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만 있고 김상헌은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아니 세계의 골치 덩어리가 되고 있다. 특유의 막말과 독선적 언행들이 계속되면서 여론조사 지지율은 바닥을 향해 하락하고 있고, 내각과 백악관의 핵심 참모들, 집권여당인 공화당의 의원들까지 등을 돌리는 상황이다. 정권 출범 9개월 만에 트럼프는 국내외의 신뢰를 급격히 잃어가며 고립되는 처지가 되고 있다.

그를 보면 난폭한 폭군의 모습마저 떠오른다. 한국 국민들의 전쟁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 가능성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고, 오바마 정부에서 체결된 이란 핵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고 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과 기후변화협약 등 국제사회와의 합의들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이다.

급기야 미국내에서도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밥 코커 공화당 상원 외교위원장은 트럼프의 대북 강경 발언들에 대해 "나라를 3차 세계대전으로 끌고 가는 무모한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백악관이 성인 돌봄 센터로 전락했다”는 야유까지 퍼부었다. 트럼프의 한 측근은 그를 끓는 주전자에 비유하면서 그가 증기를 뿜어내지 않으면 압력솥으로 변해 폭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은 트럼프에 대해 조용하기만 하다. 미국의 국내 문제라면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겠지만, 문제는 한반도에 대한 그의 생각이 예측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트럼프가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의 이름이 ‘미치광이’인지, 아니면 그가 실제로 미치광이인지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기에 한반도의 상황은 극히 불안해 보인다. 핵무기 완성을 향한 김정은의 질주와 그것을 포기시키려는 트럼트의 강경 대응은 치킨게임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당연히 국민의 생명이 달려있는 대한민국의 목소리가 나와야 할 일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여야 정치권 어디에서도 트럼프를 향해 전쟁은 안 된다며 단호하게 선을 긋는 목소리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북한의 위험천만한 미사일 실험을 비판하고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지금처럼 계속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트럼프를 향해서도 북한을 자극하고 전쟁의 불길을 당길 수 있는 언행의 중단을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들이 나와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촛불혁명으로 태어났다는 문재인 정부는 미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모습이다. 더구나 트럼프 정부는 한국이 전쟁 불안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한미 FTA 재협상이라는 통상압력을 가해 배신감마저 자아내고 있다. 한미 간의 외교적 갈등이 불러올 역효과에 대한 우려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예스’(Yes)냐 ‘노’(No)냐를 분명히 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 정부의 몫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쟁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의사를 전세계에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 오면 엄호나 하여 상황의 호전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 우리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한미 FTA도 차라리 폐기할 생각을 갖고 임하지 않으면 트럼프의 거친 기세 앞에서 국익을 지키기 어렵게 될 것이다.

여야 정치권도 마찬가지이다. 진보정당인 정의당과 새민중정당을 제외하고서는 트럼프에 대해 ‘노’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한미동맹을 지키겠다는 맹목적인 서약만이 이어질 뿐, 트럼프의 위험한 행보에 대한 항의와 경고는 접하기가 힘들다.

어째서 우리는 자신의 생명과 이익에 대해 아무 소리 못하고 침묵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인가. 

영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이 항복문서를 작성하자 김상헌은 그것을 읽고는 울면서 찢어버렸다. 그러자 최명길은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 대감과 같이 문서를 찢는 신하도 필요하고, 나처럼 다시 붙이는 신하도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찢겨긴 조각들을 다시 주워모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최명길도 필요하고 김상헌도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 정치에는 최명길만 있고 김상헌은 없다. 대한민국의 목소리는 누가 대변할 것인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