과제로 추진하자는 발상이다. 선반위에 올려놓는 것은 비핵화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선반위에 잠시 놓는 것은 아예 창고에 버려놓거나 찬장안에 닫아놓는 것과 다르다. 언제든지 손이 닿는 위치에 잠시 올려 놓는 것이 선반위에 두는 것이다. 따라서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다만 상황과 여건을 보아가며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의미이다.

    지금 비핵화를 선반위에 올려 놓으면 당장의 전쟁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강대강 대결과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는 비핵화 요구와 비핵화 거부라는 평행선에 원인이 있다. 따라서 한미가 북에 대해 당장의 비핵화를 관철하려 하지 않고 당분간 선반위에 올려놓는다면 작금의 심화되는 전쟁위기는 완화시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장기적 과제로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이 바로 선반위의 비핵화 과제이다. 선반위의 비핵화는 북미간, 남북간 극한적인 군사적 충돌위기와 긴장고조를 막을 수 있다.

    비핵화를 선반위에 올려놓으면 또한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 문대통령이 신베를린 구상 이후 반복해서 대북대화 제의를 해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는 것은 비핵화를 당장의 정책과제로 지속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핵화를 선반위에 올려놓는다면 이산가족 상봉과 평창 올림픽 참가와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회담 등에 북이 호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비핵화라는 전제조건과 이를 관철하기 위한 대북 요구를 당분간 뒤로 미룬다면 오히려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 재개를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비핵화를 선반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필요조건이 존재한다. 우선은 미국과 긴밀한 상호신뢰하에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미국의 비핵화 요구는 그대로인데 우리만 선반위에 올려놓는 것은 스스로 코리아 패싱을 자초하는 결과일 뿐이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선반위 비핵화는 북미간 대결을 완화시키지도, 한반도 전쟁위기를 해소하지도 못한 채 한미간 불신과 엇박자만 가중시킬 것이다. 선반위 비핵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과의 전면적 신뢰를 전제로 미국의 동의하에 한미가 굳게 공조해야 한다. 지금 문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이 필요조건을 획득해낼 수 있을지는 사실 의문이다. 정부 출범 직후 지금까지 한미간 신뢰보다는 불신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또한 비핵화를 선반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김정은의 핵위협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확고한 군사적 억지력과 단호한 응징의지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사실상 핵국가인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를 차후의 과제로 선반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김정은이 어떤 경우에도 핵과 미사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아야만 가능하다. 군사적 도발을 감히 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군사적 억지력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도발시 반드시 보복응징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일관되게 보여주어야 한다. 김정은의 핵위협을 상쇄할 만한 우리의 군사력 균형과 단호한 응징의지야말로 비핵화를 선반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비핵화를 선반위에 올린다고 해도 제재와 협상의 유용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핵화라는 정책목표를 당장에 관철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지 제재의 끈과 협상의 문을 아예 놓는 것은 아니다. 제재는 당장의 비핵화가 목표라기보다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속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고 반복할수록 김정은에게 최소한의 학습효과를 주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대북 지렛대가 된다는 점에서 선반위 비핵화라 하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협상의 문을 열어두는 것 역시 당장 협상을 통해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비현실적인 접근이 아니라 북한이 스스로 협상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협상에 응함으로써 북핵상황을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상황 악화를 방지하는 충분한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선반위 비핵화의 경우에도 굳이 포기할 필요가 없다. 제재와 협상 모두 비핵화를 선반위에 놓는다고 해도 만능론과 무용론의 사이에서 나름의 유용성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반위 비핵화는 장기적 관점에서 결국은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비핵화를 선반위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장기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오히려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 비법은 북한내부의 체제변화에 있다. 지금의 전쟁위기를 해소하고 상시적인 군사적 긴장을 걷어내고 그 대신에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진전시킴으로써 북한내부의 변화동력을 추동해내는 것이다. 돌이키기 힘든 북한의 시장화와 장마당 세대의 전면등장 및 권력 엘리트의 내부 균열조짐 등을 감안할 때,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의 화해협력은 결과적으로 북한 내부에 체제전환의 씨앗을 키워내고 확대하게 될 것이다. 남아공의 사례에서 보듯, 핵을 보유하려는 독재국가가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경우는 내부의 체제전환의 사례가 유일하고 또한 평화적이고 현실적인 해법이다. 선반위 비핵화가 오히려 결과적 비핵화를 견인해내는 우회의 지혜가 되는 셈이다. 이제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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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식 칼럼니스트 kimos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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